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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논단] 정유강국 다음 50년, 열쇠는 ‘바이오연료’
송고일 : 2026-05-28
▲ 김재훈 성균관대학교 기계공학부/화학공학부/저탄소에너지공학과/성균나노과학기술원 교수.[에너지신문] 미국·이란·이스라엘 전쟁으로 확산된 중동 위기는 우리에게 익숙하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질문을 다시 던지고 있다.
원유와 천연가스를 대부분 해외에 의존하는 대한민국 경제는 언제까지 중동 공급망의 불확실성을 견딜 수 있는가.
호르무즈 해협은 2024년 기준 하루 평균 약 2000만 배럴, 전 세계 석유 액체연료 소비의 약 20%가 통과하는 핵심 에너지 통로다.
이 길목이 불안해지는 순간 한국 정유·석유화학 산업은 단순한 원가 상승을 넘어 원료 조달, 항공유·경유·나프타 공급, 수출 경쟁력 전반에서 구조적 리스크에 직면한다.
최근 원유 가격이 중동 정세와 휴전 가능성에 따라 급등락을 반복한 것도 에너지 안보가 더 이상 과거형 의제가 아님을 보여준다.
대한민국은 원유 한 방울 나지 않는 나라였지만 두 차례 석유파동을 겪으며 오히려 정유·석유화학 산업을 국가 주력산업으로 키워냈다.
1970년대의 돌파 전략은 명확했다. 대규모 설비투자, 규모의 경제, 수출 주도형 산업화였다.
그 결과 한국은 세계 5위권 정유능력을 보유한 국가가 됐고 휘발유·경유·항공유·나프타 등 고부가 석유제품을 수출하는 제조 강국으로 성장했다.

▲ 한화토탈에너지스 대산공장 전경.최근 산업계 자료에 따르면 한국의 2024년 정제능력은 하루 약 336만배럴로 세계 5위 수준이며 원유를 전량 수입하면서도 석유제품 수출 경쟁력을 확보한 드문 사례로 평가된다. 그러나 과거의 성공 방정식이 앞으로도 유효하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1970년대에는 ‘더 큰 설비’가 경쟁력이었지만 앞으로의 50년은 ‘더 낮은 탄소집약도’와 ‘더 안정적인 대체 원료 공급망’이 경쟁력을 결정한다. 세계 시장은 이미 움직이고 있다.
미국은 재생연료표준(RFS)을 통해 바이오에탄올, 바이오디젤, 재생디젤, 셀룰로오스계 연료 시장을 장기간 키워왔고 유럽은 ReFuel EU Aviation과 FuelEU Maritime을 통해 항공과 해운 부문의 저탄소 연료 사용을 제도적으로 강제하고 있다.
EU는 항공유 공급자에게 2025년 2%에서 2050년 70%까지 SAF 혼합비율을 높이도록 요구하고 해운 부문에서도 2025년부터 선박 연료의 온실가스 집약도를 단계적으로 낮춰 2050년 최대 80% 감축을 목표로 한다.
일본도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일본 정부는 2030년까지 항공유의 10%를 SAF로 대체한다는 목표를 세웠고 2025년에는 폐식용유 기반 HEFA 공정을 활용한 자국 내 첫 SAF 상업 생산이 시작됐다.
일본 정유사와 종합상사들은 폐식용유, 식물성 오일, 바이오에탄올 등 SAF 원료 확보를 위해 국내외 공급망 구축에 나서고 있으며 정부는 설비투자 보조와 제도 설계를 병행하고 있다.
일본 역시 바이오매스가 풍부한 국가는 아니지만 부족하다는 이유로 포기하지 않았다.
오히려 부족하기 때문에 정부가 먼저 시장을 만들고 민간이 투자할 수 있는 공급망을 설계하고 있다.
우리도 정책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정부는 2022년 ‘친환경 바이오연료 확대 방안’을 통해 기존 바이오디젤·바이오중유·바이오가스·바이오에탄올 중심의 제도를 바이오항공유와 바이오선박유까지 확대할 필요성을 제시했다.
또 바이오디젤 의무혼합비율을 2030년 8%까지 높이고 바이오항공유는 2026년 국내 도입, 바이오선박유는 2025년 도입을 목표로 실증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바이오에탄올도 공공기관 차량과 시범 주유소를 대상으로 민간 주도 시범사업을 검토하기로 했다.
