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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기후위기 시대, 수도요금 현실화는 ‘사회적 정의’이자 ‘물안보 전략’이다

에너지신문
2026-07-21
▲ 양춘승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 상임이사.
▲ 양춘승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 상임이사.

[에너지신문] “돈을 물 쓰듯 한다.”

산천 계곡에 흐르는 물을 공짜로 누구나 마실 수 있던 옛날의 이야기다. 그러나 기후위기가 현실로 등장한 이 시대에 이르러서는 가장 위험하고 무책임한 말이 됐다.

기후변화가 심해지면서 강수 패턴이 전례 없이 변하고 있다. 극한 폭우와 장기 가뭄이 동시에 찾아오고, 그만큼 수자원의 변화를 예측하기 어려워지고 있다.

여기에 정부가 AI 데이터센터와 반도체 클러스터 같은 이른바 3대 메가프로젝트 계획을 발표하면서 첨단 산업용수 수요가 기하급수적으로 폭증하고 있다. 물은 이제 틀면 나오는 당연한 공공서비스가 아니라, 에너지 및 식량과 궤를 같이하며 국가 경쟁력과 생존을 좌우하는 ‘최고의 전략자산’이 됐다.

그럼에도 우리의 수도요금 정책은 여전히 요순시절의 관성에 머물러 있다. 공공요금은 무조건 낮게 유지해야 복지라는 고정관념이 지배한다.

그러나 현재의 물 부족 시대에 무조건적인 저가 정책은 더 이상 서민을 위한 혜택이 아니다. 오히려 꼭 필요한 인프라 투자를 가로막아 장기적으로 현재 세대의 안전을 위협하고, 미래세대에게는 누적 적자를 통해 ‘보이지 않는 부채’를 떠넘기는 무책임에 가깝다.

이제 수도요금 논의는 단순한 서민 물가 안정의 프레임을 넘어, 대한민국의 국가 물안보와 지속가능성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라는 거시적 전략 관점에서 재정립돼야 한다.

공짜 물은 없다, 누군가 대신 지불하고 있을 뿐

수도요금이 싸다고 해서 수돗물의 생산비마저 낮은 것은 아니다. 우리가 매일 마시는 물은 취수와 정수, 스마트 송·배수, 수질 관리, 노후 관망 교체 등 막대한 자본과 첨단 기술이 투입되는 거대한 인프라의 결과물이다.

특히 정수 및 가압 시설은 엄청난 전력을 소비하는 대표적인 ‘에너지 집약 산업’이다.

우리 법률은 수도요금을 산정할 때 생산에 필요한 모든 비용과 미래 투자를 위한 적정 보수를 합산한 ‘총괄원가(Total Cost)’를 기준으로 하도록 규정하고 있으며, 매년 외부 회계법인의 엄격한 검증을 거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지자체에 공급하는 광역상수도 요금은 지난 10년 가까이 사실상 동결됐다. 그 사이 산업용 전기요금이 급등하면서 상수도 정수에 들어가는 전력비는 최근 5년 동안 약 84%나 올랐다.

이를 요금에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 결과, 국가가 관장하는 광역상수도의 요금 현실화율은 78% 수준으로 내려앉았으며 2016년 이후 쌓인 누적 원가 미회수액은 2조 2000억원을 넘어섰다.

주민들이 체감하는 지자체의 지방상수도 사정은 더 열악해, 전국 평균 요금 현실화율은 고작 74.4%에 불과하다. 물을 많이 팔수록 적자가 쌓이는 만성적 한계 상황이다.

기후위기와 AI 시대, 물 인프라는 곧 '국가 안보'

기후변화가 초래하는 물관리의 위기는 공급의 안정성에 있다. 강수량이 아무리 풍부해도 일시에 폭우로 쏟아지고 건기가 길어지면 이를 모으고 정화해 보내는 인프라 없이는 무용지물이다.

즉, 지금의 물 인프라는 단순한 토목시설이 아니라 국가 ‘기후적응(Climate Adaptation) 인프라’다.

정부와 한국수자원공사가 기후 적응 및 첨단 산업용수 공급을 위해 향후 10년간 필요한 광역상수도 투자 규모를 산정한 결과, 22조 7000억원에 달하는 재원이 필요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공공기관의 자체 영업활동과 정부 출자로 조달 가능한 재원은 9조 3000억원에 불과해, 약 13조 4000억원의 거대한 투자 갭이 발생하고 있다.

