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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일러 이후를 묻다…4사, 어디에 승부수 던졌나
[에너지신문] 국내 주요 보일러 업체들이 보일러 밖에서 새로운 성장축을 찾고 있다. 경동나비엔과 귀뚜라미, 대성쎌틱에너시스, 린나이가 최근 공개한 사업 행보를 보면 냉난방공조(HVAC)부터 AI 데이터센터 냉각, 스마트홈, 주방기기, 제습·냉방 생활가전, 구독 서비스까지 경쟁 영역이 넓어졌다.
같은 보일러 시장에서 출발했지만 선택한 방향은 서로 다르다. 경동나비엔은 글로벌 HVAC와 생활환경·스마트홈을 연결하는 방향으로 사업 범위를 넓히고 있다.
귀뚜라미는 이미 사업의 상당 부분을 산업용 냉동공조와 에너지 분야로 확장했고 AI 데이터센터를 새로운 시장으로 공략하고 있다. 대성쎌틱은 냉방·제습·환기 등 생활가전 제품을 늘리며 계절성을 낮추는 데 초점을 맞췄다.
린나이는 국내에서는 인덕션과 가스의 장점을 결합한 조리기기를 확대하고, 그룹 차원에서는 전기화 제품 확대를 중기 전략으로 제시했다.
주목할 점은 이들의 움직임을 단순한 ‘탈(脫)보일러’로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네 회사 모두 여전히 보일러를 주요 사업으로 유지하고 있다. 대신 기존 난방·온수 분야에서 축적한 열제어 기술과 브랜드, 판매·서비스 기반을 활용해 인접 시장을 늘리는 쪽에 가깝다.
결국 보일러 4사의 미래 경쟁은 기존 사업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보일러에서 확보한 경쟁력을 얼마나 넓은 시장으로 연결하느냐에 맞춰지고 있다.

▲ 경동나비엔 제습 환기청정기 매직플러스 작동 이미지.
경동나비엔, HVAC 넘어 스마트홈·생활환경까지
경동나비엔의 변화는 사업 영역 자체를 넓히는 방향으로 가장 구체화되고 있다. 회사는 올해 8월 기존 ‘토탈 에어 케어(TAC) 연구소’ 명칭을 ‘HVAC 연구소’로 변경하고 산하 TAC 1~5팀과 품질검증 조직 등의 명칭도 HVAC 중심으로 개편했다.
냉난방공조를 향후 연구개발의 주요 축으로 명확히 한 것이다. 회사 역시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글로벌 HVAC 사업으로 도약’을 사업 방향으로 제시하고 있다.
북미에서는 기존 보일러와 순간식 온수기를 넘어 HVAC 제품군을 확대하고 있다. 지난 2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AHR EXPO 2026’에서는 전기와 가스를 함께 사용하는 ‘하이브리드 온수기’와 ‘나비엔 HVAC 시스템’, 상업용 보일러, 수처리 시스템 등을 선보였다.
특정 에너지원 한쪽으로 제품을 단순 전환하기보다는 지역의 에너지 환경에 맞춰 제품 선택지를 넓히는 방식이다.
최근 경동나비엔의 행보에서 HVAC 못지않게 눈에 띄는 분야는 ‘주방과 스마트홈’이다. 회사는 SK매직으로부터 가스레인지·전기레인지·전기오븐 영업권을 인수한 뒤 지난해 3월 주방기기 브랜드 ‘나비엔 매직’을 출범시켰다.
현재 인덕션과 가스레인지, 오븐, 전자레인지, 레인지후드 등을 운영하고 있으며 기존 환기청정기와 3D 에어후드를 연계해 조리와 실내 공기질 관리를 하나의 시스템으로 묶고 있다.
스마트홈 사업도 한 단계 확대했다. 경동나비엔은 지난해 12월 스마트홈 전문기업 코맥스 인수 계약을 체결했고 올해 2월 주식매매와 제3자배정 유상증자 절차를 거쳐 코맥스 지분 80.77%를 보유한 최대주주가 됐다.
코맥스가 보유한 월패드와 도어록, CCTV, 네트워크 기술을 기존 보일러·온수기·환기청정기·주방기기 등과 연결해 스마트홈 통합 기능을 강화하려는 움직임으로 볼 수 있다.
제품 판매 방식도 달라지고 있다. 경동나비엔은 2025년 9월 보일러 구독을 출시했고 이에 앞서 구독 사업을 전담할 자회사 ‘경동C&S’를 설립했다.
