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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 전환의 완성, ‘전기를 다루는 기술’에 달렸다

에너지신문
2026-09-21
▲ 최명현 한국폴리텍대학 광주캠퍼스 전기과 교수.
▲ 최명현 한국폴리텍대학 광주캠퍼스 전기과 교수.

[에너지신문] 에너지 전환을 이야기할 때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것은 태양광과 풍력 같은 발전설비다. 그러나 전기를 친환경적으로 생산하는 것만으로 전환이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만들어진 전기를 필요한 형태로 바꾸고, 수요에 맞춰 저장하며 손실을 줄여 안전하게 사용하는 과정까지 함께 달라져야 한다. 전기의 생산량보다 흐름을 얼마나 정교하게 관리하느냐가 중요해진 이유다.

이 변화는 이미 산업현장과 일상 곳곳에서 진행되고 있다. 제조업 생산라인의 정밀 장비와 산업용 로봇, 철도와 전기차의 전동기, 병원의 의료장비, 통신기지국, 물류 자동화설비와 건물 냉난방 시스템이 전기를 기반으로 연결돼 움직인다.

이들 설비에 필요한 전기를 알맞은 형태로 변환하고 공급하는 중심에는 전력반도체가 있다. 작은 전자소자의 동작 하나가 생산설비의 가동률과 교통수단의 안전, 의료·통신시설의 연속성을 좌우한다. 전기화가 확대될수록 전력반도체의 역할과 책임도 함께 커질 수밖에 없다.

연결의 확산, 커지는 고장 위험

그 책임이 커지는 가장 큰 이유는 전기화된 설비들이 더 이상 독립적으로 움직이지 않기 때문이다. 자동차는 충전기와 건물, 전력계통에 연결되고, 태양광 설비와 배터리는 사용 패턴에 맞춰 전기를 주고받는다.

공장의 생산설비도 센서와 통신망을 통해 실시간으로 제어된다. 연결은 편리함을 높이지만 한 지점의 이상이 다른 장치로 번질 가능성도 함께 키운다.

따라서 문제는 고장 자체뿐 아니라 이를 알아채지 못한 채 시간이 흐르는 데 있다. 센서의 잘못된 측정값, 느슨해진 접속부, 열화된 절연재, 소프트웨어 오류가 처음에는 사소한 현상으로 나타날 수 있다.

그러나 작은 이상이 반복되면 발열과 오동작, 설비 정지, 화재로 이어질 수 있다. 앞으로의 기술은 고장이 발생하지 않도록 만드는 데서 더 나아가 이상을 조기에 발견하고, 피해 범위를 제한하며, 빠르게 정상 상태로 돌아오도록 설계돼야 한다.

▲ 산업 전반을 잇는 전력반도체.
▲ 산업 전반을 잇는 전력반도체.

전력반도체, 전기의 흐름을 번역하다

연결된 시스템의 전기를 안정적으로 조율하는 중심에는 전력반도체가 있다. 서로 다른 기기와 전원 사이에서 전기의 언어를 바꾸는 부품이다.

배터리의 직류를 모터가 쓸 교류로 변환하고, 태양광에서 생산된 전기를 가정이나 계통에 맞게 조정하며, 전자기기에 필요한 낮은 전압을 안정적으로 공급한다. 이 과정이 정교할수록 손실과 발열은 줄고 기기의 수명은 길어진다.

그 역할은 전기차에서 더욱 선명하게 드러난다. 주행 경험은 배터리 용량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인버터와 모터, 충전장치, 냉난방기기가 어떤 상황에서 얼마만큼 전기를 사용할지 조율해야 한다.

여름과 겨울의 외부 온도, 도로의 경사, 교통 흐름에 따라 최적의 운전 조건도 달라진다. 결국 좋은 시스템은 개별 부품의 최고 성능을 모아 놓은 것이 아니라 여러 부품이 서로 무리하지 않도록 균형을 잡아주는 시스템이다.

효율을 넘어, 멈춤에 대비하는 기술

그러나 균형 잡힌 운전과 높은 효율만으로 시스템의 가치를 모두 설명할 수는 없다. 새로운 제품을 소개할 때 우리는 속도와 용량, 절감률을 먼저 확인하지만, 사회 기반시설에서는 ‘얼마나 잘 작동하는가’만큼 ‘작동하지 않을 때 어떻게 되는가’가 중요하다.

정전이 발생해도 수술실과 통신시설은 기능을 유지해야 하고, 충전 중 오류가 생기면 위험 구간만 안전하게 분리돼야 한다. 자동화 설비가 멈추더라도 작업자가 원인을 파악하고 수동으로 대응할 수 있어야 한다.

이상 상황에서도 핵심 기능을 유지하고 신속히 복구하는 힘이 회복력이다. 예비 장치를 많이 설치한다고 저절로 생기는 능력은 아니다.

고장의 위치를 정확히 알리는 진단 기능, 서로 다른 제조사의 장치가 정보를 주고받는 표준, 비상 상황에서 사람에게 제어권을 넘기는 절차, 복구 훈련과 부품 공급체계가 함께 갖춰져야 한다. 평상시의 효율을 조금 높이는 것보다 사고의 피해를 줄이고 빠르게 회복하는 능력이 사회 전체에는 더 큰 가치가 될 수 있다.

고장 대응에서 상태 진단으로

에너지 시스템의 회복력을 높이려면 설비 내부의 상태를 현장에서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 기술이 복잡해질수록 운용자와 정비 인력도 고장의 원인을 파악하기 어려워진다.

화면에 오류번호만 표시되거나 제조사만 진단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구조에서는 작은 이상을 조기에 발견하기 어렵다. 태양광 인버터와 충전기, 에너지저장장치(ESS), 자동화설비가 서로 연결될수록 전압·전류·온도·절연 상태와 고장 이력을 확인할 수 있는 진단체계가 중요해진다.

