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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 120m서 쌓은 20년 데이터...고준위 처분연구 ‘다음 단계’로
[에너지신문] 국내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심층처분 연구의 현장 기반을 다져온 지하처분연구시설(KURT)이 운영 20년을 맞았다. 지하 암반에서 축적한 데이터와 시험 경험을 토대로 한국형 처분기술의 기초를 마련했다는 평가가 나오지만, 실제 처분환경에 보다 가까운 조건에서 기술을 검증하는 단계로 연구의 무게중심을 옮겨야 한다는 과제도 제시된다.
한국원자력연구원은 21~22일 대전 본원에서 KURT 운영 20주년 심포지엄을 열고 그동안의 연구성과와 향후 활용 방향을 논의했다. 방사성폐기물학회가 후원한 본 행사에는 정부와 산업계, 학계, 연구기관 전문가 약 200명이 참석했다.
KURT는 고준위방폐물을 지하 깊은 암반에 격리하는 심층처분 기술을 연구하기 위한 시설이다. 최대 깊이 약 120m, 터널 총길이 약 550m 규모로 지난 2006년부터 운영되고 있다. 실제 방사성폐기물을 처분하는 시설은 아니며, 현재 국내에서 유일하게 심층처분 관련 시험을 지하 암반에서 수행할 수 있는 연구시설이다.

▲원자력연구원 처분성능실증연구부 관계자들이 KURT 정문에서 20주년을 기념하고 있다.
심층처분은 고준위 방폐물을 지하 수백m의 안정된 암반에 처분하고, 처분용기와 점토 완충재, 주변 암반을 여러 겹의 방벽으로 활용해 사람과 환경으로부터 장기간 격리하는 방식이다. 처분장 안전성을 입증하려면 암반 구조와 지하수 흐름, 방사성물질의 이동 가능성, 처분용기와 완충재의 장기 성능 등을 실제 지하환경에서 확인해야 한다.
원자력연구원은 1997년부터 KURT가 들어선 지역의 지질과 지하수를 조사했고, 시설 운영을 시작한 뒤에는 암반 내 지하수와 물질의 이동 과정, 처분용기 부식, 완충재 성능, 지하환경 변화 등을 연구해 왔다.
이 과정에서 국내 지질조건을 반영한 처분장 성능평가 해석기술과 처분용기의 장기 부식 양상을 예측하는 ‘한국형 다물리 통합 부식 모델’ 등이 개발됐다. 해외 기술과 자료에 의존하는 데서 벗어나 국내 암반과 지하수 조건을 반영한 안전성 평가 기반을 축적했다는 점이 KURT 운영의 주요 성과로 꼽힌다.
이번 심포지엄에서도 처분시설의 안전성을 좌우하는 천연방벽과 공학적방벽 연구가 비중 있게 다뤄졌다. 천연방벽은 방사성물질의 이동을 늦추고 장기간 격리하는 주변 암반을, 공학적방벽은 처분용기와 완충재처럼 인공적으로 구축하는 보호체계를 뜻한다.
지질자원연구원과 원자력환경공단, 원자력안전기술원 전문가들은 심층처분 부지 조사·평가 방법과 연구용 지하연구시설 활용방안, 안전규제 측면의 역할 등을 논의했다. 연구기관별 성과를 소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향후 부지 조사와 기술 실증, 규제 검증을 어떻게 연결할지가 주요 화두가 됐다.
KURT가 지난 20년간 국내 심층처분 연구의 시험대 역할을 해왔지만, 깊이와 규모 면에서는 실제 처분환경을 그대로 구현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심층처분장은 통상 지하 수백m의 안정된 암반을 전제로 하는 만큼, 향후 구축될 연구용 지하연구시설(URL)에서는 보다 깊고 실제에 가까운 조건에서 장기간 실증이 이뤄져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KURT에서 확보한 지질·지하수 자료와 시설 운영 경험, 천연·공학적방벽 시험 결과는 차세대 URL의 설계와 연구과제 수립에 활용될 전망이다. 기존 연구성과가 새 시설로 단절 없이 이어지도록 하고, 부지 조사부터 성능평가와 규제 검증까지 단계별 역할을 명확히 하는 것이 중요하다.
권장순 원자력연구원 처분성능실증연구부장은 KURT 운영 20년에 대해 “심층처분에 필요한 데이터와 기술, 경험을 축적해 온 과정”이라고 평가하며 연구용 URL과의 연계 및 국내외 공동연구 확대 필요성을 강조했다.
고준위 방폐물 처분은 단기간의 실험만으로 안전성을 입증하기 어려운 장기 과제로 꼽힌다. 전문가들은 KURT가 구축한 연구 기반을 실제 처분사업에 활용할 수 있는 수준으로 끌어올리려면 차세대 지하연구시설 확보와 함께 연구개발, 부지조사, 규제체계가 유기적으로 맞물려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