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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평] 위기지역 R&D, 지역주도가 탄소중립 열쇠
이후경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 책임연구원
[투데이에너지] 석유화학과 철강 등 주력산업의 경기침체가 극복을 위해 정부는 ‘산업위기선제대응지역’을 지정하고 금융·고용·투자·R&D 등 다각적인 지원에 나서고 있다. 단기적인 유동성 지원을 넘어 지역 산업의 근본적 체질 개선과 에너지 구조의 저탄소·고효율화를 위기 극복의 핵심으로 본 것이다.
그러나 지방자치단체에 대규모 R&D 예산이 배정되더라도 집행 단계에서 전담 인력과 전문성 부족이라는 문제가 나타날 수 있다. 문제는 전문기관의 참여 자체가 아니라, 지역을 위한 R&D 사업이 중앙 주도로 운영되는 모순이 나타날 수 있다는 데 있다. 이러한 방식이 반복되면 산업위기 대응 R&D는 명목상으로는 지역사업이지만, 실질적으로는 기존의 중앙집중형 사업 구조로 회귀할 수 있다. 예산은 지역을 위해 편성돼도 문제 정의와 과제 선정, 성과 활용의 주도권은 지역 밖에 남을 수 있다는 뜻이다.
'산업위기 선제대응 지역'은 모든 지역을 동일한 방식으로 지원하기 위한 제도가 아니다. 특정 산업에 대한 높은 의존도와 기업 생태계의 취약성, 고용과 지역경제로 이어지는 연쇄적 위험 등 지역별 위기 특성을 인정하기 때문에 지정하는 것이다. 따라서 R&D 사업도 일반적인 전국 단위 공모의 틀을 그대로 적용해서는 안 된다. 형식적 공정성과 전국 공통 절차를 앞세워 위기지역 기업이 주변부로 밀려난다면, 지역 고유의 위기와 산업 수요를 제대로 반영하기 어렵다.
정부가 고민해야 할 것은 과제 수와 예산 집행률보다 지역기업의 에너지 비용 상승, 환경규제대응력, 제품 경쟁력 저하 등의 현안 해결과 5 년, 10년 뒤 에너지 전환을 설계해야 한다.
석유화학 집적지역의 R&D는 고부가가치 소재 개발, 원료 다변화, 공정 효율 향상, 탄소순환 기술 개발로 연결돼야 하고, 철강 집적지역의 R&D는 고부가가치 강재 개발, 저탄소 공정 전환, 공정열의 전기화, 폐열회수, 스마트 제조로 이어져야 한다.
이를 위해 위기지역 기업의 실질적인 참여를 제도적으로 보장해야 한다. ‘지역기업 참여 시가점 부여’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지역기업이 주관기관을 맡는 과제를 별도 트랙으로 편성하고, 그 밖의 과제에도 지역기업이 실증 수요기업이나 사업화 주체로 반드시 참여 하도록 해야 한다. 연구 주제 역시 중앙이나 외부 전문가가 미리 정한 기술 목록에서 출발할 것이 아니라, 지역기업을 대상으로 한 수요조사와 현장 진단을 바탕으로 도출돼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지역산업의 위기를 해결하기 위한 예산이 지역기업의 기술 역량을 높이고 생산설비를 확충하며 새로운 사업 기회를 창출하는 데 쓰이지 못한 채, 지역의 산업 수요와 분리된 단기 과제로 소진될 수 있다.
성과 평가 방식도 달라져야 한다. 논문과 특허, 기술성숙도만으로는 지역산업의 회복 여부를 판단하기 어렵다. 에너지 비용 절감, 생산성 향상, 불량률 감소, 신규 매출 창출, 고용 유지, 사업화 계약 체결, 지역 내 공급망 확대 등 산업 현장에 실제로 남는 성과를 중심으로 평가해야 한다.
지역기업의 R&D 역량이 충분하지 않을 경우, 대학과 출연연, 전문기관이 기술 개발과 사업 관리를 지원해야 한다. 그러나 사업 관리는 전문기 관이 지원할 수 있지만, 문제 정의와 연구 주제 선정, 실증과 사업화, 성과 활용은 지역기업이 중심이 돼야 한다.
위기지역 R&D의 성패는 예산 배정 규모보다 예산이 지역기업의 기술 역량 강화와 생산설비 확충, 전문 인력 확보에 기여하고 신규 매출과 사업 기회 창출로 이어졌는지에 달려 있다.
나아가 지역 주도의 R&D는 단순히 위기를 극복하는 임시방편에 그쳐서는 안 된다. 고탄소 배출 구조에 갇힌 지역 산업이 스스로 저탄소·친 환경 구조로 체질을 개선하고, 현장에 최적화된 독자적인 분산형 에너지 생태계를 구축해 나가는 도약의 발판이 돼야 한다. 현장을 가장 잘 아는 지역기업이 에너지 전환의 주체가 되지 못한 다면 국가적인 탄소중립 실현은 요원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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