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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자원공사, ‘겉보기 통합’ 넘어 실질적 통합으로

▲ 신현돈 인하대 에너지자원공학과 교수
[에너지신문] 5년째 지속되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유럽의 천연가스 공급에 차질이 빚어졌고 7개월째 접어든 미국과 이란의 전쟁으로 전 세계 에너지 공급망이 흔들리고 경제 상황을 어렵게 하고 있다.
석유가스를 전량 수입에 의존하고 있고 중동지역의 의존도가 70% 넘는 한국에게는 더욱 큰 고통으로 다가오고 있다.
정부가 앞장서 공급량을 확보하려고 사방팔방 뛰어다녔고 국내 석유제품 가격을 안정화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처럼 에너지자원의 안정적 공급과 적정한 공급 가격 유지는 국민 생활과 국가 경제 및 안보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에너지 공급과 공급 가격은 다른 문제이다. 원하는 공급 물량을 확보된다고 해도 이것이 값싼 에너지 가격을 담보하지는 못한다. 전세계 제일의 산유국인 미국의 휘발유 가격은 우리보다 비싸다. 에너지 가격은 국가 세금정책과 기업의 시장경제 원리에 따라 결정되기 때문이다.
이번에 정부에서 발표한 석유공사와 가스공사의 에너지자원 공기업 통합도 단순히 공기업의 수를 줄이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국가 에너지자원 공급망과 지속가능한 경제성을 기반으로 제대로 추진돼야 한다.
공기업이 탄생될 때는 고유의 설립 목적이 있다. 먼저 에너지자원공기업의 탄생 역사를 살펴보자. 한국에서는 산업 발전과 에너지원의 변천에 따라 대한석탄공사, 한국석유공사, 한국가스공사로 각각 존재해 왔다.
석탄공사는 당시 국내 유일의 에너지원이었던 국내 석탄 생산과 안정적 공급을 목적으로 1950년 설립, 125년을 넘게 운영됐고 국내 광업소의 폐쇄로 더이상 존재 이유가 사라졌으니 곧 임무를 마치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것이다.
석유공사는 1970년대 중동발 제1차 석유파동을 계기로, 석유 자원의 확보와 공급을 위한 석유개발과 석유비축을 목적으로 1979년 설립돼 50년 가까이 운영되고 있다. 가스공사는 천연가스 도입과 공급을 목적으로 1983년 설립됐다.
국가 산업구조와 에너지원의 변화에 따라 공기업의 역할은 지속될 수도 있고 중단되거나 바뀔 수도 있다. 그렇다면 석유공사와 가스공사의 통합은 필요한가? 필요하다면 어떻게 해야 시너지 효과가 있는 통합이 될까?
한국의 에너지원 구성은 석유 38%, 석탄 22%, 천연가스 20%, 원자력 13%, 재생에너지 등이 7%로 화석연료가 전체의 80%를 차지하고 있다.
또한 에너지원의 93%, 핵심광물의 100%, 일반광물의 96% 이상을 해외에서 도입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상황에서 안정적인 국가 에너지자원 공급망 확보를 위해서는 제대로 된 에너지자원공사의 역할은 중요할 수밖에 없다.
석유와 가스는 지하에서 같은 원리로 같은 곳에서 만들어지고 함께 생산되기 때문에 대부분의 석유회사는 유전과 가스전을 구분하지 않고 함께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겉으로 보기엔 두 기관의 통합이 합리적이다.

▲ 정부는 지난 9월 3일 ‘공공기관 기능개혁 추진방안’을 발표하고 한국가스공사와 한국석유공사를 통합해 가칭 ‘에너지자원공사’를 출범시키겠다고 밝혔다. 사진 한국석유공사(왼쪽)와 한국가스공사 본사 전경)
그렇다면, 두 공사의 통합은 시너지효과 창출이 가능할까? 석유가스산업의 밸류체인과 두 기관의 현재 기능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석유가스산업의 밸류체인은 크게 3가지 분야로 구성된다. 석유가스를 생산하는 상류, 사용처까지 운반하는 중류, 정제 및 활용하는 하류 부문으로 구분할 수 있다. 석유공사는 석유개발과 석유비축을 주 업무로 하고 있다.
즉, 석유산업의 밸류체인에서 상류 부문만 담당하고 있는 것이다. 반면 가스공사는 가스산업의 밸류체인에서 국내 도입과 분배인 하류 부문을 담당하고 있다. 각기 다른 석유와 가스산업의 상류와 하류를 담당하고 있는 셈이다.
정상적인 밸류체인은 상류 부문인 석유개발과 하류 부문이 정유업이 함께 연계돼야 사업의 포트폴리오가 이뤄지는데 석유공사는 리스크와 불확실성이 높은 상류 부문으로만 구성돼 있어 국제유가 변동에 대응하기 어려운 구조다.
