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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터리 경쟁의 판이 바뀐다…성능 넘어 운영·AI·신뢰로
[에너지신문] 국내 배터리 산업이 성능과 에너지밀도를 높이는 제조 경쟁을 넘어 운영과 인공지능(AI), 신뢰성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경쟁 시대에 들어섰다.
셀 성능을 높이는 기술 경쟁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배터리를 어떻게 개발하고, 어떻게 운영하며, 얼마나 안전하고 예측가능하게 활용할 수 있는지를 차세대 ‘경쟁력’으로 내세운 것이다.

▲ 배터리 인사이트 컨퍼런스 2026이 14일 청주 오스코에서 열렸다. 이날 컨퍼런스에서는 배터리 3사가 차세대 배터리 산업의 핵심 전략을 제시했다.
14일 청주 오스코(OSCO)에서 열린 ‘배터리 인사이트 컨퍼런스 2026’에서 LG에너지솔루션과 삼성SDI, SK온이 각각 운영 최적화와 시뮬레이션 기반 연구개발(R&D), 신뢰밀도(Trust Density)를 차세대 배터리 산업의 핵심 전략으로 제시했다.
3사가 제시한 해법은 서로 달랐지만, 배터리 산업의 경쟁축이 제조 중심에서 데이터와 AI를 활용한 전 생애주기 관리로 이동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공통된 메시지를 던졌다.
우선 LG에너지솔루션은 배터리를 ‘제품’이 아닌 ‘운영 자산’으로 바라봐야 한다고 진단했다.
이달훈 LG에너지솔루션 상무는 ‘배터리 산업의 진화: 관리에서 운영 최적화’를 주제로 발표하며 “앞으로는 셀의 용량이나 출력보다 배터리를 얼마나 효율적으로 운영해 경제적 가치를 극대화하느냐가 경쟁력을 결정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상무는 AI 데이터센터 확산과 전력망 병목, 재생에너지 확대 등으로 전력 가격 변동성이 커지면서 동일한 배터리라도 충전과 방전 시점을 어떻게 운영하느냐에 따라 수익성이 크게 달라지는 환경이 조성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배터리의 가치 평가 기준도 출하 당시의 용량과 출력에서 실제 운용 과정에서 확보하는 가동률과 잔존 수명, 운영 효율, 경제성 등 생애주기 전체의 가치로 확대될 것으로 전망했다.

▲ 이달훈 LG에너지솔루션 상무는 배터리 산업이 관리에서 운영 최적화로 진화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또 BMS(Battery Management System) 중심의 보호 기능에서 나아가 운영 데이터를 분석해 자산 성과를 극대화하는 에너지 자산 운영 플랫폼으로 배터리 솔루션의 역할이 확대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 상무는 배터리 경쟁력은 ‘안전한 관리’에서 ‘자산 성과 극대화’로 무게중심이 이동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하드웨어 중심의 경쟁에서 운영 데이터와 소프트웨어 기반 경쟁으로 산업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는 셈이다.
이 상무는 “앞으로 배터리는 운영과정에서 데이터가 지속적으로 축적될수록 예측 정확도는 높아지고, 예측 성능 향상은 다시 자산 효율과 시장 수익성을 높이는 선순환 구조를 형성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강조했다.
삼성SDI는 연구개발 방식의 근본적인 변화를 제시했다.
안기장 삼성SDI 상무는 ‘배터리 개발 혁신을 위한 시뮬레이션의 역할’ 발표를 통해 물리적 시제품 제작과 반복 시험에 의존하던 기존 개발 방식에서 벗어나 가상공간에서 설계와 검증을 수행하는 ‘시뮬레이션 중심’ 개발 체계로 전환하고 있다고 밝혔다.
기존에는 시제품 제작과 시험, 설계 수정이 반복되면서 개발 기간과 비용이 늘어났지만, 설계 초기부터 시뮬레이션을 활용하면 성능을 사전에 예측하고 검증해 개발 기간을 단축하고 비용 예측 가능성도 높일 수 있다는 설명이다.

▲ 안기장 삼성SDI 상무는 배터리 개발 혁신을 위한 시뮬레이션의 역할에 대해 발표했다.
삼성SDI는 원자 수준부터 배터리 시스템까지 연결하는 멀티 스케일 엔지니어링을 기반으로 머신러닝 소재 설계와 가상 제조, 공정 최적화를 구현하고 있다. 슬러리 제조부터 조립과 화성 공정까지 시뮬레이션으로 연결해 계약 단계의 성능 예측부터 양산, 차량 탑재 이후 수명 예측까지 배터리 전 생애주기에 적용한다는 계획이다.
안 상무는 “배터리 개발은 물리적 테스트 중심에서 가상 시뮬레이션 중심으로 패러다임이 전환되고 있다”며 “디지털 트윈과 AI 자율 설계를 기반으로 개발 속도와 효율성을 동시에 높여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SK온은 차세대 배터리의 경쟁 기준 자체를 새롭게 정의했다.
김규식 SK온 실장은 ‘다음 세대 배터리를 정의하는 한 가지: 에너지밀도에서 신뢰밀도로’를 주제로 발표하며 차세대 핵심 경쟁 지표로 ‘신뢰밀도(Trust Density)’를 제시했다.
김 실장은 “그동안 배터리 산업은 에너지밀도를 높이는 데 집중해 왔지만 앞으로 고객은 총소유비용(TCO)과 다운타임 위험까지 고려하는 신뢰 중심의 의사결정을 하게 될 것”이라며 “다음 세대 배터리를 정의하는 핵심 가치는 에너지밀도가 아닌 신뢰밀도”라고 강조했다.

▲ 김규식 SK온 실장은 차세대 배터리의 경쟁 기준이 에너지밀도에서 신뢰밀도로 전환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SK온이 제시한 신뢰밀도는 예측 가능성과 안전마진, 지속 신뢰성을 계량화한 개념이다. 사고 이후 대응하는 기존 안전관리에서 벗어나 AI를 활용해 위험을 사전에 예측하고 예방하는 것이 핵심이다.
이를 위해 SK온은 Predict, Prevent, Protect로 구성된 AI 기반 ‘3P Zero’ 운영체계를 구축하고, 황화물계 전고체 배터리와 고안전성 소재, 파우치 CTP(Cell to Pack), 액침 냉각 등 하드웨어 기술과 함께 설계부터 제조, 운영까지 AI로 연결하는 ‘배터리 개발 체인(Battery Development Chain)’을 구축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이번 컨퍼런스는 국내 배터리 3사가 바라보는 차세대 경쟁의 방향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이 ‘운영 혁신’을, 삼성SDI가 ‘개발 혁신’을, SK온이 ‘가치 혁신’을 각각 제시한 것은 차세대 배터리 산업의 경쟁 축이 제조 성능 향상을 넘어 전 생애주기 관리로 확대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결국 차세대 배터리 경쟁은 더 높은 성능과 에너지밀도를 확보하는 제조 경쟁에서 벗어나 개발부터 제조, 운영, 유지관리까지 전 생애주기를 데이터로 연결하고 AI를 통해 예측과 최적화, 신뢰성을 높이는 ‘지능형 배터리’ 경쟁으로 빠르게 재편되고 있음을 보여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