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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논단] 초격차 시대의 교두보, 양성자가속기
송고일 : 2026-01-02
▲ 이재상 한국원자력연구원 양성자과학연구단장[에너지신문] 2025년 12월 8일, 4차 누리호에 탑재된 13기의 위성과 지상 교신이 모두 성공했다는 기사를 접했다. 한국 우주사에서 탑재된 모든 위성이 교신까지 성공한 첫 사례이다.
11월 27일 발사 초기 9기의 위성과는 교신에 성공했지만, 남은 위성 3기에 대한 소식이 늦어져 조마조마한 마음이 들었다. 왜냐하면 남은 위성 중 ‘EEE-테스터-1’과 ‘비-1000’소형 위성에 한국원자력연구원의 양성자가속기를 이용해 테스트한 삼성전자의 DRAM과 NAND, 스페이스린텍의 우주신약개발키트 등에 사용될 전자부품이 탑재됐기 때문이다.
지상교신 성공을 접한 후 나름 우리 양성자가속기가 대한민국의 우주사에 조금이나마 기여했다는 사실에 뿌듯함을 느꼈다. 양성자가속기에서 테스트한 부품들은 차례로 우주에 계속 보내질 계획이다.
올해 계획된 미국 아르테미스 2호에 실릴 K-RadCube 위성에 탑재되는 한국천문연구원의 ‘K-RAD’계측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반도체 소자, 5차 누리호의 ‘EEE-테스터-2’위성에 탑재될 SK하이닉스의 반도체 소자 등이 그 주인공이다.
우주로 보내는 반도체, 전자부품은 왜 양성자가속기를 이용해 시험할까? 이유는 간단하다. 우주에는 양성자, 중이온 등 고에너지 방사선이 존재한다. 이러한 우주방사선 환경에서 메모리, 통신부품 등의 건전성을 사전에 확인하기 위해 국제표준에서 부품에 대한 방사선 영향평가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이는 우주와 비슷한 환경에서 방사선에 의한 전자부품의 오류를 최소화하기 위해 우주방사선 환경을 모사할 수 있는 양성자, 감마선, 중이온 시설을 이용해 사전에 모의 테스트를 하는 것이다.
과거 국가 주도의 위성이 연간 약 100여기가 발사됐다면, 2015년 이후 민간 주도 뉴스페이스 시대가 본격화되면서 2023년도에는 연간 2900여기의 위성이 발사됐다. 이에 가속기를 이용한 우주방사선 모의 테스트 수요가 급증했지만, 전 세계적으로도 활용 가능한 가속기가 많지 않은 실정이다. 또한 최근 자국우선주의가 팽배한 국제정세로 국내기업의 외국시설 이용이 제한돼 국내에서 적합한 시설을 확보하거나 고도화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한 상황이다.

▲한국원자력연구원 양성자과학연구단의 100MeV 양성자가속기.한편, 2000년대 들어 우주방사선 영향뿐만 아니라 대기방사선 영향, 즉 지표 위에서 동작하는 전자부품의 방사선 영향에 대해 반도체와 자동차 업계의 관심이 급속히 증가했다. 그 시작은 2009년 발생한 도요타 자동차의 급발진 사건이었다.
이 사건의 원인은 기계적 결함으로 결론이 났지만, 민사소송에서 전문가 그룹이 소프트웨어 오류가 자동차 급발진 원인 중 하나일지 모른다는 분석결과를 제기했다. 이후 자동차 업계에서는 차량용 전자제품 소프트웨어 오류에 관심을 가졌고, 우주방사선에 의한 반도체 오류 현상을 주목하기 시작했다. 또한, 2008년 호주 콴타스(Qantas) 항공 비행기 비상착륙 사고에 대한 호주 교통안전국의 사고 원인 결과보고서에서 비행 소프트웨어 오류의 잠재적 원인 중 하나로 대기·우주방사선 가능성을 제시했다.
이러한 사건들로 인해 2016년 이후 자동차 등 이송기기에 탑재되는 전자부품에 대한 소프트웨어 오류 검사를 국제표준에서 권고 혹은 의무화했다.
그런데 우주에서 오는 방사선이 어떻게 지표면까지 도달해 반도체나 전자부품에 영향을 미치는 걸까? 우주에는 태양이나 심우주에서 오는 고에너지 방사선(주로 양성자)이 존재하며, 이들은 지구 자기장이 약한 극지방 대기권으로 주로 유입된다. 이후 지구 대기권 내의 질소나 산소 등의 원자핵과 반응해 고에너지 중성자를 포함한 2차 방사선 입자들을 발생시키며, 지표면에 도달하는 입자 대부분은 중성자이다.