이 재원 부족은 곧바로 국민 안전의 결손으로 이어진다. 현재 전국 6146km에 달하는 광역상수도 관로 중 노후관이 2572km에 이르고 비상시 우회할 수 있는 복선화 구간도 태부족이다.

실제로 최근 발생하는 관로 사고의 절반 이상이 시설 노후화 때문이다. 투자가 지연될수록 우리는 대규모 단수와 수질 사고라는 사회적 재난에 상시 노출될 수밖에 없다.

게다가 반도체 초순수(Ultrapure Water) 공급과 AI 데이터센터 냉각수 확보는 대한민국의 미래 먹거리를 결정짓는 핵심 열쇠다. 물안보 실패는 곧 산업 경쟁력의 약화로 직결된다.

저렴한 요금이 만드는 역진성과 세대 간 불평등

단순히 수도요금을 낮게 묶어두는 정책은 언뜻 서민을 보호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심각한 자원의 왜곡과 불평등을 낳는다.

첫째, 물값이 원가보다 지나치게 저렴하면 자발적인 물 절약 유인이 사라진다. 결과적으로 많은 물을 소비하는 대형 소비처가 적게 쓰는 일반 시민보다 더 많은 국가 보조금(원가 차액 보전) 혜택을 누리는 ‘역진적 자원 분배’가 발생한다.

둘째, 현재 발생한 수도 적자를 일반 세금이나 지방채로 땜질하는 행위는 지금 우리가 소비하는 자원의 비용을 우리 아이들에게 고스란히 빚으로 넘기는 전형적인 ‘세대 간 불평등’이다.

자신이 쓴 자원의 비용은 자신이 부담하는 ‘사용자 부담 원칙’을 확립하는 것이야말로 경제 논리를 넘어선 진정한 사회적 정의(Social Justice)다.

신뢰의 거버넌스와 국가전략으로의 인식 전환

수도요금 현실화가 지지를 얻기 위해선 사회적 약자를 포용하는 ‘정의로운 전환(Just Transition)’ 정책과 수돗물 거버넌스 개혁이 수반돼야 할 것이다.

첫째, 소득 취약계층에 대한 핀셋 지원(물 바우처, 기본 필수 사용량 무료 보장 등)을 대폭 확충함으로써 모든 국민에게 생존권으로서의 물 이용권을 국가가 완벽히 책임지고 보호해야 한다.

둘째, 공공 수도사업자의 뼈를 깎는 운영 효율화와 비용 절감 노력을 정량적으로 먼저 증명해야 한다.

셋째, 총괄원가 산정 및 외부 검증결과를 국민 누구나 쉽게 알 수 있도록 공시해야 한다.

넷째, ‘수도 서비스 개선 특별 목적 기금(Water Trust Fund)’을 설치해 인상된 요금 수입이 일반 지자체 행정 예산으로 전용되지 않고, 오직 노후관 교체, 누수율 저감, 고도정수처리 등 기후 적응 및 안전 분야에만 100% 재투자되도록 신뢰의 구조를 짜야 한다.

대한민국 국민은 설명 없는 요금 인상에는 단호히 반대하지만, 이러한 원칙이 지켜진다면, 국가의 미래와 안전을 위한 투명한 재원 투자 계획에는 공감할 성숙함을 가지고 있다고 믿는다.

석유가 20세기의 전략자원이었다면, 21세기의 진정한 안보 자원은 물이다.

광역상수도를 생산원가 수준으로 단계적 현실화할 때 일반 가구가 추가로 부담하는 비용은 월 평균 500원 안팎에 불과하지만, 이를 통해 확보되는 물안보의 가치와 기후위기 대응력은 수십조원의 가치를 지닌다.

수도요금 현실화는 단순한 공공요금 조정을 넘어, 대한민국이 기후 재난의 시대를 건너기 위해 맺어야 할 가장 시급하고 책임 있는 '지속가능한 사회계약'이다. 미래를 생각하는 우리 정부의 지도력을 기대한다.

출처 : 에너지신문(https://www.energy-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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