NEWS
업계뉴스
가짜 냉매의 경고…한국도 대비해야 한다
가짜 냉매의 경고…한국도 대비해야 한다. / AI 이미지
[투데이에너지 임자성 기자] 미국 냉난방공조(HVAC) 업계가 저온난화지수(A2L) 냉매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유명 브랜드를 위장한 가짜 냉매 실린더가 유통망에 유입되고 있다는 경고가 잇따르고 있다. 냉매 자체의 결함이 아니라 '누가 만들었는지'를 속이는 방식이어서, 장비 손상과 안전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업계 전반에서 커지고 있다.
위장된 실린더
미국 HVACR 전문지 ACHR News에 따르면, R454B 등 A2L 냉매 실린더 포장이 신뢰받는 제조사 브랜드를 모방한 채 시장에 등장하고 있다. 세계적 냉매 제조사 듀폰 계열 케무어스(Chemours)는 자사를 비롯한 여러 제조사의 브랜드를 흉내 낸 제품이 미국 유통 채널에서 발견됐다고 밝혔다. 문제는 포장에 적힌 내용과 실제 성분이 일치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이다.
"지금은 소싱을 강화할 때"
케무어스의 열관리·특수솔루션 아메리카 사업부 비키 헬린스키(Vicky Helinski) 마케팅 매니저는 "업계에 보내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지금이 소싱을 강화할 때"라고 말했다. 그는 "인증된 공급업체에서 구매하고, 제품이 AHRI 700 표준을 충족하는지 확인하고, 공급망 전 과정의 투명성을 유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당장의 비용 절감처럼 보이는 것이 장비, 고객, 사업 전체에 걸친 심각한 리스크를 불러올 수 있다"고 경고했다.
유통업체 협회도 공동 경고
미 냉난방공조 유통업체 협회(HARDI) 역시 회원사들로부터 유사한 제보를 받았다고 확인했다. 업계에 따르면, 올봄부터 여름 사이 정품 브랜드를 모방한 R454B 실린더가 미국 유통 채널에 나타나면서 관련 지적이 계속되고 있다. HARDI 정책담당 부사장 알렉스 에이어스(Alex Ayers)는 "품질이 낮거나 규격에 맞지 않는 냉매가 유통되는 문제 자체는 새로운 것이 아니지만, 특정 제조사의 브랜드를 사칭하는 포장이 등장한 것은 최근 나타난 현상"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러한 흐름의 배경으로 미국 내 신규(virgin) HFC 냉매 반입량을 제한하는 연방 할당 제도를 지목했다.
법은 있다, 관건은 자체 점검
헬린스키는 "A2L 전환기의 안전 이슈는 냉매 물질 자체가 아니라 공급망의 신뢰성 문제"라고 짚었다. HARDI와 냉매 제조사들은 위조품 판매와 불법 HFC 판매를 막을 연방법이 이미 존재한다고 밝혔다. 문제는 새로운 법이 아니라, 유통업체들이 매입 과정에서 얼마나 적극적으로 자체 검증에 나서느냐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업계는 위조가 의심되는 제품을 발견하면 미 환경보호청(EPA) 온라인 제보 페이지(epa.gov/tips)를 통해 신고할 것을 여전히 권고하고 있다.
한국도 안전지대는 아니다
한국도 이 흐름과 무관하지 않다. 키갈리 개정의정서에 따라 한국은 2024년부터 HFC 사용량 동결에 들어갔고, 2029년 10%, 2035년 30%, 2045년까지는 80% 감축이 목표다. 기후에너지환경부가 제시한 제품군별 전환 일정에 따르면, 가정용 냉장고와 차량용 에어컨은 2027년부터, 건조기·의류관리기와 가정용 소형 에어컨은 2028년부터 GWP 150 이상 냉매 사용이 금지된다.
문제는 이 감축 속도에 비해 국내 제도 정비가 뒤처져 있다는 점이다. 업계 전문가들은 미국과 유럽이 이미 약가연성(A2L) 냉매 사용을 전제로 시장이 움직이고 있는 반면, 한국은 아직 관련 제도화가 미흡해 산업계가 준비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지적한다. 안전기준과 설치 가이드라인이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저GWP 냉매 수요가 갑자기 몰릴 경우, 미국에서 벌어진 것과 유사한 공급망 혼란이 재현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우려가 나온다. 국내 냉매 회수·관리 체계 역시 아직 사각지대가 넓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돼 왔으며, 수입량 대비 실질적인 회수율을 정확히 가늠할 수 있는 데이터 자체가 부족하다는 점도 한계로 꼽힌다.
현재까지 국내에서 미국과 같은 방식의 위조 A2L 냉매 유통 사례가 확인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전환기의 공급망 관리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이번 사례는, 제도 정비가 진행 중인 한국 업계에도 참고할 만한 선례로 읽힌다.
[용어설명]
A2L 냉매 : ASHRAE 냉매 안전등급에서 독성은 낮고(A), 약한 가연성(2L)을 가진 냉매.
R454B : 기존 R410A 대비 GWP가 약 75% 낮은(약 466) 차세대 에어컨·히트펌프용 냉매
AHRI 700 : 미국 공조·난방·냉동협회(AHRI)가 제정한 냉매 순도 품질 기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