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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이란 종전에도 호르무즈 리스크 여전…제조업 생산비 4.7%↑”

▲ 주요 에너지·산업 원자재 가격 추이
미국과 이란이 종전 양해각서(MOU)를 체결하며 군사적 긴장은 완화됐지만, 호르무즈 해협을 둘러싼 공급망 리스크와 비용 부담은 상당 기간 이어질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종전이 곧 전쟁 이전의 비용·물류 체계로의 복귀를 의미하지 않는 만큼, 에너지 가격 충격만으로도 국내 제조업 생산비는 약 4.7% 상승한 것으로 추정됐다. 산업별 회복 속도 역시 비용 전가 능력과 신규 수요 확보 여부에 따라 'K자형'으로 엇갈릴 것이라는 전망이다.
산업연구원(KIET)은 2일 발표한 '미국-이란 종전 이후 호르무즈 리스크와 한국 산업 영향 및 대응 방향: 비용·경로 재편과 산업별 회복 격차를 중심으로' 보고서를 통해 호르무즈 리스크가 새로운 비용 구조와 글로벌 공급망 재편을 촉발할 가능성이 높다고 진단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호르무즈 해협 봉쇄 기간 에너지 가격 상승만으로 국내 제조업 생산비는 약 4.7% 증가한 것으로 추산됐다. 전 산업은 3.7%, 서비스업은 1.3% 각각 상승했다. 이는 단순한 유가 급등이 아니라 에너지와 원자재, 물류가 동시에 흔들린 복합 공급망 충격의 결과라는 설명이다.
실제 이번 사태는 특정 산유국의 생산 차질이 중심이었던 과거 중동발 에너지 위기와는 양상이 달랐다. 단일 해협 봉쇄로 다수 산유국의 원유와 LNG 수출이 동시에 제한됐고, 나프타와 헬륨, 요소, 황산 등 주요 산업 원자재 공급에도 차질이 발생하며 제조업 전반으로 충격이 확산됐다. 호르무즈 해협 봉쇄로 하루 약 1,580만 배럴(b/d), 전 세계 석유 공급량의 약 15%가 시장 접근에 제약을 받은 것으로 분석됐다.

▲ 1973년 이후 주요 석유 공급 차질
보고서는 미·이란 MOU가 군사행동 중단과 호르무즈 해협 통항 재개를 위한 잠정 합의에 불과하다고 평가했다. 제재 종료 일정과 핵 프로그램 처리, 이행 검증 체계 등 핵심 쟁점이 후속 협상으로 넘어간 만큼 합의의 안정성은 아직 제한적이라는 것이다. 특히 핵 협상은 사찰과 검증까지 포함되는 고난도 과제인 데다 이스라엘이 합의 당사국이 아닌 만큼 중동 지역의 지정학적 불확실성도 당분간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통항이 재개되더라도 물류와 원가 구조가 곧바로 정상화되기는 어렵다는 전망이다. 기뢰 제거와 대기 선박 해소, 선복 재배치, 보험 인수 재개 등이 순차적으로 이뤄져야 하는 만큼 물류 회복에는 상당한 시차가 발생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국제유가 등 일부 가격은 종전 기대감으로 비교적 빠르게 조정될 수 있지만, 전쟁위험보험료와 운임, 통항비용은 하방 경직성이 커 새로운 비용 기준으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높다고 진단했다.
실제 호르무즈를 운항하는 선박의 전쟁위험보험료는 전쟁 이전 선박 가치의 약 0.2% 수준에서 2~3% 수준까지 상승한 것으로 추정된다. 선가 1억 달러 규모 선박의 보험료율이 0.4%포인트만 높아져도 항차당 약 40만 달러의 추가 비용이 발생한다. 1980년대 탱커전쟁 당시에도 통항과 보험 시장이 정상화되는 데 1년 이상, 보험료가 안정되는 데는 수년이 걸렸던 점을 감안하면 단기간 내 비용 부담이 해소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품목별 회복 속도 역시 차별화될 것으로 예상됐다. 국제유가는 연말까지 배럴당 70~80달러 수준에서 등락할 가능성이 높은 반면, LNG는 유가 연동 장기계약 구조의 영향으로 하반기 국내 도입단가가 후행적으로 상승할 것으로 전망됐다. 이는 전력요금 인상 압력으로 이어져 반도체와 철강, 디스플레이, 시멘트 등 전력 다소비 제조업의 원가 부담을 시차를 두고 확대시킬 가능성이 있다는 의미다. 요소 가격은 비교적 빠르게 안정될 것으로 예상되지만 황산은 여전히 높은 가격을 유지하는 등 산업 원자재별 정상화 속도도 엇갈릴 것으로 내다봤다.
