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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데이터센터 냉각 경쟁의 무대가 바뀐다
데이터센터 냉각 경쟁의 무대가 바뀐다 / AI 이미지
[투데이에너지 임자성 기자] 지난 1년 새 데이터센터 업계에서 가장 자주 오르내린 단어는 '냉각'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AI가 만들어내는 열의 양이 기존 서버와는 차원이 다르기 때문이다. 과거 클라우드 서버 랙은 6~15kW를 소비했지만, 엔비디아 블랙웰(Blackwell) 플랫폼 기반 GB200 NVL72 랙은 120~130kW를 쓴다 — 기존 대비 최소 16배 폭증한 수치다. 공기라는 열매체의 낮은 열용량으로는 45kW 이상의 국소 발열을 감당하기 어렵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세계 데이터센터 전력 소비가 2024년 415TWh에서 2030년 945TWh로, 세계 전력 소비 증가율의 4배가 넘는 속도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한다. 몇 년 전까지 '조용한 인프라'였던 데이터센터 냉각이 이처럼 뜨거운 화두로 떠오른 이유다.
고밀도 AI 랙, 해법은 DLC로 수렴
데이터센터 냉각은 크게 △공랭식 △증발식·하이브리드 △직접액체냉각(DLC) △액침냉각(Immersion) 네 갈래로 나뉜다. 공랭식은 45kW 이상에서 한계를 드러내고, 증발식·하이브리드는 한국처럼 고온다습한 여름철엔 효과가 제한된다.
DLC는 반도체에 콜드플레이트를 밀착시켜 냉각액을 순환시키는 방식으로, 기존 공랭식 건물 구조를 유지한 채 도입할 수 있는 높은 이식성 덕분에 엔비디아가 고전력 GPU의 필수 권고 사양으로 채택했다. 액침냉각은 가장 높은 효율을 내지만 유지보수·보증 정책 문제로 상용화가 더디다.
각 방식의 세부 비교는 아래 표와 같다.
여러 시장조사기관이 대체로 비슷한 그림을 그린다.
Mordor Intelligence는 2025년 기준 DLC가 전체 액체냉각 시장의 40%대 이상을 차지한다고 집계했고, Dell'Oro Group·Grand View Research 등도 DLC를 "2026년 신규 구축의 기본 아키텍처"로 지목한다. 다만 '액체냉각 시장'을 어디까지로 보느냐에 따라 조사기관별 수치는 차이가 있어, 정확한 비중보다는 방향성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무게중심이 액체냉각, 그중에서도 DLC로 뚜렷이 기울었다는 뜻이다.
다만 이 흐름이 영구적으로 고정된 결론은 아니다. 다음 세대 GPU의 발열량이 지금의 단상(單相) DLC로 감당하기 어려워지면, 이상(二相·Two-phase) 냉각이나 액침냉각(CAGR 26.62%로 가장 빠르게 성장 중)으로 무게추가 다시 옮겨갈 여지가 남아 있다. 즉 "이미 다 끝난 승부"가 아니라 "당분간은 DLC가 기본값"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더 정확하다.
다음 승부처는 '통합'
DLC가 표준이 된다고 해서 끝이 아니다.
실제 랙 하나를 식히려면 GPU 열원부터 콜드플레이트·매니폴드·CDU·칠러·열교환기·펌프, 전력·제어, DCIM까지 아홉 개 가까운 층위를 하나의 시스템으로 최적화해야 한다. 부품 하나가 아무리 정교해도 나머지 층위와 어긋나면 전체 냉각 성능이 떨어진다. 따라서 고밀도 데이터센터가 늘수록 개별 장비의 성능뿐 아니라 시스템 간 호환성과 통합 검증 능력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고, 이에 따라 냉각·전력·제어를 함께 제공할 수 있는 통합형 사업자의 경쟁력이 커지는 추세다.
