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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용 전기료 차등, 지방투자 이끌까?
[에너지신문] 산업용 전기요금 지역차등제 논의가 본격화되면서 ‘얼마나 싸게 할 것인가’보다 ‘실제 기업의 지방투자를 이끌 수 있느냐’가 핵심 쟁점으로 떠올랐다.
정부는 남부권 전기료를 최대 18원 인하하는 11개 지역 차등안을 제시했지만, 경북도는 기업 유인을 위해 30% 이상 차등을 요구하고 있다. 전력자립률을 둘러싼 지역 간 형평성 논란과 한전 재무부담까지 겹치면서 제도의 실효성을 둘러싼 논쟁이 커지고 있다.
앞서 기후에너지환경부와 한국전력공사는 지난 8월 26일 서울 영등포구 한전 남서울본부에서 공청회를 열고 ‘산업용 지역 전기요금제’ 설계안을 처음 공개했다. 2024년 6월 '분산에너지 활성화 특별법' 시행 이후 약 2년 만에 나온 구체적인 설계안이다. 정부는 올해 안에 제도를 도입한다는 목표다.

▲ 사진은 AI 생성 이미지.
정부안의 핵심은 현행 전기요금에 ‘지역별 조정요금’을 신설해 지역에 따라 산업용 전기요금을 달리하는 것이다. 전국을 전력계통과 전력 흐름 등을 반영한 4개 광역권과 균형성장 요소를 고려한 권역을 조합해 총 11개 지역으로 구분한다.
요금은 지역별 송전비용 차이를 우선 반영하고 전력자급률과 균형성장 요소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다. 수도권 남부는 현재 수준 또는 1원 안팎의 조정에 그치는 반면 수도권 북부는 최대 10원, 중부권은 최대 15원, 남부권은 최대 18원까지 인하한다. 2025년 산업용 전력 평균 판매단가 181.9원/㎾h를 기준으로 하면 남부권 최대 인하폭은 약 10% 수준이다. 정부는 산업용 전기요금 부담이 연간 약 2조8000억원 줄어들 것으로 추산했다. 다만 최종 권역과 세부 설계에 따라 금액은 달라질 수 있다.
법적 근거도 마련돼 있다. '분산에너지 활성화 특별법' 제45조는 국가균형발전 등을 위해 송전·배전 비용 등을 고려해 전기요금을 지역별로 달리 정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즉 지역차등제는 단순한 정책 아이디어가 아니라 법률에 근거를 둔 제도다.
문제는 정부가 제시한 ‘최대 10% 안팎’의 차등폭이 기업의 입지 선택을 실제로 바꿀 만큼 충분하느냐는 것이다.
경상북도는 정부안 발표 직후 이 문제를 정면으로 제기했다. 이철우 경북도지사는 8월 31일 입장문을 통해 정부의 지역별 전기요금제 도입 자체는 환영하면서도 현재 제시된 최대 10% 수준의 인하폭으로는 기업의 지방 이전과 신규 투자를 유도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밝혔다. 경북도는 발전지역을 중심으로 산업용 전기요금을 30% 이상 차등화할 필요가 있다고 요구했다.
이는 단순히 지방에 혜택을 더 달라는 요구와는 성격이 다르다. 경북도가 주장하는 핵심은 전력 생산과 소비의 불균형을 가격에 반영해 기업이 전력이 풍부하고 공급여건이 좋은 지역으로 이동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경북도는 전기요금 차등제가 지방을 배려하는 지원책이 아니라 기업과 산업의 효율적인 재배치를 유도하는 국가 성장전략이 돼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반대로 지역 구분과 산정기준을 둘러싼 형평성 문제도 만만치 않다.
대표적인 사례가 인천이다. 인천시는 지난해 3월 21일 인천상공회의소 등과 함께 ‘지역별 전기요금 차등요금제 공동대응 토론회’를 열고 수도권이라는 이유만으로 인천을 서울·경기와 동일하게 취급할 경우 역차별이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당시 발제자인 조현석 인하대 산학협력단 책임연구원은 전력자급률이 높은 인천과 서울·경기를 분리해 별도의 전력가격 정책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인천·부산·강원·충남·전남 등 5개 시·도도 지난해 3월 공동 건의문을 마련해 광역지자체별 전력자립률을 지역별 전기요금 산정의 핵심 기준으로 반영하고, 명확한 적용기준을 공개할 것을 정부에 요구했다. 지역차등제가 본격화되기도 전에 지방정부들이 각자의 전력 생산·소비 구조를 근거로 유불리를 따지기 시작한 셈이다.
