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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평] 12차 전기본의 진짜 승부처는 ‘계통’이다
이순형 교수
[투데이에너지] 지난 4월 22일 공개된 ‘제12차 전력수급기본 계획’의 2040년 전력수요 전망은 우리 사회에 묵직한 숙제를 던졌다. 최대전력은 기준·상향 시나리오에 따라 131.8~138.2GW, 전력소비량은 657.6~694.1TWh로, 2025년 실적(100.9GW·549.4TWh) 보다 각각 약 31~37%, 20~26% 늘어난 수치다.
반도체 클러스터와 데이터센터, 수소환원제철· 전기로로 대표되는 산업 전기화가 구조적 증가 요인으로, 데이터센터 한 항목만으로도 약 26.5TWh, 전기화로는 최대 119TWh의 추가 수요가 더해진다.
전기사업법에 따라 2년마다 수립되는 이 법정 계획은 향후 15년 전력 시스템의 청사진이자 연내 확정을 앞둔 사실상의 국가 미래 설계도다.
그러나 수치가 공개되자마자 논쟁은 곧장 ‘원전 이냐 재생이냐, 얼마나 더 지을 것인가’로 좁혀 졌다. 이는 절반 짜리 질문이다.
진짜 병목은 발전설비의 총량이 아니라 ‘계통 (系統)’에 있다. 수요는 수도권의 첨단산업 단지로 집중되는데, 이를 충당할 청정전원은 비수도 권에 입지한다. 2024년 기준 호남에는 전국 태양광 설비의 약 39%가 몰려 있지만, 이 지역은 이미 계통포화로 묶여 있다. 한국전력은 2024년 전국 205개 변전소를 계통관리변전소로 지정했 고, 호남·제주 전역은 송·변전 설비가 완공되는 2031년까지 신규 접속이 사실상 제한된 상태다.
동·서해안의 발전과 호남·제주의 재생에너지 출력제어도 해마다 급증하고 있다.
더 나아가 송전 제약은 경직성 전원인 원전의 출력감발로 이어지고, 태양광 급증은 원전 단지의 과도안정도와 주파수·전압 문제를 동반한다.
공급을 늘릴수록 계통의 부담이 함께 커지는 역설적 구조다. 지금의 병목은 전기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흘려보낼 길과 실시간으로 균형을 잡을 수단이 부족한 데서 온다.
정부는 초고압 송전망 확충을 핵심 해법으로 제시한다. ‘에너지 고속도로’와 HVDC, 국가기간 전력망 확충 특별법이 그것이다. 모두 필요한 사업이다. 그러나 345kV 한 회선을 건설하는 데통상 10년 안팎이 걸리고, 계획된 송·변전 사업 상당수가 주민 반발과 인허가로 지연되고 있다.
송전망이라는 단일 해법에만 기대면 2030년 재생에너지 100GW도, 늘어나는 수요의 안정적 수용도 적기에 달성하기 어렵다.
해법은 전원믹스와 계통·시장·분산을 ‘하나의 묶음’으로 설계하는 데 있다. 첫째, 수요의 분산이다. 지역별 차등요금을 도매를 넘어 소매까지 확장하고, 산업단지 지붕형 태양광과 자가소 비, 가상발전소(VPP)로 비수도권에 수요를 만들 어내야 한다. 분산에너지 활성화 특별법과 배전 계통운영자(DSO) 체계가 그 제도적 토대다.
둘째, 계통 유연성이다. ESS·양수발전·수요반 응·V2G 같은 부하이전 자원을 정량 목표로 못박고, 동기발전기의 관성을 유지하는 범위에서 과도하게 높은 화력 최소발전용량을 단계적으로 낮춰 재생에너지 수용 공간을 넓혀야 한다.
이미 일본·중국 등 주요국은 같은 방향의 제도 개선으로 출력제어를 줄여 왔다. 셋째, 계통 안정도다. 재생에너지 비중 확대가 야기하는 관성 부족과 과도안정도, 주파수·전압 문제를 동기조 상기와 계통형(grid-forming) 인버터, 관성 서비스로 선제적으로 설계해야 한다. 아울러 대규모 신규 부하와 발전원의 접속 기준 및 계통영 향평가를 사전에 정교화해 설비가 먼저 확정된뒤 계통이 뒤따라가는 관행을 끊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수요 전망 자체에 대한 냉정한 검증도 필요하다. 일각에서는 경기 둔화와 전기화 지연 시 과잉설비를 우려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세계적 전력수요 급증세를 들어 오히려 전망이 낮다고 지적한다. 어느 방향이든 불확실성이 크다는 것이 핵심이며, 그렇기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많이 짓는’ 계획이 아니라 ‘유연하게 대응 하는’ 계획이다.
특히 RE100을 요구받는 수출 제조업에 청정 전력을 적기에 공급하지 못하면, 이는 곧 국가 산업 경쟁력의 문제로 직결된다. 12차 전기본이 던지는 본질적 물음은 발전소를 얼마나 더 지을 것인가가 아니라, 그 전력을 어떻게 흘려보내고 어디서 쓸 것인가다. 골든타임은 바로 지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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