환기청정기와 3D 에어후드 등에 이어 보일러까지 구독 대상에 포함시켰다. 올해 6월에는 제품 탐색과 상담, 구매, 구독, A/S를 한곳에서 이용할 수 있는 ‘나비엔 하우스’ 앱도 내놨다. 제품 제조·판매 이후 설치와 관리까지 연결하는 서비스 영역을 넓힌 것이다.
결국 경동나비엔의 미래 전략은 하나의 신제품보다 ‘HVAC·공기질·주방·스마트홈·구독을 하나의 생활환경 사업으로 연결하는 것’에 가깝다.
최근 연구조직 개편과 주방사업 확대, 코맥스 인수, 구독 플랫폼 구축이 각각 별개의 사업처럼 보이지만 주거공간의 여러 기기를 연결한다는 점에서는 같은 방향을 향하고 있다.
귀뚜라미, 보일러 밖 사업 이미 70%…AI 데이터센터로 확장
귀뚜라미의 사업 다각화는 네 회사 가운데 가장 오래됐다. 귀뚜라미그룹은 국내 보일러시장이 성숙기에 접어들던 2000년대부터 냉동공조 기업을 잇따라 인수했다. 2006년 범양냉방, 2008년 신성엔지니어링, 2009년 화인텍센추리를 인수하면서 가정용 난방에서 산업용 냉방·공조로 영역을 넓혔다.
그 결과 사업구조도 이미 크게 달라졌다. 귀뚜라미그룹은 최근 공개자료에서 전체 매출 가운데 비보일러 사업 비중이 약 70%라고 밝히고 있다.
여기에는 귀뚜라미범양냉방과 신성엔지니어링, 센추리 등 냉동공조 사업과 에너지 사업 등이 포함된다. 따라서 귀뚜라미의 경우 신사업을 준비하는 단계라기보다 보일러 외 사업을 이미 그룹의 주요 축으로 만들어 놓은 단계에 가깝다.
최근 미래 먹거리로 부상한 분야는 AI 데이터센터 냉각이다. 귀뚜라미범양냉방은 현재 데이터센터용 제품 10종을 별도의 제품군으로 운영하고 있다.
지난해 ‘데이터센터 코리아’에서는 공랭식 냉각뿐 아니라 액체 냉각과 액침 냉각 솔루션을 공개했고, 냉각수분배장치(CDU) ‘CyberCool CMU’ 등 고성능 서버와 GPU 냉각에 필요한 장비도 선보였다. 올해에도 데이터센터 냉각 솔루션 개발과 공급을 주요 기술 분야로 제시하고 있다.
사업 대상도 데이터센터에 그치지 않는다. 신성엔지니어링은 반도체와 이차전지 생산시설의 HVAC·드라이룸 사업을, 센추리는 원자력발전소와 조선·해외플랜트용 냉동공조 사업을 담당하고 있다.
귀뚜라미홀딩스는 데이터센터 쿨링시스템과 발전소 냉각탑, 해외 원전 냉동공조 등을 고부가가치 사업으로 확대하고 2030년 그룹 매출 3조원을 달성한다는 목표를 제시한 바 있다.
가정용 사업에서는 렌털을 추가했다. 귀뚜라미는 지난해 7월 현대렌탈케어와 함께 가정용 보일러 렌털 서비스 ‘따숨케어’를 출시했다.
이후 관리기간을 최대 8년으로 확대했으며 무상 A/S와 연 1회 정기 성능점검, 고장 대응 등을 서비스에 포함했다. 보일러 판매 이후 고객 관리 영역을 장기간으로 확대하는 방식이다.
귀뚜라미의 전략은 경동나비엔과 차이가 뚜렷하다. 경동나비엔이 주거공간을 중심으로 다양한 제품과 서비스를 연결한다면 귀뚜라미는 가정용 난방과 산업용 냉각·공조라는 두 축을 갖추고 있다.
특히 AI 데이터센터와 반도체, 배터리, 원전 등 냉각과 정밀한 온·습도 관리가 필요한 산업을 공략하면서 기존 ‘보일러 회사’의 범위를 가장 크게 벗어나 있다.

▲ 귀뚜라미 냉난방기술연구소 전경.
대성쎌틱, 제습·냉방 늘리며 ‘사계절 제품’ 확대
대성쎌틱에너시스는 경동나비엔이나 귀뚜라미처럼 대규모 인수나 별도의 산업용 신사업을 전면에 내세우기보다 소비자용 제품군을 넓히는 방식이 두드러진다.