위험 상태는 현장에서 바로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알려야 하며, 통신 장애가 발생하더라도 핵심 기능을 점검하고 제어할 수 있어야 한다.

설비의 상태정보와 수리 이력을 정비 인력에게 적절히 제공하고, 제조사가 달라도 주요 진단정보를 확인할 수 있도록 표준화할 필요가 있다. 에너지 설비의 성능을 높이는 것만큼 이상 징후를 조기에 발견하고 신속히 복구할 수 있도록 만드는 일이 중요하다.

▲ 점검 후 갈리는 배터리의 재사용·재활용.
▲ 점검 후 갈리는 배터리의 재사용·재활용.

버리는 기술에서 고쳐 쓰는 기술로

설비의 상태를 정확히 진단하는 일이 고장과 사고를 예방하는 과정이라면, 수리와 재사용을 고려한 설계는 제품의 수명이 끝난 이후까지 책임지는 과정이다.

전자화가 확대될수록 폐기되는 제어기판과 배터리, 전력변환장치도 늘어나기 때문이다. 일부 부품의 고장 때문에 전체 장치를 교체하는 구조는 소비자에게 비용을 떠넘기고 자원 낭비를 키운다. 핵심 부품을 모듈화하고, 진단 기록을 남기며, 수리와 교체가 가능한 구조로 설계한다면 제품의 사용기간을 늘릴 수 있다.

나아가 사용이 끝난 장치의 다음 용도도 미리 생각해야 한다. 차량에서 성능이 낮아진 배터리는 상태를 정확히 확인한 뒤 다른 용도의 저장장치로 활용할 수 있고, 전력변환장치의 금속과 전자부품도 회수할 수 있다.

다만 재사용은 단순히 오래된 제품을 다시 쓰는 일이 아니다. 잔존 성능과 안전성을 객관적으로 판정하고, 이력 정보를 관리하며, 문제가 생겼을 때 책임 주체를 명확히 하는 제도가 뒷받침돼야 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사용이 끝난 배터리를 무조건 다시 쓰는 일이 아니다. 현장에서는 절연저항과 셀 간 전압 편차, 온도 이력, 충·방전 성능을 먼저 확인해 재사용과 재활용 여부를 결정한다.

기준을 통과한 모듈은 ESS로 옮겨 다시 쓰고, 안전성이 떨어지거나 손상이 확인된 부품은 분해해 구리·알루미늄과 배터리 소재를 회수한다. 이 판단이 정확해야 자원순환이 단순한 비용 절감을 넘어 안전한 에너지 전환으로 이어질 수 있다.

시스템의 마지막 안전장치, 현장 기술자

이러한 수리와 재사용의 체계도 결국 현장에서 상태를 정확히 판단할 사람이 있어야 작동한다. 아무리 정교한 자동진단 기능도 모든 상황을 예측할 수는 없다.

경고 신호의 의미를 해석하고, 측정기로 실제 상태를 확인하며, 기계·전기·통신 가운데 어디에서 문제가 시작됐는지 판단하는 일은 숙련된 기술자의 몫이다. 현장 기술자는 단순히 고장 난 부품을 바꾸는 사람이 아니라 복잡하게 연결된 시스템이 다시 안전하게 작동하도록 판단하는 마지막 안전장치다.

교육도 달라져야 한다. 개별 장비의 사용법을 외우는 데 그치지 않고 회로와 반도체 소자의 원리를 이해하며, 센서 데이터를 읽고 전력변환장치와 자동제어설비를 직접 결선·시험하는 경험을 쌓아야 한다.

정상 작동을 확인하는 실습뿐 아니라 일부러 오류를 만들고 원인을 추적해 복구하는 훈련도 중요하다. 산업 현장의 변화가 빠를수록 특정 장비의 사용법보다 새로운 설비의 원리를 이해하는 능력이 더 오래 경쟁력을 갖는다.

발전량 중심에서 운용의 질로

안전과 회복력, 수리와 재사용, 현장 기술자의 역량은 따로 떨어진 과제가 아니다. 모두 생산된 전기를 낭비 없이 쓰고 에너지 시스템의 신뢰성을 높이는 조건이다. 이제 에너지 정책도 발전설비의 용량이나 보급 대수만으로 성과를 판단하는 데서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한다.

생산된 전기가 변환·저장·사용되는 동안 얼마나 손실되는지, 대기전력과 냉각에 불필요하게 소비되는 몫은 없는지, 수요가 몰리는 시간에 부하를 얼마나 유연하게 조절할 수 있는지까지 살펴야 한다. 전력반도체와 지능형 제어기술은 이 과정에서 에너지 낭비를 줄이고 재생에너지의 변동성을 흡수하는 중요한 수단이 된다.

에너지 전환의 완성은 결국 전기를 다루는 기술에 달려 있다. 같은 전기로 더 많은 일을 하고, 필요한 시간과 장소에 정확히 전달하며, 이상이 생기면 안전하게 분리하고 신속히 복구할 수 있어야 한다.

제품의 수리와 재사용, 소재 재활용까지 고려한 전 생애 에너지 비용을 따져야 실질적인 절감도 가능하다. 전력반도체는 이 모든 과정에서 에너지의 방향과 속도, 품질을 결정하는 보이지 않는 조정자다.

여기에 전기의 흐름을 읽는 현장 기술자의 판단과 안전·자원순환을 뒷받침하는 제도가 더해져야 한다. 생산한 전기를 끝까지 책임 있게 다룰 때 에너지 전환은 비로소 지속가능한 사회의 기반이 될 수 있다.

출처 : 에너지신문(https://www.energy-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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