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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원전쟁 2라운드…‘캐는’ 것이 아니라 ‘회수’한다

    송고일 : 2026-05-27

    [에너지신문] 충남의 한 폐배터리 재활용 공장. 컨베이어벨트를 따라 이동하던 전기차 폐배터리가 파쇄기로 들어가자 검은 분말이 쏟아졌다. 산업계에서는 이를 ‘블랙매스(Black Mass)’라고 부른다.

    폐기물처럼 보이지만 이 안에는 리튬과 니켈, 코발트, 망간 같은 핵심 광물이 들어 있다. 전기차와 배터리, 반도체, AI 데이터센터 산업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면서 세계 각국이 확보 경쟁에 뛰어든 전략 자원들이다.

    광물을 둘러싼 세계 질서가 바뀌고 있다. 과거 자원전쟁이 석유와 철광석, 천연가스를 확보하기 위한 경쟁이었다면, 이제는 버려진 배터리와 전자폐기기 속 금속을 다시 회수하는 ‘도시광산(Urban Mining)’이 새로운 전장이 되고 있다.

    광물을 캐기 위해 해외 광산을 확보하던 시대에서, 도시 속 폐기물에서 자원을 회수하는 시대로 산업 패러다임이 이동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중국의 희토류 통제와 미국·유럽의 공급망 재편 정책이 본격화되면서, 자원 빈국인 한국에서도 도시광산 산업이 국가 전략산업으로 빠르게 부상하고 있다.

    ▲ 자원산업이 해외 광산을 확보하던 시대에서 도시 속 폐기물에서 자원을 회수하는 시대로 산업 패러다임이 이동하고 있다.
    ▲ 자원산업이 해외 광산을 확보하던 시대에서 도시 속 폐기물에서 자원을 회수하는 시대로 산업 패러다임이 이동하고 있다.

    반도체보다 더 무서운 건 ‘광물’

    핵심광물은 이제 단순 원자재가 아니라 국가 안보 자산으로 취급된다. 리튬과 니켈, 코발트는 전기차 배터리의 핵심 소재이고, 희토류는 전기차 구동모터와 풍력발전기, 방산 장비에 필수적으로 사용된다.

    AI 반도체와 데이터센터 역시 구리와 갈륨, 게르마늄 같은 희소금속 없이는 작동할 수 없다.

    문제는 공급망 구조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글로벌 희토류 정제의 약 90%가 중국에서 이뤄지고 있으며, 배터리 핵심 소재인 흑연 가공 역시 대부분 중국 공급망에 의존하고 있다.

    리튬 정제 분야에서도 중국 비중은 60~70% 수준에 달하는 것으로 분석된다. 특정 국가에 공급망이 집중된 구조가 향후 글로벌 산업 리스크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실제로 중국은 최근 희토류와 핵심광물 수출 통제를 강화하며 글로벌 공급망 긴장을 높이고 있다. 미국과 유럽 역시 공급망 재편에 속도를 내고 있다.

    미국 IRA(인플레이션 감축법)와 유럽 핵심원자재법(CRMA)은 핵심광물 재활용 비율 확대와 공급망 다변화를 주요 정책 목표로 내세우고 있다.

    업계에서는 “반도체보다 더 위험한 건 광물”이라는 말까지 나온다. 공장이 있어도 리튬과 희토류가 없으면 배터리와 전기차 모터를 만들 수 없기 때문이다.

    자원업계 관계자는 “과거에는 광물을 얼마나 싸게 수입하느냐가 중요했다면 이제는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느냐가 더 중요한 시대”라며 “폐기물 기반 재자원화 산업이 공급망 안보 차원에서 주목받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광산은 도시 안에 있다

    도시광산이라는 개념은 이미 산업 현장에서 현실이 되고 있다. 전기차 폐배터리를 분쇄하면 리튬·니켈·코발트·망간 등이 혼합된 블랙파우더가 나온다.

    이후 화학 공정을 거쳐 금속을 분리·정제하면 다시 배터리 원료로 사용할 수 있다. 사용이 끝난 스마트폰과 노트북, 서버 기판에서도 금·은·구리와 희소금속을 회수할 수 있다.

    업계에서는 폐전자기기 1톤에서 회수할 수 있는 금 함량이 일부 금광석보다 훨씬 높다는 분석도 내놓고 있다. 실제로 폐휴대전화와 서버 기판에는 고순도 금속이 다량 포함돼 있어 “도시가 곧 광산”이라는 표현까지 등장한다.

    과거 자원기업들이 남미 리튬 광산 확보 경쟁에 뛰어들었다면, 이제는 폐배터리 수거망 확보 경쟁이 시작되고 있다. 폐배터리 자체가 새로운 전략 자산이 되고 있다는 의미다.

    한 재활용업체 관계자는 “예전에는 폐배터리를 처리 비용이 드는 산업폐기물로 봤지만 지금은 확보 경쟁이 벌어질 정도”라며 “폐배터리 가격이 광물 시세에 따라 움직이는 시대가 됐다”고 말했다.

    폐배터리 시장 선점 경쟁 ‘본격화’

    국내 기업들도 시장 선점 경쟁에 속도를 내고 있다. 성일하이텍과 새빗켐, 포스코HY클린메탈 등은 폐배터리 재활용 공정 확대에 나서고 있으며, 고려아연과 LS MnM 등 비철금속 기업들도 전자폐기물 재자원화 사업 확대를 추진 중이다.

    특히 배터리 재활용은 단순 폐기물 처리 산업을 넘어 공급망 안정화 산업으로 성격이 바뀌고 있다. 배터리 제조사 입장에서는 원료 가격 변동성과 공급망 리스크를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시장 성장 전망도 가파르다.

