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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트펌프, 이제는 '냉방'이 무기다
히트펌프, 이제는 "냉방"이 무기다 / AI 이미지
[투데이에너지 임자성 기자] 유럽 히트펌프협회(EHPA)가 2026년 7월 발표한 정책보고서 '히트펌프의 또 다른 얼굴: 냉방이 중요하다(The other side of heat pumps: cooling matters)'에서 냉방을 더 이상 '편의'가 아닌 '생존'의 문제로 규정하며, 히트펌프를 유럽 냉방 정책의 핵심 수단으로 삼아야 한다고 촉구했다.
폭염 사망 1만 명, 냉방은 이제 생존의 문제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6월 말 유럽을 강타한 폭염으로 인한 초과 사망자는 1만 명에 달했다. 유로뉴스가 지난 7월 13일 보도한 이 통계는 유럽 전역에서 폭염이 더 이상 일시적 현상이 아니라는 점을 보여준다. 여기에 유럽연합 집행위원회가 2025년 발표한 '여름철 에너지 빈곤' 보고서를 인용해, 유럽 건물의 75%가 에너지 비효율 상태로 방치돼 있어 실내 과열에 취약하다고 경고했다.
EHPA는 "냉방은 겨울철 적절한 난방과 마찬가지로 필수적인 건강 보호 조치"라며, 특히 단열이 부족한 주택에 거주하는 취약계층에게 냉방 접근성 확보가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보고서는 프랑스에서 냉방 설치를 둘러싸고 좌우 정치권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는 점도 소개했다. 좌파는 환경적 이유로 에어컨 확산에 반대하는 반면, 극우 세력은 오히려 "국가적 에어컨 보급 계획"을 주장하며 정치적 쟁점으로 부상했다고 전했다.
반면 벨기에 플란데런 지역은 지난 7월 3일 채택한 '히트펌프 실행계획(Actieplan Warmtepompen 2030)'을 통해 히트펌프의 냉방 기능을 정책적으로 명시했다. 스페인, 이탈리아, 그리스 등 남유럽 국가들에서는 이미 냉방이 필수재로 인식되며 보급률도 높은 상태다.
난방·냉방 동시 해결하는 '이중 기능' 기술
EHPA는 히트펌프가 난방뿐 아니라 냉방까지 동시에 해결하는 '이중 기능' 기술이라는 점을 부각했다. 특히 상업·산업용 건물에서는 냉방 시 제거되는 열을 온수 생산이나 인근 건물 난방, 산업공정에 재활용할 수 있어 폐열 회수의 가치가 크다고 설명했다. 지역 단위에서는 중앙집중형 히트펌프가 온수와 냉수를 동시에 생산해 배관망으로 공급하거나, 슈퍼마켓 냉동시설·데이터센터·지하철역 등에서 나오는 열까지 하나의 열 네트워크로 순환시키는 '앰비언트 온도 네트워크' 방식도 소개됐다.
판매량 730만 대…냉방이 시장 성장 견인
시장 데이터도 이러한 흐름을 뒷받침한다. EHPA의 2026년 유럽 히트펌프 시장 보고서에 따르면, 2025년 21개 유럽 국가에서 판매된 히트펌프는 730만 대로 집계됐으며, 이 중 79%가 공기-공기(에어투에어) 방식이었다. 이는 난방 전용으로만 집계했던 기존 270만 대 통계를 냉방용 판매까지 포함해 재산정한 수치로, 냉방 수요가 시장 성장의 새로운 동력으로 떠올랐음을 보여준다.
EU 정책, 여전히 "난방 중심"의 한계
그러나 EHPA는 EU의 에너지효율지침(EED), 건물에너지성능지침(EPBD), 재생에너지지침(RED) 등이 여전히 난방 중심으로 설계돼 있어 냉방을 위한 폐열 회수나 재생냉방 인정 체계가 미흡하다고 지적했다. 특히 재생에너지지침상 폐열 인정 범위가 산업·서비스 부문에 한정돼 있어 주거용 냉방에서 발생하는 폐열은 제도적으로 배제되고 있다는 점을 문제로 제기했다.
이에 EHPA는 △난방·냉방 겸용 히트펌프를 표준 설비로 채택 △보조금·건물성능평가에서 냉방 기능 차별 금지 △취약계층 대상 히트펌프 소셜 리싱 도입 △스마트 제어와 시간대별 요금제를 통한 재생에너지 연계 냉방 확대 △소비자·설치기사 인식 개선 △주거용 냉방 폐열 회수 인정 확대 등을 정책 과제로 제시했다.
EHPA는 유럽 집행위원회의 '냉난방 행동계획(Cooling and Heating Action Plan)'과 '유럽 기후 복원력 및 위험관리 통합 프레임워크'가 이러한 정책 전환의 기회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국내 업계 시사점
한편, 이번 보고서는 국내 냉난방 업계에도 시사점을 던진다. 국내에서는 히트펌프가 여전히 '친환경 난방기기'로만 인식되는 경향이 강하지만, 최근 정부가 공동주택을 중심으로 냉난방 일체형 히트펌프 보급을 추진하는 상황에서, 유럽처럼 냉방 기능을 성장 동력으로 삼는 흐름이 국내에도 시사점을 줄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특히 보조금 의존 없이도 시장이 자생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려면, 겨울 난방뿐 아니라 여름 냉방까지 활용해 투자비 회수기간을 앞당기는 '사계절 가동' 전략이 국내 업계에서도 주목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