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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국정감사] 한전, 복합적 위기 상황과 책임공방
국회의원 질의를 받는 김동철 한전 사장 / 국회방송
[투데이에너지 박명종 기자] 2025년 국회 기후에너지환경노동위원회의 한국전력공사 국정감사는 한국 전력산업이 직면한 복합적 위기 상황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206조 원에 달하는 천문학적 부채와 28조 원 규모의 누적 적자, 그리고 이를 둘러싼 정치권과 공기업의 책임 공방은 한국 에너지 정책의 구조적 모순을 여실히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김동철 한전 사장을 비롯한 에너지 공기업 관계자들이 참석한 이번 국감에서는 전기요금 정상화, 송전망 확충, 전력직접구매제도(PPA) 개편, 조직 효율화, 안전관리 강화 등 다층적 과제들이 집중 논의됐다. 특히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은 재생에너지 확대를 중심으로 한 이재명 정부의 에너지 전환 정책을 두고 첨예한 공방을 벌였다.
부채 위기의 구조적 원인
한전의 부채 위기는 크게 세 가지 요인에서 비롯됐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첫째,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국제 액화천연가스(LNG) 등 에너지 연료 가격이 폭등하면서 발전용 연료 수입 비용이 천문학적으로 증가했다. 둘째, 비싸게 수입한 에너지로 전기를 생산했음에도 국민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 전기요금을 제때 인상하지 못하거나 원가 상승분을 반영하지 못해 팔면 팔수록 손해가 나는 구조가 고착화됐다. 셋째, 이러한 구조적 적자 상황에서도 억대 연봉자 급증과 과도한 복리후생 지출이라는 방만 경영 논란이 제기됐다.
강득구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024년 한전 직원 중 억대 연봉자는 22.1%로, 2020년 12.7% 대비 74% 늘었다"며 "직원 수는 2만3396명에서 2만2561명으로 감소했고 신규 채용도 1550명에서 601명으로 줄었다"고 지적했다. 재무위기 속 고액 연봉 구조와 신입 채용 축소가 조직 활력 저하로 이어진다는 비판이다.
박해철 의원은 안전관리 문제도 제기했다. "최근 3년간 에너지 공기업 산재 다발 상위 5곳에서 370명의 재해자가 발생했다"며 "한전MCS 127명, 한전KPS 55명을 비롯해 기본적인 안전점검만 이행돼도 막을 수 있는 사고들이 대부분"이라고 비판했다. 산재 다발 기관에 대한 기관장 책임제와 특별감독의 필요성이 강조됐다.
전기요금 정상화 논쟁
이번 국감의 핵심 쟁점은 단연 전기요금 정상화였다. 현재의 전기요금 체계로는 전력 판매 원가를 반영하지 못하므로, 요금을 현실화하여 미래 에너지 전환과 송전망 건설에 필요한 재원을 확보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김동철 사장은 지속적인 적자 상황을 인정하며 전기요금 정상화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강득구 의원은 "한전 누적적자 206조 원을 해소하는데 5~6년 걸려 전기요금 정상화가 필요한데 당장 어렵다"며 "독립기구를 고려해 원가를 고려한 전기요금을 결정하도록 하는 것이 어떠냐"고 제안했다.
이원주 기후에너지환경부 에너지정책실장은 "전기요금 결정 시 원가주의를 확립하고 거버넌스 개편이 필요하다"며 강 의원의 의견에 공감을 표했다. 정부가 전기요금 인상에 대해 정치적 부담 때문에 제대로 된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박해철 의원은 "2021년 에너지가격이 급등했을 때 한전이 완충역할을 수행하다 생긴 206조 부채는 착한 부채"라면서도 "정산조정계수 때문에 발전 5사들은 열심히 일해도 의미가 없는 상황"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한전이 적자인 상황에서 정산조정계수로 인해 발전 5사들은 1조6000억 원의 영업이익을 내는데 그쳤지만 대기업 발전사들은 영업이익이 폭증했다"며 공공 발전사와 민간 발전사 간의 불균형을 지적했다.
