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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평] 백색의 지혜에서 기후에너지시스템까지
김성헌 교수
[투데이에너지] 우리 민족을 백의민족이라고 일컫는다. 이미 삼국시대 이전부터 흰옷을 즐겨 입었다는 기록이 삼국지 동이전과 후한서에 등장했고, 19세기 조선을 방문한 서양인들이 “거리 전체가 하얗다”라고 말할 정도였다.
유독 흰옷을 적극적으로 선호한 의복 문화는 삶고, 햇볕에 말리고, 잿물로 탈색시키는 과정을 통해 염색 비용을 줄일 수 있다는 경제성과 세탁 관리의 편의성 등 여러 요인에서 비롯되었다. 모시옷은 시원스러운 흰색과 통기성을 모두 갖춘 더운 여름철 최고의 복장이었다. 겨울철에는 솜을 누비거나 여러 겹을 껴입는 방법 으로 추위를 이겨냈다. 냉방이 거의 불가능하고 난방 시설이 미흡했던 과거의 이야기다.
기후변화에 따라 연평균 기온이 지속 상승한 우리나라는 올해도 평년보다 높은 기온과 장기 간의 폭염이 이어지고 있다. 기후에 적합한 농작물 선택과 생태계 복원, 냉방 수요 증가에 따른 전력 공급과 도시 설계 분야가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별도 효율 개선 조치가 취해지지 않으면 전 세계 건물의 공간 냉방 에너지 소비가 2050년까지 두 배 이상 증가할 것으로 전망한다.
에너지경제연구원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여름철 주택용 전력에서 냉방 부하가 차지하는 비중은 과거 9% 미만이었으나, 최근 약 22%까지 높아진 것으로 추정된다.
기후변화로 폭염의 강도와 지속 기간이 늘어 나면 냉방 수요는 더욱 증가할 수 밖에 없다. 건물 자체가 열을 덜 흡수하도록 설계하는 적응형 냉각 기술 또한 적극적으로 도입이 필요한 시점이다.
백색 지붕(Cool roof)으로 태양 복사열을 반사하려는 과학 연구는 이스라엘 건축기후학자인 Baruch Givoni와 Michael Hoffman에 의해서 일찍이 1960년대에 시도되었다. 실험 결과에 의하면 흰색 외벽은 회색 외벽에 비해 여름철 실내 온도를 유의미하게 낮출 수 있었고, 이는 ‘적도를 흰띠로 칠한다’는 우스갯소리와 함께 기후변화의 시대인 21세기에는 실용화 단계로 이어져 왔다.
최근의 연구는 더욱 발전하여 2014년에 적외선 복사냉각으로 우주로 열을 방출하여 주간 시간대 외기보다 온도가 더 낮아 지는 기술이 실증되었다. 퍼듀대학교가 2021년에 발표한 황산바륨(BaSO4) 초백색 복사냉각 페인트는 안료의 입자 크기를 조절하여 태양광 반사율 98.1%, 적외선 방사율 0.95를 달성하여 야외 실험에서 외기보다 4.5도 이상 낮은 건물 표면온도를 얻었다.
백색이든 초백색이든 태양광 에너지를 외부로 반사, 방출하는 기술은 특정 계절이나 특정 기후에만 유리하다는 단점이 존재한다. 연중 냉방 수요가 우세한 저위도 지역과 달리 한국은 여름철 냉방과 겨울철 난방을 모두 고려해야 한다. 따라서 사계절 내내 태양광을 반사하는 초백색 도료가 반드시 최선은 아니다. 2021년 Science지에 발표된 온도 적응형 복사 코팅, TARC(Temperature-Adaptive Radiative Coating) 기술은 이산화바나듐(VO2)이 온도에 따라 절연체와 금속으로 상전이되는 현상을 이용한다. 즉 15도 이하에서는 적외선 방사율이 약 20%로 난방에 유리하고, 30도 이상에서는 방사율 약 90%로서 냉방에 유리하다는 결과를 내놓았다.
후속 연구에서는 조성, 도핑, 나노구조 설계를 통해 상전이 온도와 광학 특성을 실제 건물 환경에 맞추려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상용화에 이르기까지 가격, 수명, 대면적 균일 도포와 같은 해결해야 할 문제점이 아직 많이 남아 있기는 하다. 앞으로 AI를 활용해 재료 조성, 입자 크기, 전환온도와 지역별 에너지 절감 효과를 최적화하는 연구도 가능하리라 기대된다.
과학기술은 외벽 페인트 하나에도 재료공학, 광학, 열역학, 그리고 인공지능이 결합한 다학제 융합 체계로 성과를 만들어 내고 있다.
흰옷으로 여름을 견뎠던 선조의 지혜가 오늘날 첨단 복사냉각 기술로 진화했듯이 기후 위기와 에너지 문제가 통합적으로 해결되길 기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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