이것이 석유공사가 고유가 때 잘못된 투자로 발생한 20조원 이상의 부채로 자본 잠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근본적인 이유일지도 모른다.
반면 가스공사는 상류 부문인 가스전 개발 사업은 참여하지 못하고 하류 부문인 국내 가스 도입과 국내 공급을 담당하고 있어 온전한 가스산업의 밸류체인을 구성하지 못하고 있다.
여기에 국민의 에너지 가격 부담을 우려한 정부의 정책으로 도입가보다 낮게 가스를 공급하면서 발생한 14조원에 달하는 미수금과 40조원에 달하는 부채를 안고 있다.
이런 이유로 두 기관의 통합이 곧 석유가스산업의 밸류체인의 완성이 아니고 단지 공기업 개수만 줄이는 겉보기 통합에 그치는 것이 아닌지 우려가 나오는 것이다. 이미 우리는 유사한 자원공기업 통합 사례를 경험했다.
2021년 당시 자본 잠식 상태에 빠졌던 광물자원공사와 광해광업공단을 합쳐 한국광해광업공단을 출범시킨 바 있다.
해외 자원개발 투자로 큰 손실을 본 광물자원공사의 직접투자 기능은 폐지하고 광물 비축 기능만 남겼으니 정작 자원확보와 자원공급망의 핵심축인 자원개발투자는 하지도 못하고 있다. 투자없이 자본잠식을 벗어나기 위한 ‘물타기 통합’에 불과한 셈이다.
정말 두 공사의 통합이 제대로 이뤄지고 임무를 수행해 지속가능한 국가 에너지안보체계를 구축하려면 몇 가지 선결문제가 해결돼야 한다.
우선 석유공사가 보유하고 있는 부실자산을 어떤 형태로든 분리해서 처리해야 한다. 이는 주가 총액이 3조원에 달하는 상장사인 가스공사의 주주 동의 문제와 연결돼 있기도 하다. 부실한 통합회사가 되면 주주의 반발과 법적 문제가 예상되기 때문이다.
차라리 정부에서 주식을 모두 매입하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 두 번째, 국가 에너지자원안보의 핵심인 국내외 석유가스 개발사업을 할 수 계속할 수 있도록 해야한다. 명실상부한 석유가스 상하류 일괄조업회사 구조 형태를 갖춰서 지속가능한 에너지 회사를 만들어야 한다.
이렇게 되면 자원빈국의 에너지자원 공급망도 완성하고 사업에서 얻은 수익을 통해 국가 에너지 가격의 안정화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
외국의 석유 메이저 회사들은 한해에만 수 십 조원의 수익을 내고 있다. 세 번째, 불확실한 탄소중립과 에너지전환 시대 준비를 위한 CCS분야와 수소에너지 사업 분야로 영역을 확장하고 미래에너지를 준비해야 한다.
특히, 국내외 가스전 개발은 에너지원확보 측면에서 뿐만 아니라 국가 탄소중립에도 중요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천연가스는 탄소배출이 많은 석탄을 대신해 늘어나는 전력 수요에 대응할 탄소중립 가교형 에너지원으로서의 역할이 중요하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현재 전세계수소의 94% 이상을 화석연료 기반으로 생산하고 있다. 이중 50% 정도를 천연가스 개질을 통해 생산하고 있는 점을 고려하면 이산화탄소 포집 및 지중저장(CCS)과 연계된 청색수소생산에도 천연가스전 개발은 중요하다.
가스를 생산한 후에는 포집한 이산화탄소를 주입, 저장하는 탄소저장소로서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정상적인 에너지가격 정책 추진이 필요하다. 지속적으로 원가보다 싸게 에너지를 공급하면 에너지 공기업은 부채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고 정작 중요한 에너지인프라에 대한 미래 투자는 엄두도 못 낼 것이다.
과거에도 정권교체 때마다 석유공사와 가스공사의 통합이 추진되다 중단됐다. 통합을 하기 싫어서가 아니라 정부의 투자가 필요한 통합의 전제 조건을 해결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국가 입장에서 보면 반도체 산업 분야의 호황에 힘입어 수백 조원의 세수가 늘어난 지금 시점이 에너지자원에 국가 예산을 투입하기 적기가 아닌가 싶다.
또 다시 정부의 예산 투입 없이 숫자 줄이기용 겉보기 공기업 통합이 추진되면 미래에 더 큰 부실을 초래할 구조적 악순환 시스템을 구축할 뿐이다. 지금이 좀 더 넓게 그리고 멀리 보면서 국가 차원의 자원안보와 경제안보의 기틀을 마련할 마지막 기회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