전력직접구매제도(PPA) 논란
이번 국감의 최대 이슈 중 하나는 대기업이 직접 전력을 구매하는 전력직접구매제도(PPA)였다. 정혜경 진보당 의원은 "전력직구제도로 한전과 국민 부담이 커질 수 있다"며 "이용 기업에 전력망 이용료를 현실화해야 한다"고 질의했다.
김동철 사장은 "국제 연료가격이 급등했던 2021~2023년에는 한전이 손실을 감내하며 기업 부담을 덜었지만, 지금은 연료비 안정기에 기업들이 직구제도를 활용해 시장이익만 취하고 있다"며 "이는 제도의 근본 취지를 왜곡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국제 연료가격이 전기요금에 즉시 반영되는 시장 논리가 작동하지 않는다면 제도를 폐지하는 것이 옳다"고 단언했다.
정혜경 의원은 "현재 실제 이용 중인 곳은 0.2GW 규모 한 곳뿐이지만, LG화학·한화솔루션·삼성·한국철도공사·SK어드밴스드 등 20곳이 약 2.4GW 규모로 신청했다"며 "대기업 쏠림으로 공정한 시장질서가 흔들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원주 실장도 "직접PPA 제도 설계 취지와 다른 상황"이라며 "망요금을 현실화하는 등 대책을 강구해 시장왜곡을 방지하겠다"고 답했다. 산업용 전기요금이 오르자 종전 값싼 전기요금을 향유하던 대기업들이 고통분담할 생각은 하지 않고 직접PPA로 회피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한전의 자구 대책과 기술 자립
한전은 부채 해결을 위한 '특단의 자구 대책'을 발표했다. 향후 5년간 총 14조 6500억 원 규모의 자구 노력을 추진할 계획인데, 여기에는 지출 재구조화(1조 7천억 원), 경영 효율화(3조 2천억 원), 자산 매각(7689억 원), 수익 확대(1조 9천억 원) 등이 포함된다.
인재개발원 부지 등 핵심 자산 매각과 함께, 본사 조직 20% 축소, 연말까지 초과 정원 488명 조기 해소, 디지털 서비스 및 설비 관리 자동화를 통한 2026년까지 운영인력 700명 감축 등 대대적인 조직 개편과 인력 효율화 방안이 제시됐다.
기술 자립 측면에서도 주목할 만한 논의가 있었다. 윤상현 국민의힘 의원은 "HVDC 변환·변압기 국산화 예산이 60억 원에 불과한데 이 속도로 가능하겠느냐"고 질의했다. 김동철 사장은 "200메가와트급 장비는 이미 국산화에 성공했고, 2기가와트급 대용량 장비도 정부 국책과제로 민간기업과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며 "국내 기술력에 충분히 자신이 있다"고 밝혔다.
HVDC(초고압직류송전)는 해상풍력 등 대규모 재생에너지 전송의 핵심 기술로, 향후 국가 전력망의 효율성과 자립도를 결정할 전략 분야다. 김 사장은 "국산화가 완성되지 못했을 경우를 대비한 보완책도 병행 중"이라며 "국산 HVDC 기술이 안정화되면 송전설비 구축 기간 단축과 설비 신뢰도 제고에 크게 기여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송전망 확충과 재생에너지 전환
김동철 사장은 "국가 경쟁력과 직결된 국가기간 전력망을 적기에 건설해 첨단산업의 안정적 전력공급을 보장하고, 세계 최고 수준의 전기품질을 확보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재생에너지의 원활한 계통 접속을 지원하고, 해상풍력 등 재생에너지 직접 보급에도 한전이 선도적으로 나서겠다"며 공급 안정과 전환 속도를 동시에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이는 수도권·산단 중심의 전력수요 집중과 송전선로 지연이라는 이중 난제를 정면 돌파하겠다는 신호다. 김 사장은 전력망특별법 통과 이후 "주민과의 전례 없는 소통"을 강조하며 "해남 변환소 부지를 확정했고, 전북 지역 345kV 송전선로 공사 기간도 크게 단축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지산지소 개념으로 산업단지와 데이터센터를 전력수요지 인근에 유치하는 방식이 주민 수용성 확보의 현실적 해법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부채 문제가 심각하더라도 에너지 전환이라는 국가적 목표 달성을 위해서는 안정적인 송전망 건설 투자가 지속되어야 한다는 점이 강조됐다.
