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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트펌프 시대가 온다.(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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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은 전기로 흐른다
게임의 승자는 누가 될 것인가
LG전자의 일체형 히트펌프 시스템 보일러./ LG전자 제공
상편에서는 R290 자연냉매의 부상, 혹한 성능 경쟁, 공장 패키지 설계, AI 기반 에너지 관리 등 2026년 상반기 글로벌 히트펌프 기술의 대전환을 짚었다. 하편에서는 이 거대한 변화 속에서 한국 기업들이 어떤 전략으로 대응하고 있는지, 그리고 앞으로의 시장을 누가 지배할 것인지를 살펴본다. / 편집자 주
[투데이에너지 임자성 기자]
글로벌 히트펌프 시장의 기술 전쟁은 유럽과 북미에서만 벌어지고 있지 않다.
2026년 상반기, 삼성전자와 LG전자는 유럽 수배관 기술의 격차를 M&A로 단숨에 좁히는 승부수를 던졌고, 경동나비엔과 대성히트에너시스, 오텍캐리어까지 각자의 방식으로 가스보일러 시대 이후의 좌표를 새로 설정하고 있다. 한국 히트펌프 산업의 현재 위치와 앞으로의 승부처를 짚어본다.
삼성·LG, 유럽의 심장을 사다
삼성전자는 독일 빌딩 복합 공조 전문 기업 플랙트그룹(FläktGroup)을 2025년 11월 인수 완료하며 대형 건물 공기 관리 시스템과 SmartThings 생태계의 수직 통합을 위한 발판을 마련했다. 영국 콘월 지역 '웨스트 카클레이즈 가든 빌리지' 재개발 프로젝트에 EHS 모노 R290과 R32를 1,500세대 규모로 공급하며 유럽 B2B 레퍼런스를 확보했다. 이탈리아 소비자 만족도 조사 기관 ITQF의 2026년 평가에서 히트펌프 부문 3년 연속, 에어컨 부문 6년 연속 1위를 기록하며 유럽 소비자 신뢰를 공고히 했다.
LG전자는 노르웨이 온수 솔루션 전문 기업 오소(OSO) 핫워터를 2025년 9월 인수 완료해 유럽식 정밀 수배관 하이드로닉 엔지니어링 역량 내재화의 기반을 구축했다. OSO 물탱크 기술을 결합한 실내기 3종(컨트롤·하이드로·콤비 유닛)을 MCE 2026에서 최초 공개했으며, 200리터 물탱크 내장 콤비 유닛은 올인원 설계로 호평을 받았다. LG전자는 MCE 2026에서 8개 부문 우수상을 석권하며 글로벌 공조 리더십을 공식 인정받았다. 스페인 마드리드 인근 1,000여 세대 주거단지와 세르비아 베오그라드의 '킹스 서클', '더 원' 레지던스 500여 세대를 연이어 수주하며 B2B 시장을 본궤도에 올렸다.
SmartThings와 ThinQ 플랫폼의 가전 에코시스템 통합 경쟁력은 하드웨어 성능에 특화된 다이킨, 보쉬 대비 세대별 운영비 최소화 측면에서 뚜렷한 비교 우위를 만들어낸다. M&A를 통한 수배관 역량 내재화는 그 소프트웨어 경쟁력을 하드웨어 기반 위에 완성하려는 전략이다.
보일러 기업의 생존법
경동나비엔은 '콘덴싱에 이은 또 하나의 콘덴싱'을 만들겠다는 전략 아래 히트펌프 전환에 나섰다. 2025년 4월 영국 시장에 먼저 론칭해 리버풀·글래스고 단독주택 실증 지구에서 혹한기 내구성을 검증받은 R290 탑재 'PEM750'을 올해 국내 시장에 역도입하고, 5월 제주에 '나비엔 난방 전기화센터'를 개소했다. PEM750은 보조 전기히터 없이 기존 가스보일러 수준인 75도 이상의 온수를 안정적으로 공급하며 레지오넬라 살균 요건도 충족한다. 전국 대리점 표준화 설치 매뉴얼과 설치 품질 인증제도, 전문 기술자 양성 프로그램을 결합한 원스톱 서비스 체계가 기계 성능 못지않은 경쟁 자산이다.