SAF 분야에서는 보다 구체적인 진전도 있었다. 산업통상부와 국토교통부는 2025년 9월 ‘SAF 혼합의무화제도 로드맵’을 발표하고 2027년부터 SAF 혼합의무비율 1%를 시행하며 2030년 3~5%, 2035년 7~10% 범위에서 의무비율을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 전세계 정유능력 상위 10개국.국내 출발 국제선 항공편의 급유 의무, SAF 얼라이언스, 품질기준 마련, 탄소감축률이 높은 원료에 대한 가중치 검토도 포함됐다.
이는 중요한 첫걸음이다. 그러나 냉정하게 보면 아직 ‘시장 형성’의 시작이지 ‘산업 주도권 확보’ 단계는 아니다.
가장 큰 문제는 원료다. 한국에는 사탕수수 대농장도, 옥수수 벨트도, 대규모 팜 농장도 없다.
폐식용유는 중요한 자원이지만 이미 대부분 수거·활용되고 있어 급증하는 SAF·바이오디젤·바이오선박유 수요를 감당하기 어렵다.
정부 자료도 바이오디젤·바이오중유의 주원료인 동·식물성 유지의 국산화율이 2016~2021년 평균 약 31%에 불과하고 해외 원료 69%는 주로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에서 수입된다고 진단한다.
국산 원료의 상당 부분은 폐식용유에 의존하고 있어 폐목재, 음식물폐기유, 폐플라스틱, 정유·석화공정 배출 CO₂ 등 추가 원료 발굴이 필요하다는 점도 이미 정부 문서에 명시돼 있다.
따라서 국내 바이오연료 정책은 단순히 ‘혼합비율을 몇 %로 올릴 것인가’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혼합의무는 수요를 만드는 장치일 뿐이다. 진짜 산업정책은 원료를 확보하고 전환기술을 개발하고 정유·석유화학 설비를 바이오 기반 공정으로 바꾸며 제품의 탄소감축 가치를 시장에서 인정받게 만드는 것이다.
미국과 유럽이 차세대 바이오연료를 우대하고, 비식량계·폐기물계·목질계 원료에 높은 가중치를 부여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단순히 식량계 바이오연료를 많이 쓰자는 것이 아니라 탄소중립 효과가 크고 지속가능성 논란이 적은 원료와 공정을 선점하려는 것이다.
바이오매스 자원, 국가 전략자원으로 재정의 해야 해외 바이오매스 공급망, 안보 차원에서 구축해야 비식량계·목질계 전환기술, 국가 핵심기술로 키워야한국은 바이오매스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바이오연료를 포기할 것이 아니라 부족하기 때문에 더 정교한 전략을 세워야 한다.
첫째 국내 바이오매스 자원을 국가 전략자원으로 재정의해야 한다. 폐식용유, 동물성 유지, 하수슬러지, 음식물폐기물 유래 오일, 농업 부산물, 산림 부산물, 폐목재, 제지 슬러지, 해양 바이오매스 등 현재 흩어져 있는 자원을 통합적으로 조사하고 수거·전처리·인증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국내 자원만으로 모든 수요를 충족할 수는 없지만 국내 자원 기반이 있어야 해외 공급망 협상력도 생긴다.
둘째, 해외 바이오매스 공급망을 에너지 안보 차원에서 구축해야 한다.
과거 원유 도입선을 다변화했듯이 이제는 폐식용유, 팜 부산물, 동물성 유지, 비식량계 오일, 목질계 바이오매스, 바이오에탄올, 바이오오일, 바이오나프타 전구체 등 다양한 저탄소 원료의 공급망을 확보해야 한다.
이는 개별 기업의 구매 활동만으로는 어렵다. 정부 간 협력, 장기 구매계약, 지속가능성 인증, 물류 인프라, 해외 전처리 거점, 금융 지원이 함께 설계돼야 한다.
일본 종합상사들이 SAF 원료 공급망 구축에 나서는 것처럼 한국도 정유사·상사·해운사·항공사·공공기관이 함께 움직이는 국가 차원의 플랫폼이 필요하다.

▲ 미국, EU, 영국, 일본, 한국의 바이오연료 정책 비교.셋째, 비식량계·목질계 바이오매스 전환기술을 국가 핵심기술로 키워야 한다.