공기업 거버넌스와 윤리 문제
박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한전의 이중잣대 문제를 지적했다. 한전은 사업자등록, REC 발급, 발전사업 허가 등 태양광 관련 등록행위를 자동 탐지·차단하고, 이를 비위행위로 규정해 '원스트라이크 아웃'이라는 무관용 원칙을 적용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 7년간 한전 퇴직 임직원 약 120명이 자회사·출자회사에 재취업했다. 한전이 직접 출자한 신재생에너지 계열사다. 박 의원은 "공기업의 윤리규율이 하위직에게만 적용되는 이중잣대"라며 "한전의 도덕성과 계통중립성이 훼손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에너지저장장치(ESS) 문제도 제기됐다. 전국 공공기관들이 ESS 설치를 의무적으로 추진하고 있지만 전기안전관리 주무기관인 한국전기안전공사조차 설치한 ESS를 가동하지 않는 것으로 드러났다. ESS 안전관리의 총괄기관이자 검사·기준제정 권한을 가진 기관이 스스로 ESS 운영을 꺼리는 모순된 상황이다. 한국전력공사, 전력거래소, 한국동서발전 등 주요 에너지 공공기관들 역시 설치한 ESS를 장기간 미가동 상태로 두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박 의원은 "안전관리기관조차 ESS를 켜지 못하는 현실에서 재생에너지 확대는 요원하다"며 "공공부문이 선도적으로 ESS 확산을 이끌어야 한다"고 촉구했다.
정치권의 시각차
여야는 재생에너지를 확대하는 이재명 정부의 에너지 전환 정책을 두고 공방을 벌였다. 국민의힘은 정부의 재생에너지 확대는 사실상 '탈원전'으로, 기업 경쟁력을 약화하고 전기요금 인상을 초래할 것이라고 비판한 반면 더불어민주당은 재생에너지 확대에 동조하며 에너지 정책 거버넌스를 재설계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국민의힘 간사 김형동 의원은 "에너지 정책의 제일 핵심은 돈이고 주민의 수용성이다. 또 과학에 근거해야 한다"며 "지금 나아가는 방향이 정말 친환경인지 고민이 된다"고 말했다.
강득구 의원은 "한전 부채 절감을 한전에만 맡겨선 안 된다"며 "전력산업기금을 적극 활용하든지 정부가 나서야 한다"고 주문했다. 아울러 "한전KDN은 한전 전력그룹 공동 인프라 기업이고 수익이 알짜"라며 "이재명 정부에선 전력인프라를 공공재로 보기 때문에 전임 정부와 달리 한전KDN 매각을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후 과제와 전망
이번 2025년 국정감사는 한전이 직면한 복합적인 위기 상황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국회에서는 한전의 부채 문제가 단순히 한 기업의 문제를 넘어 국가 에너지 정책 전반과 연계된 사안이므로, 정부 차원의 특단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있었다.
위원들은 전력망 확충·요금체계 개편·조직 효율화·안전관리 강화를 잇따라 주문하며 "한전이 공공성과 효율성을 병행하는 지속가능한 경영체계로 전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동철 사장은 "국민 눈높이에 맞는 책임경영과 경영혁신을 추진하겠다"며 "전력산업의 지속가능성을 높이기 위한 제도개선을 관계부처와 협의해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5대 분야 12대 전략과제를 중심으로 한 한전의 재도약 청사진을 제시했다.
전기요금의 합리적인 조정, 한전 자체의 강도 높은 자구 노력, 그리고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이 함께 이루어져야만 한전이 현재의 위기를 극복하고 국가 에너지 인프라의 핵심 동력으로 재도약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전기요금 결정 시 원가주의 확립과 거버넌스 개편, 전력직접구매제도의 망요금 현실화, 정산조정계수 조정 등 제도적 개선이 시급한 과제로 떠올랐다.
한전의 위기는 단순한 경영 실패가 아니라 에너지 가격 급등이라는 외부 충격, 정치적 고려로 인한 요금 조정 지연, 시장 제도의 왜곡, 공기업 거버넌스의 한계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따라서 해법 역시 다층적이고 종합적이어야 하며, 정치권·공기업·정부가 각자의 책임을 인정하고 협력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이 핵심으로 부각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