▲방사선 영향평가를 위한 고에너지 양성자 빔 조사시설.국제표준에 따르면 지표에 도달하는 중성자 수는 위치, 고도, 태양흑점 활동 등에 따라 달라지지만 대략 시간당 cm²당 10개 내외이다. 지표면에 도달한 고에너지 중성자는 양성자나 중이온이 전자부품을 통과할 때와 마찬가지로 반도체 소자 내부에 미세 손상을 발생시켜 전하의 불균형으로 오류를 발생시킬 수 있다.
예전에도 비슷한 수의 중성자가 지표면에 도달했고 지금도 마찬가지인데, 왜 지금 중성자의 영향을 고려해야 할까? 그 답은 반도체의 집적화에 있다. 반도체가 급격히 집적화되면서 전자부품의 단위 부피당(큐빅센티미터) 명령의 개수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다. 이에 따라 중성자 하나가 지나가면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명령의 숫자가 증가해 오류를 관리할 수 있는 최소 기준을 넘어섰기 때문이다.
한편, 한국원자력연구원 양성자과학연구단은 경북 경주에서 100MeV 양성자가속기를 2013년부터 13년째 운영하고 있으며, 이를 활용해 우주부품, 반도체 소자/기판의 방사선 영향평가를 수행하고 있다. 100MeV 양성자가속기는 현재 국내 최대 에너지의 선형 양성자가속기이자 국내 최대 고에너지 중성자 조사시설이다.
연간 3000시간 이상 무사고로 운전해 2022년말 기준 3만 시간을 돌파했다. 운영 초기에는 의료, 생명, 신소재, 부품, 에너지, 환경, 기초과학 등의 연구에 활용됐다. 2016년 반도체·우주부품 방사선 영향평가를 위한 저선량 빔라인이 구축된 이후 반도체 분야의 방사선 영향평가 이용 수요가 증가했고, 2020년부터 우주 분야의 이용 수요가 급증해 현재 전체 양성자가속기 빔타임의 약 70%를 반도체와 우주 분야에서 활용하고 있다.
이에 2021년 9월 경주 100MeV 양성자가속기는 반도체 방사선 영향평가 국제표준(JEDEC/JESD89B)에 방사선 영향평가시설로 등재됐다.

▲한국원자력연구원 양성자과학연구단 전경.지난해부터는 국내 최초로 고에너지 중성자 서비스를 개시해 반도체 분야 수요에 대응하고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필두로 연간 10여개의 기업이 전체 빔타임의 30% 이상을 활용하고 있다. 또한 수요의 척도인 빔타임 경쟁률의 경우 운영 초기 1.5:1이었으나, 2024년 경쟁률이 4대1을 넘어섰다.
이에 2024년 하반기부터 24시간 빔 서비스를 시범 운영하며 국가 대형연구시설로서의 역할을 다하고 있다.
이처럼 국내 반도체 업체와 중소·중견 우주 스타트업들이 양성자가속기를 앞퉈어 활용하고 있지만, 최대 에너지가 100MeV로 국제표준 에너지 최소수준인 200MeV보다 낮아 현실적으로 국제표준에 준하는 해외시설 시험 이전에 사전 테스트용으로 활용되는 실정이다.
더욱이 최근 전 세계적인 가속기 빔타임 부족으로 인해 해외시설이 자국 우선 정책을 추진하고 있어 국내 기업은 이중고를 겪고 있다.
이에 국내 반도체·우주 분야의 수요에 맞춰 경주 양성자가속기의 최대 에너지를 국제표준에 맞춰 200MeV로 확장하는 것이 시급하다. 이를 통해 명실상부한 세계적인 반도체·우주부품 방사선 영향평가 시설로 거듭나야 한다. 반도체·우주 초격차 시대 우리나라 반도체 세계 2강과 세계 5대 우주강국 도약에 경주 양성자가속기가 교두보가 되길 기대해 본다.
출처 : 에너지신문(https://www.energy-news.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