데이터센터 냉각 시장 추정치가 조사기관마다 크게 갈리는 것도 이 때문이다 — 냉각탑·칠러 같은 전통 대형 인프라까지 넓게 잡을수록, 혹은 CDU·콜드플레이트 같은 특수 기자재로 좁혀 잡을수록 성장률과 규모가 달라진다. 결국 이 시장에서 유리한 위치는 특정 부품 하나를 잘 만드는 회사가 아니라, 이처럼 여러 층위를 검증된 하나의 시스템으로 묶어낼 수 있는 회사다.
시장이 보여주는 방향, 버티브
이걸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가 버티브(Vertiv)다.
Dell'Oro Group에 따르면 버티브는 데이터센터 액체냉각 시장의 실질적 선두 기업이다. 버티브가 주목받는 이유는 단순히 액체냉각 기술을 보유해서가 아니다. 칠러·CDU·콜드플레이트에서 UPS·랙까지 데이터센터의 열과 전력을 하나의 시스템으로 묶어 원스톱으로 공급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필요한 조각만 정밀하게 사들이는 M&A(2026년 4월 콜드플레이트 전문기업 Strategic Thermal Labs 인수 등), 엔비디아와의 밀착 파트너십을 통한 시장 영향력 확대, 그리고 계약을 먼저 확보하고 짓는 방식(수주잔고 150억 달러, 전년 대비 +109%)이 더해진다.
그 결과 2026년 1분기 매출은 전년 대비 30% 성장했고 가이던스는 두 차례 상향됐다.
다른 길로 같은 목적지를 향하는 삼성·LG
국내 기업들도 이미 같은 방향을 겨냥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M&A를 통해 접근한다. 2025년 11월 유럽 최대 공조기기 업체 독일 플랙트그룹(FläktGroup)을 15억 유로(약 2조 4,800억 원)에 인수해 중앙공조 기술을 확보했고, 이를 통해 가정·상업용 개별공조 중심에서 데이터센터·대형 상업시설까지 아우르는 종합 HVAC 역량 확대를 노린다.
LG전자는 자체 개발을 통해 같은 목적지를 겨냥한다. 2026년 7월, LG전자는 600킬로와트(kW)급 냉각수분배장치(CDU)로 엔비디아의 품질 인증을 획득했다고 밝혔다. 고밀도 AI 서버의 GPU·CPU에 장착된 콜드플레이트로 냉각수를 순환시켜 열을 회수하는 DTC(Direct-to-Chip) 방식이며, 정밀 온도 제어와 장애 대비 운전 신뢰성까지 검증받았다. 이를 시작으로 1MW·2.5MW·4MW급 대용량 라인업의 인증도 순차적으로 추진하고, 칠러부터 CDU·콜드플레이트까지 아우르는 '칩 투 칠러(Chip to Chiller)' 토털 솔루션으로 포트폴리오를 넓히겠다는 계획이다.
레퍼런스도 뒤따르고 있다.
LG전자는 원자력 발전소·대형 병원 등에서 쌓은 60년간의 냉난방공조(HVAC) 경험을 내세운다. 여기에 LG CNS의 AI 데이터센터 프로젝트에 CDU 공급을 추진하고 있으며, 북미 하이퍼스케일러·인도네시아 시나르마스 데이터센터 등 해외 대형 데이터센터에도 이미 냉각 솔루션을 공급했다고 밝혔다. LG전자 ES사업본부장 이재성 사장은 자체 냉각 기술과 그룹 통합 인프라 역량을 결집해 데이터센터 분야의 토털 솔루션 사업자로 시장을 선도하겠다는 목표를 밝혔는데, 이 역시 통합형 경쟁의 문법과 맞아떨어진다.
다만 여기까지의 흐름을 통합형의 완승으로 단정할 일은 아니다.
운영사업자에 따라서는 특정 부품의 성능·가격·유지보수 체계를 따져 전문업체를 조합하는 방식을 여전히 선택할 수 있다. 앞서 짚었듯 액침·이상 냉각이 차세대 GPU에서 경쟁력을 확보하면 DLC 중심의 시장구도, 그리고 그 위에 세워진 통합형 우위론도 다시 흔들릴 수 있다.