지금 세계가 주목하는 것은 폐식용유 기반 HEFA만이 아니다. 셀룰로오스계 바이오에탄올, 알코올-투-젯(ATJ), 가스화-피셔트롭슈(FT), 열분해유·수열액화유 업그레이딩, 리그닌 기반 방향족 화합물, 바이오나프타와 바이오 BTX, CO₂와 그린수소를 활용한 e-SAF까지 기술 경쟁이 넓어지고 있다.
우리나라가 정유·석유화학 공정기술, 촉매, 수소화 처리, 분리정제, 반응공학에서 축적한 역량을 활용한다면 바이오연료는 낯선 산업이 아니라 기존 정유·석유화학 산업을 고도화하는 다음 플랫폼이 될 수 있다.
넷째, 정유공장을 ‘화석연료 정제소’에서 ‘탄소중립 연료·소재 생산 허브’로 전환해야 한다.
기존 정유설비는 좌초자산이 될 수도 있지만 반대로 가장 강력한 전환 자산이 될 수도 있다. 수소화처리 설비, 저장·혼합·출하 인프라, 품질관리 시스템, 항만과 파이프라인, 수출 네트워크는 바이오디젤, 재생디젤, SAF, 바이오선박유, 바이오나프타 생산에 그대로 활용될 수 있다.
문제는 방향이다. 지금 투자를 주저하면 설비는 낡은 탄소자산이 되지만 바이오 기반 공정과 결합하면 세계 시장에서 통하는 저탄소 연료·소재 플랫폼이 된다.
마지막으로 정책은 단기 보조가 아니라 장기 신뢰를 제공해야 한다.
기업은 1~2년짜리 실증사업만 보고 수천억원 규모의 설비투자를 결정할 수 없다. 혼합의무 로드맵, 세제 인센티브, 차액계약, 탄소감축 크레딧, 공공조달, 항공·해운 연계 수요 보장, LCA 기반 인증체계가 예측 가능하게 제시돼야 한다.
특히 바이오연료 정책은 산업부, 국토부, 해수부, 환경부, 기재부, 농식품부, 산림청 등 여러 부처에 걸쳐 있다.
부처별 사업을 나열하는 방식으로는 글로벌 경쟁을 따라갈 수 없다. 원료 확보부터 생산, 인증, 유통, 사용, 탄소감축 인정까지 하나의 국가 전략으로 묶어야 한다. 대한민국 정유·석유화학 산업은 지난 50년 동안 국가 경제를 떠받친 핵심 산업이었다.

▲ 한국 바이오연료 확산 전략.그러나 앞으로의 50년은 단순한 정제능력 순위로 결정되지 않는다.
탄소중립 규제가 강화되고 항공과 해운에서 저탄소 연료 사용이 의무화되며 글로벌 기업들이 공급망의 탄소발자국을 따지는 시대에는 ‘얼마나 많이 정제하느냐’보다 ‘얼마나 낮은 탄소로, 얼마나 안정적으로 얼마나 고부가 제품을 생산하느냐’가 더 중요하다.
정유강국의 지위를 유지하려면 새로운 DNA가 필요하다. 그 DNA는 친환경, 고부가, 공급망, 기술자립, 글로벌 인증이다. 바이오에탄올, 바이오디젤, SAF, 바이오선박유는 단순한 대체연료가 아니다.
한국 정유·석유화학 산업이 좌초자산의 길로 갈 것인지, 탄소중립 시대의 고부가 산업으로 재도약할 것인지를 가르는 시험대다.
지금 필요한 것은 ‘국내에는 바이오매스가 부족하다’는 체념이 아니다. 국내 자원을 끝까지 발굴하고 해외 공급망을 선점하며, 비식량계·목질계 전환기술을 확보하고 세계 5위권 정유 인프라를 탄소중립 연료 생산기지로 바꾸겠다는 국가적 결단이다.
석유파동의 시대에 대한민국은 규모의 경제로 위기를 돌파했다. 탄소중립과 에너지 안보가 동시에 요구되는 지금, 우리의 돌파 전략은 친환경과 고부가가 결합된 바이오연료 산업화여야 한다. 늦었지만 아직 기회는 있다. 다만 더 늦어서는 안 된다.
출처 : 에너지신문(https://www.energy-news.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