    시장조사업계에 따르면 글로벌 전기차 폐배터리 시장은 2030년 전후 급성장 국면에 진입할 것으로 예상된다. 글로벌 폐배터리 발생량 역시 2030년 약 1100만~1200만톤 수준까지 증가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국내에서도 전기차 보급 확대에 따라 사용 후 배터리 배출량이 빠르게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면서 회수·재활용 산업 육성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업계에서는 향후 폐배터리 확보 경쟁이 핵심광물 공급망 경쟁으로 이어질 가능성에도 주목하고 있다. 지금은 초기 시장이지만 향후 본격적인 ‘폐배터리 자원 시대’가 열릴 가능성이 크다는 의미다.

    한국은 배터리 제조 경쟁력은 세계 최고 수준이지만 핵심광물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리튬과 희토류 공급망 불안이 커질수록 재자원화 산업 중요성도 함께 커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희토류 재활용…가장 어려운 기술 전쟁

    도시광산 산업 가운데 가장 높은 기술 장벽을 가진 분야는 희토류 재활용이다. 희토류는 전기차 모터와 풍력발전기에 사용되는 영구자석 핵심 소재지만 분리·정제 과정이 매우 복잡하다.

    특히 네오디뮴(Nd)과 디스프로슘(Dy) 같은 희토류는 소량만 포함돼 있어 경제성을 확보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공급망 리스크가 커지면서 희토류 재활용 기술 확보 경쟁도 치열해지고 있다. 폐모터와 폐자석에서 희토류를 회수하는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으며, 친환경 공정 개발도 주요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한국지질자원연구원(KIGAM)은 희토류 선광·분리·정제 기술 국산화와 함께 강산 사용을 줄인 저탄소 재활용 기술 개발에 나서고 있다. 업계에서는 향후 전기차 폐모터와 풍력발전 설비 교체 수요가 늘어나면 희토류 재활용 시장도 빠르게 성장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AI 시대…전자폐기물이 전략자산 된다

    AI 산업 확대 역시 도시광산 시장 성장의 새로운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생성형 AI와 데이터센터 산업이 급성장하면서 서버와 반도체 폐기물도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데이터센터에는 구리와 금, 은, 갈륨, 게르마늄 등 다양한 희소금속이 사용된다. AI 인프라 경쟁이 심화될수록 관련 금속 수요도 함께 증가할 수밖에 없다.

    반도체 생산 과정에 사용되는 갈륨과 게르마늄 역시 전략 자원으로 부상하고 있다. 갈륨은 고성능 반도체와 전력반도체 소재로 활용되며, 게르마늄은 광통신과 적외선 센서 등에 사용된다.

    최근 중국이 갈륨과 게르마늄 수출 통제를 강화하면서 글로벌 산업계 긴장감도 커지고 있다. AI 산업 성장과 맞물려 희소금속 확보 경쟁이 본격화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업계에서는 앞으로 데이터센터 폐기물이 새로운 자원 공급원 역할을 할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AI 데이터센터는 서버 교체 주기가 상대적으로 짧고, 고성능 장비 교체 속도도 빠르다. 생성형 AI 경쟁이 치열해질수록 기존 서버와 반도체 폐기물 발생량도 함께 증가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AI 산업 확대는 전력 소비 증가 문제와도 연결된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글로벌 데이터센터 전력 수요가 AI 확산과 함께 급증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데이터센터 건설 경쟁이 심화될수록 서버와 반도체 생산량도 증가하고, 이는 다시 핵심광물 수요 확대와 전자폐기물 증가로 이어지는 구조다.

    업계에서는 앞으로 AI 산업과 도시광산 산업이 서로 연결되는 흐름이 더욱 뚜렷해질 것으로 보고 있다. 데이터센터 폐기물이 단순 산업폐기물이 아니라 핵심 광물을 공급하는 새로운 ‘도시 광산’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의미다.

    한 업계 관계자는 “앞으로는 폐배터리뿐 아니라 서버와 반도체 스크랩까지 핵심 광물 공급원이 될 수 있다”며 “AI 시대에는 전자폐기물이 곧 전략 자산이 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재활용만으로는 한계”…남은 과제도

    다만 도시광산 산업이 만능 해법은 아니라는 지적도 나온다. 핵심광물 회수 과정에는 여전히 높은 비용이 들어가고, 폐배터리 수거 체계와 경제성 확보 문제도 해결 과제로 남아 있다. 특히 희토류는 재활용 기술 난도가 높아 아직 상용화 초기 단계라는 평가가 많다.

    폐기물 확보 경쟁 역시 변수다. 전기차 시장 확대와 함께 폐배터리 가치가 높아지면서 국가 간·기업 간 확보 경쟁도 치열해지고 있다.

    업계에서는 향후 폐배터리 자체가 전략 자원처럼 거래될 가능성도 거론한다. 또 재활용만으로 급증하는 글로벌 광물 수요를 모두 충당하기 어렵다는 분석도 나온다. 결국 신규 광산 개발과 도시광산 산업 확대가 동시에 추진돼야 한다는 의미다.

    그럼에도 전문가들은 도시광산 산업이 공급망 위기 시대의 핵심 전략 산업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한 산업 전문가는 “자원전쟁 1라운드가 광산 확보 경쟁이었다면, 이제는 폐기물 속 금속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회수하느냐가 경쟁력이 되는 시대”라며 “도시광산은 공급망 안보와 탄소중립을 동시에 연결하는 미래 산업으로 자리 잡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출처 : 에너지신문(https://www.energy-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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