현재 대성쎌틱의 공식 제품군에는 콘덴싱·일반·기름보일러와 가스·전기온수기뿐 아니라 청정환기시스템과 홈네트워크, 음식물처리기, 선풍기, 제습기, 에어컨, 카본매트, 컨벡터, 히터 등이 포함돼 있다. 겨울철 난방기기 중심에서 환기와 여름 냉방·제습, 생활가전까지 소비자 접점을 넓힌 구성이다.
올해 제품 출시에서도 이 방향이 확인된다. 5월 2026년형 제습기 ‘케어온Ⅰ·Ⅱ’를 출시한 데 이어 가정용 이동식 에어컨 ‘아이스Ⅰ’을 추가했고, 산업현장용 이동식 에어컨 ‘스노우’도 선보였다. 회사 역시 ‘아이스Ⅰ’ 출시 당시 이를 계절가전 라인업 확대라고 설명했다.
환기 분야도 계속 운영하고 있다. ‘대성 S라인 환기시스템’을 비롯해 덕트형·무덕트형 청정환기 제품군을 갖췄으며 올해 6월에는 여름철 실내 공기질 관리 제품으로 이를 다시 전면에 내세웠다. 보일러에서는 IoT 온도조절기를 통해 스마트폰 원격 제어와 자동화 모드, 에너지 사용량 모니터링, AI 음성인식 등을 제공하고 있다.
다만 대성쎌틱의 사업 확대를 경동나비엔의 HVAC·스마트홈이나 귀뚜라미의 산업용 냉동공조와 같은 수준의 중장기 사업전환으로 단정하기는 어렵다.
현재 공개된 자료에서는 별도의 대규모 신사업 로드맵이나 구체적인 매출 목표보다는 생활·계절가전 신제품 출시와 기존 환기·스마트홈 제품 강화가 주로 확인된다. 따라서 현재 단계에서는 ‘보일러 중심의 제품 구성을 사계절 생활환경 제품으로 넓히는 전략’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보다 정확하다.
수익성 개선은 함께 풀어야 할 과제다. NICE평가정보 등에 따르면 대성쎌틱의 2025년 별도기준 매출은 1250억 5000만원으로 전년보다 3.8% 감소했다.
같은 기간 영업손실은 322억 5000만원, 당기순손실은 467억 1000만원을 기록했다. 제품군 확대가 실제 매출 다변화와 수익성 회복으로 이어질 수 있을지가 대성쎌틱 신사업 전략의 성과를 판단하는 중요한 기준이 될 것으로 보인다.
린나이, 가스 강점 유지하며 ‘전기화’ 영역 넓힌다
린나이의 변화는 국내에서는 주방기기에서 가장 선명하다. 현재 린나이는 보일러와 난방·온수 제품뿐 아니라 주방가전과 업소용기기, 생활가전을 운영하고 있다. 특히 가스레인지에서 쌓은 사업 기반을 유지하면서 인덕션과 전기 조리기기로 제품 범위를 넓히고 있다.
지난해 업소용 IH 라인업을 출시했고 올해는 자동조리 가스레인지와 ‘듀얼핏 인덕션’을 선보였다. 9월 공개한 자동조리 하이브리드 레인지는 인덕션 2구와 가스레인지 1구를 하나의 상판에 결합했다.
가스 화구에는 앱 기반 자동조리 기능도 적용했다. 가스와 전기 가운데 한쪽을 선택하기보다 두 조리방식의 장점을 한 제품에서 제공하는 방식이다.
린나이그룹의 중장기 방향은 보다 분명하다. 일본 린나이 본사는 올해 새 중기경영계획 ‘accelerate 2030’을 수립하고 향후 5년간 각국 에너지정책에 대응해 전기화 제품의 전개를 본격화하겠다고 밝혔다.
기존 가스기기에서 확보한 핵심기술과 판매망을 활용하면서 전기화 제품을 확대하고, 동시에 기존 기술을 기반으로 신규 사업영역도 개척한다는 구상이다. 린나이코리아 홈페이지도 같은 그룹 전략을 소개하고 있다.
다만 이 그룹 전략을 린나이코리아의 구체적인 국내 출시계획으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 히트펌프 온수기 등 전기화 제품 확대는 린나이그룹 전체의 글로벌 중기계획이며 국내에서 어떤 제품을 언제 출시할지는 별도로 공개되지 않았다.
현재 국내에서 직접 확인되는 방향은 가스기기의 경쟁력을 유지하면서 인덕션·하이브리드 조리기기와 업소용 IH 등 전기 제품을 늘리는 것이다. 즉 가스를 버리고 전기로 이동하기보다 다양한 에너지원을 활용하는 열기기 업체로 제품 선택지를 확대하는 방식에 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