보고서는 이번 종전이 산업 충격을 일괄 해소하는 계기가 아니라 산업 간 회복 격차를 확대하는 분기점이 될 것으로 진단했다. 에너지 의존도와 비용 전가 능력, 신규 수요 확보 여부에 따라 산업별 희비가 엇갈리면서 ‘K자형 회복’이 본격화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조선업은 LNG 공급선 다변화와 미국 LNG 프로젝트 확대에 힘입어 고부가 LNG 운반선 발주 증가가 기대된다. 중소형 유조선(Suezmax·Aframax)도 대체 항로 운항이 용이해 상대적으로 견조한 수요가 예상된다. 다만 VLCC는 중동 직항 의존도가 높아 통항 차질이 장기화될 경우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제기됐다.
반도체는 헬륨과 브롬 등 일부 특수가스의 중동 의존도가 변수지만 재고 확보와 장기계약, 공급선 다변화로 단기 충격은 상당 부분 흡수할 수 있을 것으로 평가됐다. 특히 사우디 HUMAIN과 UAE G42 등이 추진하는 AI 데이터센터 구축은 GPU와 HBM, 서버용 메모리 수요 확대를 이끌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꼽혔다.
건설업 역시 약 340억~580억 달러 규모의 전후 복구사업과 핵심 인프라 발주 확대에 따른 수혜가 기대된다. 다만 금융 조달 능력과 현지화 전략을 갖춘 기업 중심으로 수주가 이뤄질 가능성이 높아 선별적인 기회가 될 것으로 분석됐다. 방산은 걸프 국가들의 미사일·드론 방어체계 수요 확대와 조달선 다변화 움직임에 힘입어 국내 기업들의 수출 기회가 확대될 것으로 전망됐다.
반면 자동차와 석유화학은 회복세가 상대적으로 더딜 것으로 예상됐다. 자동차는 GCC 국가를 중심으로 중동 수요가 일부 회복될 가능성이 있지만 미국과 유럽 등 주요 시장의 고금리와 고유가, 관세 부담, 소비심리 위축 등이 겹치면서 수출 회복은 제한적일 것으로 전망됐다.
석유화학은 봉쇄 기간 가려졌던 글로벌 공급과잉 문제가 다시 부각될 것으로 예상됐다. 중국의 대규모 증설과 중동산 제품의 시장 복귀가 맞물리면서 국내 납사 기반 업체들의 수익성 회복이 지연되고 구조조정 압력도 더욱 커질 가능성이 제기됐다.
보고서는 이번 사태를 일시적인 지정학적 변수보다 글로벌 공급망과 산업 경쟁력의 구조를 재편하는 전환점으로 평가하며, 공급망 전략 역시 가격 중심에서 복원력 중심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통항·보험·운임·제재 리스크를 구조적인 경제안보 비용으로 인식하고 계약과 보험, 무역금융 등 기업의 리스크 관리 체계에 상시 반영하는 한편, 공급망 다변화 과정에서는 특정 국가 의존을 또 다른 의존으로 대체하는 '락인(Lock-in)'을 경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핵심 원자재별 최소 재고 기준 마련과 전략비축 확대, 장기계약 인센티브 등을 통해 공급망 복원력을 높이고, 피해 업종과 수혜 업종을 구분한 맞춤형 지원도 병행해야 한다고 제시했다. 아울러 직접 수입하지 않는 원자재라도 해외 생산공정의 핵심 투입재일 경우 국내 공급망으로 충격이 전이될 수 있는 만큼 해외 생산국의 핵심 투입재 의존도까지 포함하는 조기경보 체계 구축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방현지 산업연구원 전문연구원은 "이번 종전은 중동발 위기의 종료가 아니라 글로벌 공급망과 비용 구조가 새롭게 재편되는 출발점"이라며 "앞으로는 가격 경쟁력보다 공급망 복원력과 경제안보 대응 역량이 산업 경쟁력을 좌우하는 핵심 요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 호르무즈 사태 이후 주요 산업별 영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