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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김민성 교수 (중앙대학교 에너지시스템공학부)
김민성 교수 (중앙대학교 에너지시스템공학부)
[투데이에너지 임자성 기자] 세계적으로 난방 부문의 '에너지 전기화(Electrification)'가 가속화 되고 있다. 그 중심에는 적은 전기로 주변의 열을 끌어와 난방을 해결하는 ‘히트펌프’가 있다. 유럽과 미국은 이미 화석연료 보일러를 퇴출하고 히트펌프를 표준으로 삼는 추세다. 영국은 ‘Boiler Upgrade Scheme(BUS)’ 보조금을 통해 히트펌프 설치 시 최대 7,500파운드를 지원하고 있으며, 독일은 2024년 부터 신규 건물에 재생에너지 기반 난방을 의무화하는 방향으로 법제를 정비했 다. 일본 역시 가스망 구축이 어려운 지역을 중심으로 고효율 히트펌프 시스템 보급을 국가 차원에서 지원하고 있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아파트 중심의 주거 구조, 독특한 바닥 난방 문화, 그리고 누진제라는 장벽에 막혀 보급이 더디다.
최근 중앙대학교 에너지시스템공학부 김민성 교수 연구팀은 ‘가정용 히트펌프 보급에 따른 전력 수요 영향 예측’ 연구를 통해 히트펌프가 대규모로 보급되었을 때 국가 전력망이 이를 감당할 수 있는지를 분석한 연구 결과를 내놓았다. 연구를 주도한 김민성 교수를 만나 대한민국 에너지 전환의 현주소와 과제를 짚어보았다. /편집자 주
■ 이번 연구가 학계와 산업계에서 주목받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기존 히트펌프 연구들과 어떤 점이 다른지 궁금합니다.
“그동안의 히트펌프 연구는 주로 ‘어떻게 하면 성능계수(COP)를 높일 것인가’, 즉 기기 자체의 효율이나 냉매, 사이클 개선에 집중되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번 연구는 관점을 완전히 바꿨습니다.
‘히트펌프가 얼마나 뛰어난가’를 묻는 대신, ‘이 기술이 대규모로 들어왔을 때 우리 국가 전력 시스템이 버틸 수 있는 가’라는 거시적 관점에서 접근했습니다.
가정용 난방 수요를 전력 수요로 환산하고, 이를 실제 전력 계통 데이터와 연결해 분석한 것이 핵심입니다. 특히 전력 수요 증가, 피크 변화, 온실가스 감축을 동시에 정량화함으로써 기술-계통-정책을 연결한 것이 기존 논의와 본질적으로 구별되는 지점입니다.”
■ 연구 결과에서 가장 충격적이거나 눈여겨봐야 할 데이터는 무엇이었습니까?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히트펌프는 탄소중립을 위한 강력한 무기인 동시에, 준비 없이 도입할 경우 전력망에 상당한 부담을 주는 ‘양날의 검’입니다. 시뮬레이션 결과, 국내 가정용 보일러를 히트 펌프로 전면 대체할 경우 온실가스 배출량은 약 15.8% 줄어듭니다. 환경적으로는 엄청난 이득이죠.
하지만 반대 급부로 전력 사용량은 약 5,187GWh 증가하 며, 전체 전력 수요가 20.3%나 확대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20.3%는 전력량 (에너지 총량)의 증가를 의미하며, 순간 전력 피크의 증가폭은 이와 다르다는 점입니다. 특히 한파가 닥쳤을 때 실시간으로 난방 부하를 따라가는 운전 방식을 택하면, 특정 시간대 전력 수요가 공급 능력을 최대 약 9%까지 초과할 수 있다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이는 단순한 수치를 넘어 전력 위기의 가능성을 경고하는 지표입니다.”
한국형 주거 문화와 기술적 난제
■ 해외 사례와 비교했을 때, 유독 한국에서 히트펌프 보급이 어려운 이유는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한국은 ‘온수 바닥 난방’이라는 아주 독특한 문화를 가지고 있습니다. 유럽은 대류 난방(Radiator) 중심이라 상대적으로 낮은 온도의 온수로도 난방이 가능하지만, 한국은 바닥을 데워야 하기에 요구되는 출탕 온도가 높습니다.
