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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럽 가스 수입, 히트펌프가 줄였다

투데이에너지
2026-07-31
 유럽 가스 수입, 히트펌프가 줄였다

유럽 가스 수입, 히트펌프가 줄였다 / AI 이미지

[투데이에너지 임자성 기자] 지난해 유럽은 천연가스 수요의 절반 가까이를 해외에서 수입했다. 러시아산 가스관 공급이 끊긴 이후 유럽 각국은 중동과 미국, 아프리카 등으로 수입선을 다변화하며 에너지 안보 강화에 나섰다. 하지만 정작 가장 조용하면서도 실질적인 효과를 낸 대책 가운데 하나는 뉴스에 자주 등장하지 않는다. 바로 가정과 건물의 난방기기인 히트펌프다.

국제에너지기구(IEA)가 최근 발표한 「히트펌프 모니터 2026」에 따르면, 2024년 유럽에 이미 설치된 히트펌프가 없었다면 건물 난방용 천연가스 수요는 지금보다 12% 더 많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약 200억 세제곱미터(20bcm)로, 유럽 여러 국가의 연간 가스 소비량을 합친 것과 맞먹는 규모다. 일본과 중국도 마찬가지다. 히트펌프가 없었다면 두 나라의 가스 수요는 각각 약 35% 더 높았을 것이라고 IEA는 분석했다.

이미 작동 중인 정책 효과

가스보일러를 히트펌프로 교체하는 일은 흔히 '탄소중립을 위한 미래의 과제'로 여겨진다. 그러나 데이터는 그 효과가 이미 현실에서 나타나고 있음을 보여준다. IEA에 따르면 유럽·중국·일본 3개 지역에서 히트펌프가 절감한 가스 수요는 2025년 기준 총 53bcm에 달하며, 이 수치는 매년 증가하는 추세다.

이 절감 효과가 특히 의미 있는 이유는 난방이 가스 수요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크기 때문이다. 유럽과 일본에서는 건물 난방이 전체 천연가스 수요의 약 50%를 차지하고, 산업 비중이 큰 중국에서도 20%에 이른다. 결국 난방 방식을 바꾸는 것만으로도 국가 전체의 가스 수급 구조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의미다.

난방기기 교체가 곧 외교·안보 이슈가 되는 이유

이런 상황에서 히트펌프는 단순한 '친환경 가전'을 넘어 에너지 자립 전략의 핵심 수단으로 재조명되고 있다. 이 같은 지표가 더욱 주목받는 이유는 각국이 에너지 자립 목표를 앞다퉈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유럽연합은 'REPowerEU' 계획을 통해 2027년 말까지 러시아산 화석연료 의존도를 단계적으로 없애는(phase-out) 목표를 추진하고 있다. 일본은 2030년까지 자국이 통제할 수 있는 석유·가스 공급 비중을 50%까지 높이겠다는 목표를 세웠으며, 중국 역시 전체 가스 수요의 약 40%를 수입에 의존하고 있어 에너지 안보는 세 지역 모두의 핵심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실제로 2024년 기준 유럽·중국·일본에는 여전히 2억 대가 넘는 가스보일러가 공간 난방용으로 사용되고 있다. 다시 말해, 아직 교체되지 않은 만큼의 잠재적인 가스 절감 여력이 남아 있다는 의미다.

정책의 강도에 따라 절감 효과는 3배 차이

IEA는 시나리오별로 향후 가스 절감 효과가 어떻게 달라지는지도 제시했다. 현재 시행 중인 정책만 유지되는 '현행정책 시나리오'(CPS)에서는 2035년까지 유럽의 연간 가스 수요를 추가로 14bcm 줄일 수 있다. 각국이 이미 공표한 정책까지 반영하는 '공표정책 시나리오'(STEPS)에서는 이 수치가 27bcm으로 늘어난다.

하지만 REPowerEU와 영국의 보급 목표가 2030년 이후에도 지속된다고 가정한 '가속 보급 시나리오'(Targets)에서는 절감 효과가 최대 연간 39bcm까지 확대된다. 이는 현재 유럽의 순가스 수입량의 약 16%에 해당하는 규모다. 다만 이는 IEA가 정책 목표의 지속을 전제로 산출한 분석용 시나리오로, 실제 절감 규모는 각국의 정책 이행 여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그럼에도 세 시나리오 간 차이는 정책 강도에 따라 히트펌프 보급 효과가 최대 3배 가까이 벌어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결국 기술은 이미 준비돼 있으며, 시장에 얼마나 일관되고 명확한 정책 신호를 보내느냐가 보급 속도를 좌우한다는 것이 보고서의 핵심 메시지다.

전력망에 떠넘겨지는 부담

물론 모든 효과가 긍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가스 수요를 줄이는 대신 히트펌프는 전력 수요를 늘린다. IEA는 현재 히트펌프로 인해 발생하는 최대 전력수요가 전체 피크수요의 2~16% 수준이라고 추산하는데, 이는 결코 무시하기 어려운 규모다. 실제로 미국에서는 히트펌프로 인한 피크 전력수요가 이미 130GW에 달한다.

다만 IEA는 이를 단순한 부담으로만 보지는 않는다. 건물의 열관성, 온수 저장탱크, 시간대별 요금제와 결합하면 히트펌프는 전력이 저렴하거나 재생에너지 발전량이 많은 시간대에 맞춰 가동을 조절하는 '유연성 자원'으로 활용될 수 있다. 즉, 가스 의존도를 낮추는 대신 전력망을 보다 효율적으로 운영하는 것이 새로운 과제로 떠오른 셈이다.

한국에 주는 함의

한국은 LNG 수입 의존도가 유럽보다도 높은 나라다. 가스보일러 교체는 개인의 난방비 절감 문제로 여겨지기 쉽지만, 이번 IEA 보고서는 이러한 개별 선택이 모여 국가 차원의 에너지 수급 구조를 바꿀 수 있음을 보여준다. 유럽이 20bcm의 가스를 절감했다는 숫자 뒤에는 수백만 가정의 보일러 교체가 있었다.

문제는 이 교체가 저절로 일어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IEA는 전기-가스 가격비가 낮고 장기적인 정책 지원이 지속되는 국가일수록 히트펌프 시장점유율이 높다고 분석한다. 결국 핵심은 기술이 아니라 정책의 일관성이다. 정부가 얼마나 명확하고 지속적인 정책 방향을 제시하느냐에 따라 향후 10년간 줄일 수 있는 가스 수입 규모는 최대 3배까지 차이가 날 수 있다.

[용어설명]

bcm (billion cubic meters, 십억 세제곱미터)= 천연가스의 부피를 나타내는 단위. 1bcm은 약 10억 세제곱미터로, 국가 단위의 가스 수급 규모를 비교할 때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단위.

CPS (Current Policies Scenario, 현행정책 시나리오)= 현재 법제화·시행 중인 정책만을 반영하고, 추가적인 정책 변화는 없다고 가정하는 IEA의 보수적 전망 시나리오.

STEPS (Stated Policies Scenario, 공표정책 시나리오)= 법제화 여부와 관계없이 각국이 이미 공표하거나 계획을 발표한 정책까지 반영한 시나리오.

가속 보급 시나리오 (Targets) = REPowerEU, 영국의 히트펌프 보급 목표 등 각국이 제시한 목표치가 2030년 이후에도 동일한 추세로 지속된다고 가정한 분석용 시나리오.

REPowerEU :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유럽연합이 발표한 에너지 정책 패키지

출처 : 투데이에너지(https://www.todayenergy.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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