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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칼럼] 국민성장펀드, 화석연료 연명펀드가 돼서는 안 된다

에너지신문
2026-08-07
▲ 양춘승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 상임이사
▲ 양춘승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 상임이사

[에너지신문] 정부가 추진하는 국민성장펀드는 이름 그대로 국민경제의 미래 성장을 위한 자금이어야 한다.

첨단산업을 육성하고 산업 인프라를 확충하며 민간 투자를 끌어내겠다는 취지 자체를 반대할 이유는 없다.

문제는 무엇을 성장시키고, 어떤 방식의 성장을 지원할 것인가이다.

최근 국민성장펀드의 1차 메가프로젝트 가운데 ‘반도체 클러스터 내 집단에너지 인프라 사업’에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의 신규 LNG발전소 건설 및 공적자금 지원 계획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향후 조성될 대규모 첨단 산업단지에서도 막대한 전력 수요를 이유로 LNG 열병합발전이 손쉬운 해결책으로 계속 추진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첨단산업에 안정적인 전력을 공급해야 한다는 점은 분명하다. 반도체,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산업은 초고품질의 24시간 연속 전력을 필요로 한다. 전력 부족이나 전압 강하로 산업 투자가 지연되거나 생산 차질이 발생해서는 결코 안 된다.

그러나 안정적 전력 공급이 필요하다고 해서 곧바로 ‘신규 화석연료 발전소’가 필수적이라는 결론은 지나치게 성급하다.

더욱이 엄격한 사전 검증과 정책적 타당성을 면밀하게 검토하지도 않고 그 발전소를 국민의 공적자금으로 건설해야 한다는 결정은 받아들이기 어렵다.

LNG가 석탄보다 연소 시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적다는 이유로 그간 이른바 ‘전환연료’로 포장되어 왔다. 그러나 LNG 역시 명백한 화석연료다.

발전 과정의 이산화탄소 배출은 물론, 채굴, 액화, 운송 등의 과정에서 20년 기준 이산화탄소보다 지구온난화 효과가 80배 이상 높은 메탄이 다량 탈루(Fugitive Emissions)된다. 그래서 전 생애주기(LCA) 관점에서 본다면 LNG의 온실가스 감축 효과는 미미하다.

더 큰 문제는 글로벌 무역 환경의 변하고 있다는 점이다. Apple, Nvidia 등 글로벌 IT 기업들은 공급망 전체에 RE100(100% 재생에너지) 준수를 요구하고 있으며,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등 탄소 무역장벽이 구체화되고 있다.

LNG 전력에 의존해 만들어진 반도체는 당장의 공장 가동에는 도움이 될지 몰라도, 향후 글로벌 시장에서 심각한 탄소 규제로 판로가 막힐 가능성이 크다. 당장의 전력 공급을 이유로 LNG를 고집하는 것은 우리 핵심 수출산업의 발목을 잡는 치명적 패착이 될 수 있다.

정부는 한편으로 2050 탄소중립과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NDC) 달성 의지를 내세우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국민성장펀드를 통해 신규 화석연료 인프라에 자금을 대는 이중성을 보이고 있다.

정부가 알아야 할 사실은 이런 이중성이 단순한 정책적 일관성의 문제를 넘어 엄중한 재정적 책임의 문제라는 점이다.

국민성장펀드는 사적 투자자의 자금이 아니다. 정부가 정책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조성하고 정책금융기관이 참여하는 공적 성격의 자금이다.

따라서 단기적인 사업성만이 아니라 국가 기후목표와의 정합성, 장기적 재무위험, 환경과 지역사회에 미치는 영향까지 다각도로 검토해야 한다.

특히 ‘좌초자산(Stranded Assets)’ 위험을 가볍게 봐서는 안 된다. 보통 30년 이상 가동돼야 할 발전소가 탄소가격 상승, 기후 규제, 재생에너지 발전단가 하락 등의 요인으로 인해 조기에 가동률이 떨어지거나 폐쇄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결국 발전소는 좌초자산이 돼 투자금을 회수할 수 없는 대규모 재무적 손실이 발생할 것이고, 이는 결국 공공부문과 국민의 혈세 부담으로 귀결될 것이다.

