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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료 10% 낮추면 기업 움직일까...메가프로젝트 ‘입지 방정식’
[에너지신문] 전력과 재생에너지가 풍부한 비수도권에 반도체·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를 유치하겠다는 정부의 ‘3대 메가프로젝트’가 구체화되고 있다. 수도권에 집중된 전력수요를 분산하면서 지역에 새로운 산업 기반을 조성하겠다는 구상이다.
한전이 지난 26일 공개한 산업용 지역별 전기요금제 설계안도 이 구상을 뒷받침하는 핵심 수단이다. 남부권 산업용 전기요금을 수도권보다 kWh당 약 13~18원 낮춰 최대 10%가량의 가격 차이를 두는 방안이다.
정책 방향은 분명하다. 발전소와 재생에너지 설비가 밀집한 지역에서 전력을 사용하면 수도권까지 전기를 보내기 위한 송전망 부담을 줄일 수 있다. 지역에는 전력 다소비 산업을 유치할 수 있는 가격 경쟁력이 생긴다.

문제는 최대 10%의 전기요금 차이가 기업의 입지를 실제로 바꿀 만큼 강한 신호인지다. 기업이 공장이나 데이터센터 위치를 결정할 때는 전기료뿐 아니라 인력과 공급망, 고객 접근성, 정주여건, 교통, 용수, 인허가 등을 함께 따진다. 전력 가격만 낮춘다고 수도권 산업집적의 이점까지 단숨에 상쇄하기는 어렵다는 얘기다.
녹색에너지전략연구소가 최근 반도체·데이터센터 재직자 8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탐색적 설문은 이러한 정책과 기업 판단 사이의 간극을 보여준다.
▶최대 10% 요금 차이...기업 기대수준과 거리
설문에서는 비수도권 전기요금이 수도권보다 어느 정도 낮아져야 신규 입지나 증설 검토에 의미 있는 영향을 미치는지 물었다. ‘10% 미만이면 충분하다’는 응답은 8.8%에 그쳤다.
반면 30~50%의 요금 격차가 필요하다는 응답과 50% 이상이 필요하다는 응답은 각각 25.0%였다. 전체 응답자의 절반이 최소 30% 이상의 차이를 요구한 셈이다. 요금만으로 입지를 판단하기 어렵다는 응답도 12.5%였다.
30% 이상의 격차를 요구하거나 요금만으로 판단하기 어렵다고 답한 비율을 합하면 62.5%다. 한전이 검토하는 최대 10% 안팎의 차등요금만으로는 기업의 입지 결정을 바꾸기 어렵다는 인식이 우세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다만 이 결과를 ‘적정 할인율은 30%’라고 해석하는 것은 무리다. 응답자 80명을 대상으로 한 탐색적 조사인 데다 실제 기업의 투자 의사결정권자를 대상으로 할인율을 산정한 연구도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설문이 보여주는 핵심은 기업이 전기요금 차이를 단순한 연간 전력비 절감액으로만 계산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기존 사업장이 확보한 인력과 공급망, 협력업체, 인허가, 교통망을 포기하고 다른 지역에 신규 시설을 조성하려면 상당한 이전비용과 불확실성을 감수해야 한다.
특히 반도체와 데이터센터는 대규모 선행투자가 필요한 산업이다. 부지와 전력·용수를 제때 확보하지 못하면 전체 사업 일정이 지연될 수 있다. 기업 입장에서는 10%의 전기료 절감 가능성보다 필요한 전력을 계획된 가동 시점에 공급받을 수 있는지가 더 중요한 문제가 될 수 있다.

▶전력, 1순위 중요 요소지만 수도권 선택 이유는 아냐
입지 결정 요소의 중요도를 5점 척도로 평가한 결과에서는 전력 공급 안정성이 4.15점으로 가장 높았다. 전기요금도 4.04점으로 뒤를 이었다. 전력의 가격과 안정성이 반도체·데이터센터 입지에서 핵심 조건이라는 사실은 분명했다.
그러나 현재 수도권에 자리 잡은 가장 결정적인 이유를 묻자 결과가 달라졌다. 전력 공급 안정성을 선택한 응답자는 3.8%에 불과했다. 전문인력 확보가 30.0%로 가장 많았고 고객·수요처 접근성이 23.8%로 뒤를 이었다.
전력은 후보지가 투자 검토 대상에 들어가기 위해 반드시 충족해야 하는 ‘진입조건’이지만, 최종 입지를 결정하는 차별화 요소는 아니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어느 지역이든 안정적인 전력 공급은 기본적으로 보장돼야 하고, 이 조건을 충족한 후보지 가운데 인력과 시장 접근성 등이 우수한 지역이 선택된다는 것이다.
지방에 신규 입지나 증설을 추진할 때 필요한 지원책을 1·2순위로 고르게 한 결과도 이를 뒷받침한다. 1순위에 2점, 2순위에 1점을 부여한 가중점수에서 임직원 주거·교육·의료 등 정주 인프라 확충이 67점으로 가장 높았다.
인허가 패스트트랙과 일괄 처리가 51점, 광역 교통·통근 인프라 개선이 37점으로 뒤를 이었다. 계통 접속비용과 접속용량에 대한 정부·한전 지원은 34점, 지역 재생전력을 활용하는 지산지소 전용요금제는 23점이었다. 공업용수 공급 보장과 전용 관로 구축은 17점, 앵커기업 이전에 따른 산업생태계 조성은 10점으로 집계됐다.
정주·인허가·교통 관련 지원의 가중점수는 총 155점으로 전력·계통·용수 분야의 74점을 두 배 이상 웃돌았다. 전력 인프라를 갖추는 것만으로 기업을 유치할 수 있다는 정책 논리에 경고음을 보내는 결과다.
▶RE100 수요가 지역 이전으로 연결되지 않는 이유
재생에너지에서도 기업의 조달 수요와 입지 선택 사이에 뚜렷한 단절이 나타났다.
응답자의 50.0%는 RE100이나 고객사·공급망 요구 등에 따라 강한 재생에너지 조달 압력을 받고 있다고 답했다. RE100이 입지 결정에 영향을 준다는 응답도 42.5%에 달했다.
하지만 재생에너지가 풍부한 지역을 선호 입지로 선택한 응답자는 10.0%에 그쳤다. 재생에너지 조달 압력과 실제 생산지역 선호 사이에 32.5%포인트의 격차가 발생한 것이다. 호남권을 현실적인 후보 권역으로 선택한 응답도 10.0%였다.