외기 온도가 급격히 떨어지는 겨울철에 높은 온도의 온수를 만들어내려면 히트펌프의 효율이 급감합니다. 본 연구에서는 출수 온도를 50°C로 설정했지만, 단열이 취약한 노후 주택이나 혹한기 조건에서는 더 높은 온도가 요구될 수 있습니다.
이 경우 히트펌프의 COP가 추가로 저하되어 전력 피크 수치가 연구 결과보다 더 악화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또한 아파트라는 밀집형 주거 구조도 문제입니 다. 히트펌프는 실외기가 크고, 효율적인 운용을 위해 축열조(물탱크)가 필요한데 우리나라는 이를 설치할 공간적 여유가 부족합니다. 냉방은 에어컨, 난방은 보일러로 이원화된 설비 구조를 하나로 통합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비용과 시공의 복잡성도 큰 걸림돌이죠.”
공기열 히트펌프 온수기 시스템 작동 원리도/ 김민성 교수 연구팀 제공
해법은 ‘축열’과 ‘수요 관리’에 있다
■ 연구에서 피크 수요를 억제할 핵심 대안으로 ‘축열(Thermal Storage)’을 강조 하셨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원리이며, 그 효과는 어느 정도입니까?
“쉽게 말해 ‘전기가 여유 있을 때 열을 만들어 저장해두었다가, 피크 시간에 꺼내 쓰는 방식’입니다. 연구팀이 축열 기반 시나리오를 분석한 결과, 야간 시간대를 활용한 축열 운전을 적용하면 실시간 운전 방식 대비 최대 전력 피크를 유의미하게 낮출 수 있었으며, 기존 공급 수준에 근접한 수준으로 피크를 유지하는 것이 가능했습니다.
구체적으로 전체 전력 부하가 감소하기 시작하는 21시를 축열 시작 시점으로 설정하고, 전반 12시간은 축열, 후반 12시간은 방열하는 방식으로 24시간 단위 평준화를 도모했습니다. 다만, 극한의 한파 상황에서는 일부 시간대에서 여전히 공급 능력을 초과하는 구간이 존재해, 운전 전략만으로는 한계가 있음도 확인됐습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상변화 물질 (PCM)을 활용한 소형화 기술이나 건물 자체의 열용량 및 전기차 배터리를 활용 하는 간접 저장 방식 등 다양한 분산형 저장 기술이 병행되어야 합니다.”
■ 히트펌프를 단순한 가전제품이 아닌 ‘수요자원(DR/VPP)’으로 봐야 한다는 대목이 인상적입니다.
“그렇습니다. 앞으로의 전력 시장은 공급자가 전기를 일방적으로 보내는 구조에서, 수요자가 똑똑하게 참여하는 구조로 변해야 합니다. 히트펌프는 운전 시점을 유연하게 조절할 수 있는 훌륭한 수요자원입니다.
가령 가상발전소(VPP)에 편입된 히트 펌프 수만 대가 전력 피크 시점에 동시에 출력을 낮춘다면, 이는 거대한 발전소 하나를 새로 짓는 것과 맞먹는 효과를 냅니다. 특히 수요자원으로서의 통제권을 한전이 갖게 될 경우 히트펌프가 계통 안정성에 기여하는 능동적 에너지 자원으로 전환되며, 이에 따른 제도적 지원과 인센티브 체계도 함께 설계될 수 있습니다. 히트펌프 보급이 전력 계통의 부담이 아니라, 오히려 계통을 안정화하는 도구가 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제도적 대전환: 누진제 개편이 먼저다
■ 아무리 기술이 좋아도 소비자가 선택하지 않으면 소용이 없습니다. 현재의 전기 요금 체계가 히트펌프 확산의 걸림돌이라는 지적이 많은데요.
