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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히트펌프 압축기, 90%가 중국산

투데이에너지
2026-08-07
 히트펌프 압축기, 90%가 중국산

히트펌프 압축기, 90%가 중국산 / AI 이미지

[투데이에너지 임자성 기자] 탄소중립을 위한 핵심 기술로 꼽히는 히트펌프. 유럽은 가스보일러를 이 기기로 대체해 러시아산 가스 의존에서 벗어나겠다고 선언했고, 미국에서는 이미 신규 난방기기 시장에서 기존 가스 화로(furnace) 판매량을 앞질렀다. 하지만 정작 이 기술의 심장인 압축기를 누가 만드는지를 들여다보면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국제에너지기구(IEA)가 최근 발표한 「히트펌프 모니터 2026」에 따르면, 전 세계 로터리 압축기 생산능력의 약 90%가 중국에 집중돼 있다.

겉보기엔 분산, 속을 보면 집중

히트펌프 공급망은 언뜻 보면 꽤 다변화된 것처럼 보인다. 중국, 미국, 유럽, 일본 등 주요 시장에서 판매되는 히트펌프의 70% 이상이 자국에서 조립·생산된다. IEA는 2024년 기준 전 세계 히트펌프 제조능력을 연간 145GW 규모로 추산하는데, 이 가운데 중국이 35%, 미국이 25%, EU가 20%를 차지해 겉으로는 어느 한 국가가 압도적으로 지배하는 구조는 아니다.

문제는 '조립' 단계가 아니라 그 안을 구성하는 핵심 부품이다. 히트펌프와 부품을 공유하는 소형 에어컨 제조능력은 이미 중국이 82%를 차지하고 있으며, 냉매를 순환시키는 로터리 압축기 역시 생산능력의 90%가 중국에 집중돼 있다. 반면 스크롤 압축기나 냉매 원료인 형석(fluorspar)은 상대적으로 여러 나라에 분산돼 있다. 즉 완제품은 자국에서 조립하더라도, 핵심 부품은 이미 중국 공급망에 크게 의존하고 있는 셈이다.

왜 하필 중국인가

이런 구조가 형성된 데에는 뚜렷한 산업적 배경이 있다. 히트펌프, 특히 에어컨과 기술을 공유하는 공기-공기(air-to-air) 방식은 중국의 거대한 에어컨 제조 기반을 그대로 활용할 수 있다. IEA는 중국에서 생산되는 공기-공기 히트펌프가 일본산보다 약 40% 저렴하다고 분석했다. 온수와 난방에 주로 사용되는 공기-물(air-to-water) 방식도 유럽에서 생산할 경우 중국보다 약 60% 높은 비용이 든다.

이 같은 가격 격차는 규모의 경제와 수직계열화, 여기에 상대적으로 낮은 인건비가 결합된 결과다. 부품과 소재가 전체 생산비의 60~85%를 차지하는 만큼, 부품 공급망을 선점한 기업과 국가가 절대적으로 유리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중국은 여기에 강력한 정부 지원까지 더하며 거의 모든 제품군에서 가장 경쟁력 있는 가격을 제공하는 생산 거점으로 자리 잡았다.

특허 지도에서도 드러나는 흐름

이 같은 구도는 특허 데이터에서도 확인된다. 2000년대 이후 전 세계 히트펌프 특허 출원은 다섯 배 가까이 늘었는데, 이는 다른 기술 분야 평균 증가율의 약 두 배에 해당한다. 이러한 성장을 이끈 것은 중국이다. 2022년 기준 전 세계 히트펌프 특허의 약 3분의 1이 중국에서 출원됐으며, IEA는 이 같은 추세가 앞으로도 이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일본과 한국은 압축기와 시스템 통합 기술에서 여전히 강점을 갖고 있지만, 특허 출원 증가 속도만 놓고 보면 중국이 압도적인 우위를 보이고 있다.

수요가 폭증할수록 커지는 위험

문제는 앞으로 히트펌프 수요가 급증한다는 점이다. IEA 시나리오에 따르면 전 세계 히트펌프 판매량은 현재 정책만 유지돼도 2035년까지 80% 이상 증가하며, 각국의 확정 정책이 반영되면 두 배 이상 확대된다. 탄소중립 시나리오에서는 최근 10년보다 두 배 빠른 성장 속도가 예상된다.

이 수요를 감당하려면 결국 압축기 생산도 함께 늘어나야 하는데, 바로 이 지점에서 공급 병목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 신규 공장 건설에는 통상 1~3년이 걸리는데, 단기적인 정책 변화나 숙련 인력 부족이 겹치면 자국 생산능력이 수요 증가 속도를 따라가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이 경우 각국은 결국 수입, 특히 중국산 부품에 더 의존하게 된다.

IEA는 중국이 기존 에어컨 생산라인을 히트펌프용으로 빠르게 전환할 수 있어, 다른 국가들이 수요를 감당하지 못하는 공백을 신속하게 메울 준비가 돼 있다고 평가했다. 이는 반도체나 배터리 산업에서 이미 경험한 것처럼, 특정 핵심 부품에 대한 과도한 의존이 새로운 공급망 리스크로 이어질 수 있음을 시사한다.

각국의 대응, 그러나 관건은 '안정적 수요'

유럽연합은 히트펌프를 전략적 넷제로 기술로 지정한 '넷제로산업법(Net-Zero Industry Act)'을 통해 제조업과 공급망 강화를 추진하고 있다. 미국 역시 연방 및 주정부 차원의 제조 인센티브를 확대하고 있으며, 캐나다는 숙련인력 양성 프로그램을 별도로 운영해 설치 인력 부족 문제에도 대응하고 있다.

하지만 IEA가 지적하는 근본적인 한계는 분명하다. 로터리 압축기와 소형 에어컨의 공급망 다변화는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되며, 자국 생산을 확대하더라도 안정적이고 예측 가능한 수요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규모의 경제를 확보하기 어렵다고 분석했다. 정책이 일관성을 잃으면 기업은 투자를 미루게 되고, 그 빈자리를 이미 준비된 중국의 생산능력이 메우는 구조가 반복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탄소중립 기술이 낳은 또 다른 의존

결국 히트펌프를 둘러싼 이야기는 단순히 '친환경 기기를 얼마나 빨리 보급할 것인가'의 문제가 아니다. 그 기기의 핵심 부품을 어디서, 누구의 공급망을 통해 조달하느냐는 또 다른 과제가 함께 따라온다. 가스 의존을 줄이기 위해 선택한 기술이 다른 형태의 공급망 의존을 만들어내고 있는 셈이다. 한국의 공조기업들 역시 이 흐름에서 예외가 아니라는 점에서, 앞으로 압축기와 핵심 부품의 공급망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지는 조용하지만 중요한 산업적 과제로 남아 있다.

[용어설명]

로터리 압축기 (rotary compressor) : 회전 방식으로 냉매를 압축하는 압축기 유형.

스크롤 압축기 (scroll compressor) : 나선형 부품이 맞물려 냉매를 압축하는 방식.

형석 (fluorspar) : 불소 화합물의 원료가 되는 광물로, 냉매를 제조하는 데 필요한 핵심 소재.

넷제로산업법 (Net-Zero Industry Act, NZIA) : 유럽연합이 탄소중립 관련 핵심 기술의 역내 제조 역량과 공급망을 강화하기 위해 제정한 법률.

출처 : 투데이에너지(https://www.todayenergy.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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