기업이 재생에너지를 필요로 한다고 해서 발전설비가 밀집한 지역으로 공장이나 데이터센터를 옮기는 것은 아니라는 의미다. 현행 제도에서는 사업장을 이전하지 않아도 재생에너지공급인증서(REC)를 구매하거나 녹색프리미엄, 직접·제3자 PPA 등을 이용해 재생에너지 사용 실적을 확보할 수 있다.
실제로 응답자의 62.5%는 사업장을 옮기지 않고도 REC나 PPA 등을 통해 재생에너지 사용 요구에 대응할 수 있어 생산지역으로의 이전 유인이 약해질 수 있다는 진단에 동의했다.
재생에너지를 사용할 수 있다는 것과 재생에너지 생산지역에 입지해야 더 유리하다는 것은 다른 문제다. 지역과 무관하게 유사한 조달수단을 이용할 수 있다면 기업이 인력과 고객, 산업생태계가 집중된 수도권을 떠날 이유는 줄어든다.
▶‘모든 기업 지원’보다 움직일 수요 골라야
그렇다고 재생에너지가 기업 유치 수단으로 의미가 없다는 뜻은 아니다. 설문에서는 재생에너지 조달 압력이 높은 집단이 낮은 집단보다 지방 입지를 검토할 의향과 지원조건을 확인한 뒤 이전을 검토할 의향, 메가프로젝트 지원책에 대한 반응이 모두 높게 나타났다.
정책 대상을 반도체·데이터센터 업종 전체로 넓게 설정하기보다 실제 신규 투자나 증설을 계획하면서 RE100 이행 부담이 큰 기업을 선별해야 한다는 시사점이다.
지역별 전기요금제 역시 기존 비수도권 사업장 전체에 할인 혜택을 분산하는 방식으로 설계하면 기업 유치 효과가 희석될 수 있다. 기존 사업장의 전력비 부담을 완화하는 것과 신규 투자를 비수도권으로 유도하는 것은 서로 다른 정책 목표다.
기업 입지 분산이 목적이라면 신규·증설 프로젝트를 중심으로 장기간 예측할 수 있는 요금 우위를 제공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할인율뿐 아니라 적용 기간과 대상, 물량, 계약 조건이 사전에 확정돼야 기업이 이를 투자안에 반영할 수 있다.
▶전력량보다 중요한 것은 ‘언제 쓸 수 있느냐’
메가프로젝트가 실제 투자로 이어지려면 ‘지역에 전력과 재생에너지가 많다’는 선언을 넘어 기업이 비교할 수 있는 구체적인 조건을 제시해야 한다.
특정 부지에서 사용할 수 있는 전력 규모와 공급 개시 시점, 계통 접속비용, 단계별 증설 가능 용량을 사전에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 공업용수 공급량과 관로 구축 일정도 기업의 착공·가동 계획에 맞춰 제시돼야 한다.
재생에너지 생산지역에는 다른 권역에서 얻기 어려운 편익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장기간 유지되는 가격 우위와 안정적인 재생에너지 조달물량, 명확한 PPA 계약조건, 우선적인 계통 접속 등을 묶어야 지역 입지가 하나의 선택지로 부상할 수 있다.

여기에 주거·교육·의료, 광역교통, 통근 지원, 인허가 일괄 처리까지 결합해야 한다. 전력정책과 지역 산업정책, 도시·교통정책을 각각 추진해서는 기업이 체감할 수 있는 입지 경쟁력을 만들기 어렵다.
이효은 녹색에너지전략연구소 부연구위원은 “전력은 후보지의 진입조건이지만 실제 선택은 인력·수요처·정주·인허가·계통 등 여러 조건에서 갈린다”며 “정책 대상을 실제로 움직일 가능성이 있는 신규·증설 프로젝트로 좁히고, 재생에너지 생산지역에 입지할 때만 얻을 수 있는 장기 가격·조달·접속상의 우위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번 설문은 표본 규모와 조사 대상의 한계 때문에 전체 반도체·데이터센터 기업의 투자 판단으로 일반화하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정부가 공급자 관점에서 제시한 전력·재생에너지 확대책과 기업이 입지를 결정하는 기준 사이에 간극이 있다는 점은 분명히 드러낸다.
메가프로젝트의 성패는 전력이 얼마나 많이 생산되는지가 아니라 그 전력을 기업이 필요한 시점에 안정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지, 그리고 그 조건이 수도권의 산업집적 효과를 넘어설 만큼 분명한 편익으로 작동하는지에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