더욱 치명적인 것은 기회비용이다. 정책금융의 자금은 무한하지 않다. 유한 자금이 LNG 발전소와 가스 공급망에 묶이게 되면, 재생에너지 확대, 지능형 전력망(Smart Grid) 구축, 대규모 에너지저장장치(ESS) 도입, 산업체 수요관리 및 효율 향상 등 장기적 에너지 시스템 구축에 쓸 자금은 부족할 것이다.

과거의 에너지 체계를 연장하는 데 공적자금을 소진하면서 미래 성장산업을 지원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명백한 모순이다.

정책금융은 민간 금융이 이미 활발히 참여하는 전통적인 사업에 돈을 보태는 역할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시장이 단기 수익성이나 기술 위험 때문에 머뭇거릴 때, 국가적으로 반드시 선제 구축해야 하는 분야에 리스크를 무릅쓰고 자금을 공급, 민간 자금이 따라오게 하는 것이 정책금융의 본래 역할이다.

그런 의미에서 국민성장펀드는 신규 화석연료에 기반한 추가 발전소 건립보다 전력망과 저장장치 인프라에 먼저 주목해야 한다.

재생에너지 설비를 늘리는 것 못지않게, 전력을 필요한 곳으로 수송하는 송배전망, 출력 변동성을 보완할 ESS 및 양수발전, 소비자의 사용시간을 조절하는 수요반응(DR) 체계를 통합 구축해야 한다.

따라서 신규 발전설비를 검토할 때는 ‘대안 우선 원칙(Hierarchy of Alternatives)’을 제도화해야 한다.

신규 LNG 발전소를 계획하기 전에, 재생에너지 확대와 전력망 보강, 저장장치 및 수요 분산의 조합으로 필요한 전력을 공급할 수 있는지를 최우선 검토해야 한다.

이러한 대안이 기술적으로 또 경제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점이 객관적이고 투명하게 입증될 때에만 제한적이고 예외적적으로 LNG 발전소 투자를 논의해야 한다.

아울러 국민성장펀드에는 구속력 있는 ESG 투자원칙 및 화석연료 배제기준이 명확히 수립돼야 한다. 펀드의 발굴, 심사, 승인, 집행, 성과평가 전 과정에 걸쳐 신규 석탄 및 LNG 인프라에 대한 투자를 원칙적으로 배제해야 한다.

불가피한 예외를 인정하더라도, 비화석연료 대안이 없다는 점, 국가 NDC 목표와 충돌하지 않는다는 점, 그리고 명확한 조기 퇴출(Phase-out) 계획이 수립됐음을 입증해야 한다.

또한 투자 판단 과정의 투명성을 대폭 강화해야 한다. 어떤 기준으로 사업을 선정했는지, 온실가스 배출과 좌초자산 리스크를 어떻게 평가했는지 국민에게 소상히 공개해야 한다. 공적자금의 운용이 커튼 뒤의 내부 판단에만 맡겨져서는 안 된다.

국민성장펀드는 민간 자본의 흐름을 바꾸는 마중물이 돼야 한다. 민간 금융기관이 화석연료 투자에서 벗어나 재생에너지, 산업의 탈탄소, 기후기술(Climate Tech)과 정의로운 전환으로 자금을 이동하도록 위험을 분담하고 공동투자 구조를 설계해야 한다.

정부는 국민성장펀드의 성공을 단순히 ‘투자 집행액’이나 ‘프로젝트 건수’로 평가해서는 안 된다. 그 자금이 산업의 구조적 체질 개선을 앞당겼는지, 국가의 미래 수출 경쟁력을 높였는지, 국민의 자산을 기후위험과 좌초자산으로부터 안전하게 보호했는지로 평가받아야 한다.

첨단산업을 육성한다며 낡은 화석연료 체계를 확대하는 것은 미래 투자가 아니다. 그것은 미래산업의 이름으로 과거의 산업구조를 연장하는 것에 불과하다.

국민의 돈은 국민의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해 사용돼야 한다. 공적자금은 화석연료의 수명을 연장하는 연명자금이 아니라, 미래산업의 등장을 앞당기는 마중물 자금이어야 한다.

국민성장펀드가 진정한 '성장' 펀드로 자리매김하기 위해, 신규 LNG 발전소 투자 계획을 재검토하고, 책임 있는 ESG 투자원칙을 즉시 수립할 것을 촉구한다.

출처 : 에너지신문(https://www.energy-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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