한국의 과제는 규모·레퍼런스·표준
그럼에도 시장의 방향 자체가 뚜렷하다는 사실은 한국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정부는 지난 6월 '대한민국 대도약 3대 메가프로젝트'로 AI 데이터센터를 반도체·피지컬 AI와 함께 3대 축에 포함시켰다. SK·GS·네이버가 1단계 8.4GW를 구축하고 SK가 이후 4GW를 추가해, 2035년까지 총 18.4GW 규모를 조성한다는 계획으로, 대형 원전 여러 기 분량의 전력이 필요하다.
분산에너지 활성화 특별법으로 수도권 신규 데이터센터의 전력 공급이 제약되면서 사업자들은 지방으로 입지를 옮기고 있는데, 한국의 고온다습한 여름 기후는 증발식 냉각의 효율을 떨어뜨리는 조건이라 해외 표준을 그대로 들여오는 것이 반드시 최적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방향 자체는 삼성·LG 모두 맞게 잡았다. 남은 과제는 크게 세 가지로 좁혀진다.
첫째, 제품에서 시스템으로 — CDU나 칠러 하나를 잘 만드는 데서 멈추지 않고, LG전자의 '칩 투 칠러'처럼 콜드플레이트부터 전력·제어까지 하나의 검증된 패키지로 묶어야 한다.
둘째, 납품에서 레퍼런스로 — 이번 엔비디아 인증에 더해 LG전자가 이미 확보한 북미 하이퍼스케일러·인도네시아 데이터센터 공급 실적처럼, 국내 대형 프로젝트를 넘어 해외 현장에서의 실제 가동 사례를 쌓아야 버티브 수준의 수주잔고 경쟁에 뛰어들 수 있다.
셋째, 장비에서 표준으로 — 한국의 기후·전력망 조건에 맞는 냉각 설계·성능 기준을 국내 업계가 스스로 정의해야, 해외 표준에 종속되지 않고 이 시장에서 협상력을 가질 수 있다.
향후 10년, 냉각산업의 분기점
이 시장의 경쟁은 더 이상 "공랭이냐 액체냐"가 아니다.
액체냉각을 얼마나 안정적으로 구현하고, 이를 전력·열관리·제어 시스템 전체로 묶어낼 수 있느냐로 무대가 옮겨가고 있다. 버티브가 그 무대에서 이미 규모(150억 달러 백로그)와 엔비디아와의 파트너십을 앞세워 영향력을 넓히고 있다면, 삼성전자와 LG전자는 각자의 방식으로 같은 무대에 올라서는 단계다.
그래서 앞서 짚은 세 가지 숙제는 순서상 나열된 과제가 아니라 서로를 밀어주는 하나의 고리에 가깝다. 레퍼런스가 쌓여야 규모 있는 수주가 따라오고, 그 규모가 있어야 국내 기후·전력망에 맞는 표준을 밀어붙일 협상력이 생긴다.
LG전자의 이번 인증과 해외 데이터센터 레퍼런스 확보는 국내 기업이 이 경쟁에 본격적으로 진입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결국 이 고리를 얼마나 빨리 이어내느냐가, 앞으로 10년 한국 냉각·공조 산업이 이 시장에서 하청업체로 남을지, 표준을 쥔 플레이어로 올라설지를 가를 것이다.
[용어설명]
DLC(직접액체냉각): 반도체 칩에 냉각액을 직접 순환시켜 열을 식히는 방식
콜드플레이트: 칩 표면에 밀착해 냉각액과 열을 교환하는 금속판
CDU(냉각수분배장치): 냉각액을 각 서버·랙에 정확히 분배·순환시키는 장비
칠러: 건물 전체에 공급할 냉각수를 만드는 대형 냉각장비
매니폴드: 냉각액을 여러 배관으로 나눠주는 분배관
액침냉각: 서버 전체를 비전도성 액체에 담가 식히는 방식
DCIM: 데이터센터의 전력·냉각·설비를 통합 관제하는 시스템
백로그: 아직 이행하지 않았지만 이미 확정된 계약(수주) 물량
HVAC: 냉난방공조, 건물의 온도·환기를 조절하는 설비 전반
통합형(풀스택) 전략: 냉각부터 전력까지 여러 장비를 한 회사가 갖춰 원스톱으로 공급하는 전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