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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커스] 재생냉매 의무화, 기준 없이 출발하나
송고일 : 2026-06-01
냉매 전주기 관리체계 구축 시범사업’에 본격 착수 / AI 이미지
[투데이에너지 임자성 기자] 기후에너지환경부가 한국환경공단과 함께 ‘냉매 전주기 관리체계 구축 시범사업’에 본격 착수하면서 재생냉매 활성화를 핵심 과제로 내세웠다. 폐냉매에서 수분과 오염물질을 제거해 신품과 동일한 수준으로 재생하고, 이를 유지보수 현장에서 우선 사용하도록 공공기관 체계를 의무화하겠다는 방침이다.
방향은 맞다. 재생냉매가 활성화되면 수소불화탄소(HFCs) 수입량을 줄여 외화 유출을 낮추고, 온실가스 감축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문제는 의무화 자체가 아니라 이를 뒷받침할 기준과 검증 체계 없이 추진된다는 점이다. 의무화를 예고했다면 최소한 품질 기준 마련 일정, 검증 주체, 과도기 운영 방안이 함께 제시돼야 한다. 현재 정부 발표에는 이러한 구체적 방안이 제시되지 않았다.
기준 없는 의무화가 시장에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 이해하려면, 이미 이 길을 먼저 걸어간 해외 사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미국 — 품질 기준이 시장을 만들었다
미국은 선제적으로 마련한 재생냉매 품질 표준인 ‘AHRI 700’을 통해 시장 신뢰를 형성하고 장비 제조사의 품질 보증 토대를 마련했다. 기준이 정립되자 시장도 빠르게 반응해, 2024년 재생 수소불화탄소(HFC) 물량이 전년 대비 약 30% 증가하는 등 매년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이는 AIM Act에 따른 공급 축소와 가격 상승이 재생냉매의 경제성 확보로 이어진 선순환 구조 덕분이다. 김이현 기후솔루션 연구원은 “품질 기준이 불명확하면 안전성 우려로 시장 성장이 어렵다”며 미국의 표준화를 대표적 벤치마킹 모델로 꼽았다.
유럽 — 안전 규제가 오히려 시장을 열었다
유럽은 안전 요건을 규정한 ‘EN 378’을 기반으로 대체 냉매 시장을 키웠다. 규제가 오히려 안전성이 검증된 냉매의 진입을 촉진한 셈이다. 또한 2015년부터 HFC 쿼터제를 시행해 냉매 가격 폭등이라는 가격 신호를 보냈고, 이는 기업들의 친환경 전환을 가속화해 2024년 기준 식품 소매점의 약 30%가 초임계 이산화탄소(CO₂) 시스템을 도입하는 성과로 이어졌다. 유럽 역시 초기에는 규제가 앞섰지만, 금지 조치와 함께 단계별 전환 일정과 대체 기술 기준 등 명확한 시장 적응 로드맵을 동시에 제시했다는 점에서 한국과 차이를 보인다.
일본 — 회수·재생·파괴를 하나의 체계로 묶었다.
일본은 냉매 회수·재생·파괴 전 과정을 제도적으로 통합 관리하며 재생 냉매 시장을 키웠다. 회수된 냉매가 어떤 품질 수준으로 재생돼 어느 분야에 사용되는지 추적 가능한 관리체계를 먼저 구축한 뒤, 그 위에 의무화를 얹은 방식이었다. 김이현 연구원은 “한국 역시 현재 도입 단계인 냉매 전주기 관리 제도가 실효성을 가지려면 단순 회수 의무를 넘어 재생 냉매 품질 인증과 유통 체계가 함께 구축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 — 문제는 순서가 아니라 로드맵 부재
해외 선진국들은 도입 방식과 관계없이 시장 참여자가 준비할 수 있는 명확한 로드맵을 제공했다. 반면 한국은 의무화를 예고하고도 품질 기준 확정 시점, 검증 주체, 과도기 운영 방식 등 구체적인 로드맵이 없다. 기준이 없으면 생산업체와 사용자 모두 판단할 근거가 없고, 고가 설비 고장 시 책임 주체마저 불분명해 현장의 저항과 혼란이 불가피하다.
정부도 이를 의식해 이번 시범사업으로 국내 재생업체의 처리 역량과 품질 데이터부터 점검하겠다고 밝혔으나, 투명한 타임라인이 공유되지 않아 불안감을 해소하기엔 역부족이다. 이평우 한국 냉매 관리기술협회 부회장은 “국내 업체들의 실제 품질 검증이 선행되지 않은 상태”라며 “신규 기술 개발에 예산을 쓰기 전에 기존 재생업체들의 실제 처리 역량과 품질 수준부터 평가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지적했다.
로드맵이 먼저다.
이번 시범사업 기간은 2026년 4월부터 2027년 1월까지 약 9개월이다. 이 기간 내 재생 냉매 품질 기준 초안이 마련돼야 연내 추진 중인 냉매 관리법에 실효성 있는 조항을 담을 수 있다. 정부가 지금 당장 내놓아야 할 것은 의무화 선언이 아니라 품질 기준 확정 일정과 검증 주체, 과도기 운영 방안을 담은 구체적 로드맵이다.
정부가 이번 시범사업에서 확인해야 할 가장 중요한 지표는 회수 물량 자체가 아니다. 재생 냉매 품질 기준이 현장에서 실제 작동 가능한 수준으로 설계될 수 있는지, 그리고 그 일정이 시장에 명확히 제시될 수 있는지가 핵심이다. 그것이 마중물의 진짜 역할이다.
[용어 설명]
AHRI 700 : 미국냉동공조산업협회(AHRI)가 제정한 재생 냉매 품질 표준.
EN 378 : 유럽의 냉동·공조 설비 안전 기준.
AIM Act (미국 혁신 및 제조업법): 지구온난화를 유발하는 수소불화탄소(HFCs)의 생산과 수입을 15년에 걸쳐 단계적으로 85%까지 감축하는 미국의 핵심 법안
PFAS(과불화화합물) : 자연적으로 잘 분해되지 않는 불소계 화학물질.
출처 : 투데이에너지(https://www.todayenergy.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