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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탄소규제 2.0 시대, 장부 아닌 데이터로 대응해야

    송고일 : 2026-01-12
    ▲ 양춘승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 상임이사.
    ▲ 양춘승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 상임이사.

    [에너지신문] 유럽연합(EU)의 탄소국경조정제도(CBAM)가 2026년 본격적인 비용 부과를 앞두고 '제도 정교화'라는 칼날을 갈고 있다.

    2025년 하반기 들어 EU 집행위원회가 공개한 영향평가와 입법 패키지의 핵심은 단순히 탄소를 덜 배출했다고 주장하는 것을 넘어, 그 감축이 ‘실제적’이고 ‘증명 가능한지’를 시간과 장소 단위로 따지겠다는 것이다.

    이는 지금까지 우리가 알고 있던 연간 매칭이나 장부상 상쇄라는 탄소 회계의 문법을 근본적으로 뒤흔드는 느낌이다.

    CBAM의 정책적 목표는 EU 내 탄소가격을 역외 기업에도 동일하게 적용해 이른바 ‘탄소누출(Carbon Leakage)’을 막는 것이다.

    그러나 규제가 강화될수록 기업들의 회피 전략도 교묘해졌다. 대표적인 것이 ‘자원 재배치(Resource Shuffling)’다.

    기업이 전체 생산 공정을 탈탄소화하는 대신, 기존에 존재하던 수력이나 원자력 같은 깨끗한 전력을 EU 수출 물량에만 서류상으로 할당하고, 정작 고탄소 전력은 다른 시장용 제품 생산에 사용하는 방식이다.

    이 경우 해당 기업의 수출품은 장부상 ‘저탄소’가 되지만, 지구 전체의 탄소배출량은 전혀 줄어들지 않는다. EU가 2025년 말 공개한 정책 패키지에서 전력 회계 기준을 대폭 강화하려는 이유는 바로 이러한 ‘장부상 세탁’을 원천 봉쇄하기 위함이다.

    여기서 등장한 개념이 바로 ‘24/7 무탄소전력(24/7 Carbon-Free Energy, CFE)’이다. 이는 1년 동안 쓴 총량만큼 재생에너지를 구매했다는 기존의 ‘연간 매칭’ 방식에서 벗어나, 전기를 사용하는 바로 그 시간(시간적 정합성)과 그 장소(지리적 정합성)에 실제로 무탄소 전원이 가동되고 있었는지를 묻는다.

    이미 EU는 재생수소(RFNBO) 규정을 통해 2030년부터 시간 단위 매칭(Hourly Matching)을 의무화하는 선례를 만들었다. 이제 이 논리는 철강, 알루미늄 등 CBAM 대상 품목의 전력 사용량 산정으로 확장되고 있다.

    규제가 ‘시간과 지역을 증명하라’고 요구하기 시작하자, 시장에서는 이미 ‘EnergyTag’와 같은 시간 단위 인증서(Granular Certificates) 표준이 규제 준수를 위한 필수 인프라로 부상하고 있다.

    미국과 유럽의 전력 시장이 발 빠르게 시간 표시 인증서(Timestamped EAC) 거래를 상용화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문제는 우리나라다. 우리 기업들은 지금 두 가지 거대한 장벽에 직면해 있다. 첫째는 ‘회계 체계의 불일치’로 인한 이중 부담 리스크다.

    한국은 현재 국가 평균 배출계수를 기반으로 한 배출권거래제(K-ETS)를 운영 중이다.

    만약 EU가 요구하는 ‘시간 단위/조달 기반’ 산정 방식을 우리 제도가 뒷받침해주지 못한다면, 우리 기업은 국내에서 탄소비용을 지불하고도 EU 시장에서는 그 실적을 인정받지 못해 또다시 탄소세를 내야 하는 상황에 처할 수 있다.

    둘째는 ‘데이터 격차’다. 대기업은 거액을 투자해 시간 단위 모니터링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지만, 공급망 하단에 위치한 중소·중견기업들은 실시간 전력 사용 데이터조차 제대로 관리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증명할 수 없는 감축’은 탄소규제 시대에 곧 ‘비용’이자 ‘수출 불가능’을 의미한다.

    이제 탄소 경쟁력은 단순히 재생에너지를 많이 확보하는 ‘양(Quantity)’의 게임을 넘어, 이를 어떻게 증명하고 연결하느냐는 ‘구조(Architecture)’의 게임으로 이동했다. 우리에게 남은 시간은 많지 않다.

    정부와 전력 당국은 우선 실시간 전력 계량(AMI) 데이터를 기반으로 발행기관과 민간 기업이 실시간으로 소통할 수 있는 ‘데이터 인프라’를 구축해야 한다.

    또한, K-ETS 지침을 글로벌 표준에 맞춰 개편해 기업들이 조달한 무탄소 전원의 가치를 온전히 인정받을 수 있는 법적 토대를 마련해야 한다.

    나아가 한국의 송전 제약 현실을 반영하면서도 국제적으로 통용될 수 있는 ‘지리적 정합성’ 모델에 대한 선제적인 설계가 필요하다.

    24/7 무탄소전력은 더 이상 먼 미래의 담론이나 일부 선도기업의 ESG 캠페인이 아니다. 시간과 지역 단위로 ‘증명 가능한 전력’의 시대가 열리고 있다.

    이 거대한 정교화의 파고를 넘지 못한다면, 우리 산업의 경쟁력은 장부 위의 숫자로만 남게 될 것이다. 탄소규제는 이제 ‘얼마나’가 아니라 ‘어떻게’를 묻고 있다.

    출처 : 에너지신문(https://www.energy-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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