대성히트에너시스는 국내 그린홈 주택용 지열 시장 1위라는 기반 위에서 공기열 히트펌프로의 전환을 공격적으로 밀어붙이고 있다. R32 냉매를 적용한 16kW급 제품은 기후에너지환경부와 제주도의 '생활 속 히트펌프 보급 사업' 대상 제품으로 선정됐으며, 영하 15도에서도 최대 65도 온수를 지속 공급하는 성능을 공식 인증받았다. 가스보일러 대비 에너지 비용을 최대 60% 절감할 수 있다는 점도 강점이다. 해외에서는 R32 기반 공기열 히트펌프의 CE 인증을 완료해 동유럽 수출 모델을 확장하고, 미국 AHR 엑스포 출품을 통해 북미 인증 작업도 속도를 내고 있다. 삼성·LG의 완제품 공세에 맞서 설계-시공-사후관리로 이어지는 턴키형 종합 솔루션과 전국 단위 유지보수 인프라를 차별화 포인트로 내세운다.
오텍캐리어는 2026년 6월 공기열 히트펌프 기반 가정용 일체형 '캐리어 AI 보일러'를 출시하며 주거 시장에 신규 진입했다. R32 냉매 기반으로 최대 65도 중온수를 공급하며 가스보일러 대비 에너지 비용 최대 65% 절감을 내세운다. 냉매 배관 시공이 불필요한 일체형 구조와 2011년부터 축적한 인버터 하이브리드 기술력이 핵심 경쟁력이다.
다만 경동나비엔과 대성히트에너시스 모두 삼성·LG와 같은 고도화된 클라우드 에너지 관리 플랫폼 및 스마트 그리드 연동 생태계를 구축하고 자사 하드웨어와 성공적으로 결합하는 것이 향후 장기 경쟁력의 핵심 과제가 될 전망이다.
경동나비엔 가정용 히트펌프(PEM750)_영국 인스톨러 쇼 2025 전시 / 경동나비엔 제공
정책이 시장을 연다
한국 정부는 2030년까지 히트펌프 누적 69만 대, 2035년까지 350만 대 보급 로드맵을 공표하고 2026년 한 해 583억 원 규모의 전용 보급 예산을 집행한다. 태양광 연계 가구에는 설치비의 최대 70%(가구당 980만 원 한도)를 직접 보조하며, 농어촌 취약지역과 공공시설에는 우선 보급 물량을 배정했다. 히트펌프 보급의 경제적 타당성은 전기요금과 가스요금의 상대 가격비에 크게 좌우된다. 전기-가스 요금 연동 구조의 개선이 선결 조건이며, 한전과 협력해 2026년 4월 1일부로 시행한 고효율 히트펌프 전용 누진 예외 특례 요금제는 대중적 확산의 실질적 분기점이 될 수 있다. 한국 히트펌프 시장 규모는 2026년 기준 약 22억 달러로 평가된다.
세 가지 승부처
2026년 상반기 기술 전쟁을 분석하면 향후 시장 지배 구도를 결정할 세 가지 승부처가 선명하다.
첫째는 '완전 밀폐 공장 패키지 설계'다. 현장 배관 용접을 없애고 체결 방식을 단순화해 설치 시간을 절반으로 줄이는 기업이 대리점 확보 경쟁에서 우위를 점할 것이다. 둘째는 'R290 안전 이중화 기술'이다. 누출 감지 센서와 부취제, 스마트 제어 알고리즘으로 자연 냉매의 가연성 장벽을 넘어서는 기업만이 도심 밀집 주거 시장을 선점할 수 있다. 셋째는 '에너지 통합 제어 플랫폼'이다. 스마트 그리드와 연동하고 가구 에너지 데이터를 학습해 운영비를 자율 최적화하는 소프트웨어 경쟁력 없이는, 하드웨어 성능이 아무리 뛰어나도 소비자 선택을 지속하기 어렵다.
가스 불꽃이 꺼지는 속도만큼 빠르게, 이 세 가지 역량을 어떻게 조합하느냐가 다음 10년 글로벌 에너지 시장의 판도를 결정할 것이다.
[용어 설명]
하이드로닉(Hydronic) 시스템: 물이나 수용액을 열 매개체로 사용해 냉난방을 하는 수배관 기반 시스템.
턴키(Turn-key) 솔루션: 설계·시공·시운전·사후관리까지 전 과정을 단일 사업자가 책임지는 방식.
CE 인증: 유럽연합(EU) 시장에 제품을 출시하기 위해 반드시 취득해야 하는 안전·환경·품질 적합성 인증 마크.
IRA(Inflation Reduction Act, 인플레이션 감축법): 2022년 미국이 제정한 기후·에너지 법안.
SCOP(Seasonal Coefficient of Performance, 계절 성능 계수): 히트펌프가 연간 실제 운전 조건에서 소비한 전력 대비 생산한 열에너지의 비율.
부취제(Odourant): 가연성 냉매나 가스에 누출 시 냄새를 통해 즉각적으로 인지할 수 있도록 첨가하는 화학 물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