“정확한 지적입니다. 현재의 가정용 누진제 구조에서는 난방을 전기로 할 경우 요금 폭탄을 피하기 어렵습니다. 해외에서는 이미 다양한 방식으로 이 문제를 풀고 있습니다. 미국 서던 캘리포니아 에디슨(SCE) 등 일부 전력사는 ‘Time-Of Use(TOU)’ 요금제를 통해 야간 저렴한 전기 요금을 적용해 히트펌프의 야간 축열을 경제적으로 유도합니다.
유럽에서는 히트펌프 전용 요금제를 별도로 운용하는 국가들도 있습니다. 국내도 단순히 요금을 깎아주는 차원이 아니라, 부하 이동을 유도할 수 있는 시장 기반의 요금 체계로 전환해야 합니다. 에너지 전환은 기술의 변화뿐만 아니라 제도의 변화가 동반될 때 비로소 완성됩니다.”
미래를 향한 제언: 통합적 로드맵의 필요성
■ 보급 속도와 계통 안정성,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는 것이 가능합니까?
“이 두 요소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동시에 설계해야 할 문제입니다. 보급 속도만 강조하면 계통 리스크가 커지고, 안정성만 강조하면 전환이 지연됩니다.
‘빠르게 보급하되, 시스템적으로 준비된 상태에서 추진하는 것’이 가장 현실적인 접근입니다. 단계적 보급과 함께 운영 전략, 요금제 개편, 저장 기술 도입을 병행하는 로드맵이 필요합니다.”
■ 마지막으로 정부나 산업계에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무엇입니까?
“히트펌프 보급은 거스를 수 없는 흐름입니다. 하지만 ‘얼마나 많이 설치하느냐’는 보급 대수에만 매몰되어서는 안됩니다. 히트펌프는 더 이상 단순한 고효율 가전이 아니라, 전력 계통과 직접 연결되는 시스템 기술입니다. 개별 제품의 성능 향상만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없으며, 전력 시장, 건물 구조, 운영 전략까지 포함한 통합적 접근이 필요합니다.
건축물의 단열 성능 강화, 지능형 전력망 구축, 그리고 축열 기술에 대한 R&D 투자가 함께 가야 합니다. 히트펌프는 탄소중립의 강력한 ‘치트키’가 될 잠재력이 충분합니다. 다만 그 열쇠는 우리가 전력 계통이라는 시스템을 얼마나 유연하고 견고하게 설계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약 1시간 동안 이어진 인터뷰 내내 김교수는 ‘거시적 관점’과 ‘시스템’을 강조했다. 히트펌프의 문제는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그 기술을 사회 시스템에 어떻게 통합할 것인가의 문제다.
앞으로의 과제는 기술 개발이 아니라 시스템 설계와 정책 조율에 있다. 중앙대 연구팀의 이번 보고서가 단순한 학술적 성과를 넘어 대한민국 에너지 정책의 나침반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용어설명
성능계수(COP, Coefficient of Performance) = 히트펌프의 효율을 나타내는 지표로, 소비된 전력량 대비 생산된 열에너지의 비율을 의미
축열(Thermal Storage) = 에너지가 남거나 요금이 저렴한 시간대에 열을 미리 생산해 특수한 저장조(물탱크 등)에 보관해 두었다가, 필요한 시점에 꺼내 쓰는 방식
수요자원(DR, Demand Response) = 전력 수급 상황에 맞춰 사용자가 전기 사용량을 조절하고 그에 따른 보상을 받는 제도
가상발전소(VPP, Virtual Power Plant) = 가정용 히트펌프, 태양광, 전기차 배터리 등 곳곳에 흩어진 소규모 에너지 자원들을 ICT 기술로 통합해 하나의 발전소 처럼 운영하는 시스템
에너지의 전기화(Electrification) = 과거 화석연료(가스, 석탄 등)를 직접 태워 얻던 에너지를 전력을 사용하는 방식으로 전환하는 과정
출수 온도: 히트펌프에서 가열되어 난방 배관이나 수도로 나가는 온수의 온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