여기서 더 근본적인 문제가 발생한다. 전력은 행정구역 단위로 소비되는 상품이 아니라 하나의 전력망을 통해 이동한다. 발전소가 있는 지역이라고 해서 생산된 전력이 모두 그 지역에서 소비되는 것도 아니다. 따라서 단순한 행정구역이나 전력자립률만으로 요금을 결정하면 실제 송전망 이용비용과 가격신호 사이에 괴리가 생길 수 있다.
정부가 이번 설계안에서 송전비용을 우선 반영하고 전력자급률과 균형성장 요소를 함께 고려한 것도 이 같은 문제를 감안한 것으로 풀이된다. 결국 향후 논의에서는 ‘어느 지역이 전기를 많이 생산하느냐’보다 실제로 전력을 어디에서 생산하고 어디까지 보내며, 그 과정에서 어느 정도의 계통비용이 발생하는지를 얼마나 객관적으로 반영할지가 중요해진다.
기업 입장에서 더 중요한 것은 전기요금 차이가 실제 투자 의사결정으로 이어지느냐다.
반도체, 이차전지, 철강, 석유화학, 데이터센터 등 전력 다소비 산업에서는 전기요금이 주요 원가 가운데 하나다. 하지만 기업의 입지 결정에는 산업용지와 용수, 물류, 인력 확보, 협력업체 집적도, 세제와 각종 생활·산업 인프라가 동시에 작용한다.
따라서 전기요금을 10%가량 낮춘다고 해서 기존 수도권 공장이 일제히 지방으로 이전할 것으로 기대하기는 어렵다. 오히려 효과가 나타날 가능성이 높은 곳은 신규 투자다. 기업이 새로운 공장이나 데이터센터를 건설할 때 전력비와 전력 공급 안정성을 다른 입지 조건과 함께 비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지역차등제는 단순한 ‘지방 전기료 할인제’가 아니라 기업의 입지 선택에 새로운 가격정보를 제공하는 정책으로 접근해야 한다. 정부 역시 이번 설계안에서 산업용 전력이 전체 전력 사용량의 51%를 차지한다는 점을 들어 기업의 입지 선택과 전력수요 분산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재원과 전력시장 개편도 풀어야 할 과제다. 정부는 산업계의 연간 전기요금 부담이 약 2조8000억원 감소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기업에는 비용 절감이지만 한전에는 수입 감소 요인이 될 수 있다. 이에 따라 정부와 한전은 지역별 도매가격제 도입과 정부 재정지원 등을 병행해 한전의 재무 영향을 최소화한다는 계획이다. 지역별 도매가격이 도입되면 발전소에도 지역별 수급 상황을 반영한 가격신호가 전달되는 만큼 발전사업자의 수익성과 투자전략에도 변화가 예상된다.
결국 산업용 지역별 전기요금제의 성패는 ‘18원이냐 30%냐’라는 숫자 하나로 결정되지 않는다.
차등폭이 기업의 투자 판단에 실제 영향을 미칠 만큼 충분한지, 지역별 요금 산정기준이 객관적인지, 송전·배전 비용과 계통혼잡을 제대로 반영하는지, 그리고 기업이 장기간 투자계획을 세울 수 있을 만큼 요금체계가 안정적이고 예측 가능한지가 함께 검증돼야 한다.
특히 정부가 연내 제도 도입을 추진하는 만큼 향후 논의에서는 지역 구분과 차등폭뿐 아니라 전력자립률·송전거리·계통비용·접속여유용량 등 객관적 지표를 어떻게 조합할 것인지가 핵심 쟁점이 될 가능성이 높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정책 효과를 사후적으로 검증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하는 것이다. 지역차등제 시행 이후 지방의 신규 공장과 데이터센터 투자가 얼마나 늘었는지, 수도권 전력수요가 실제로 분산됐는지, 기업의 전력비 절감이 고용과 생산 확대라는 지역경제 효과로 이어졌는지를 지속적으로 평가해야 한다.
산업용 지역별 전기요금제가 단순히 지방 기업의 전기료를 낮추는 제도로 끝난다면 또 하나의 보조정책에 그칠 수 있다. 반대로 전력 생산지와 소비지 간 비용 차이를 가격에 반영하고, 기업이 그 가격신호를 바탕으로 신규 투자의 입지를 선택하도록 만든다면 전력망과 산업입지를 함께 바꾸는 정책수단이 될 수 있다.
결국 이번 제도의 진짜 시험대는 기업이 실제로 움직일 만큼 명확하고 지속적인 가격신호를 만들 수 있느냐, 그리고 그 과정에서 지역 간 형평성과 한전의 재무건전성까지 동시에 확보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는 분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