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S
업계뉴스
[탐방] 휴마스터 "냉방의 기준, 온도에서 습도로 바꾼다"
이대영 대표 / 휴마스터 제공
[투데이에너지 임자성 기자] 연일 이어지는 폭염과 열대야로 냉방기 앞을 떠나기 힘든 요즘, 유독 습한 날에는 에어컨을 세게 틀어도 눅눅한 기운이 가시지 않는다. 온도는 낮췄는데 왜 개운하지 않을까. 같은 기온이라도 습도가 높으면 체감온도가 오르고 결로·곰팡이로 이어지기 쉬운데, 일반적인 냉각·응축 방식으로는 온도와 습도를 개별적으로 제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온도와 습도를 따로 독립적으로 제어하는 기술을 개발해 온 기업이 있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에서 실내 공기질을 연구해 온 전문가들이 설립한 (주)휴마스터(대표 이대영)다.
발상의 전환, 온도 대신 습도
휴마스터의 대표 제품 '휴미컨(Humicon)'은 온도가 아니라 습도를 기준으로 실내 공기를 관리하는 히트펌프 하이브리드 데시컨트 제습공조기다. 일반 에어컨처럼 냉각장치로 온도를 낮추는 대신, 데시컨트 방식으로 습도를 낮춰 체감온도를 떨어뜨리고 그 재생 과정에서 리사이클링 기술로 전기에너지도 절감하는 구조다. 장마철처럼 기온은 크게 높지 않고 습도만 높은 날에 온도를 필요 이상으로 낮추지 않고 습기만 선택적으로 제거할 수 있는 이유다.
필터 리사이클링/휴마스터 홈페이지
습기 필터로 공기 중 습기를 걸러내고, 필터에 쌓인 습기는 열풍으로 말려 재생하는 방식이어서 필터 교체 없이 반복 사용할 수 있다. 회사 측에 따르면 이 방식으로 실내온도 26℃에서 온도 변화없이 습도를 40% 이하로 낮출 수 있어 과냉각 없이 눅눅함만 걷어낼 수 있으며, 10℃ 이하 저온에서도 제습이 가능하다. 일반 전기 제습기보다 140% 이상의 에너지효율을 나타내며, 습기뿐 아니라 암모니아·톨루엔 같은 가스성 오염물질까지 걸러내고 환기 성능도 갖춰, 제습·냉방·환기·공기청정을 하나의 기기로 구현한다.
실내 습도·온도·이산화탄소·미세먼지 상태를 실시간 확인하고 자동으로 최적 운전하는 스마트 모드도 갖췄다.
핵심은 '휴소브'다
데시컨트 방식 자체는 휴마스터만의 기술이 아니다. 공기 중 수분을 흡착제로 걸러내는 원리는 이미 산업용 제습 설비 등에서 널리 쓰여왔다. 휴마스터를 다른 데시컨트 기업과 구분 짓는 지점은 흡착제, 즉 소재를 자체 개발했다는 데 있다. 그 결과물이 초흡습성 고분자 소재 '휴소브(HuSorb, Super Desiccant Polymer)'다.
실리카겔 같은 기존 무기질 흡착제보다 5배 이상 강하게 습기를 잡아내고, 흡착한 습기를 다시 털어내는 재생 온도도 50℃ 이하로 낮다는 것이 특징이다. 기존 소재는 재생에 150℃ 이상의 고온 열풍이 필요한 반면, 휴소브는 에어컨 실외기에서 버려지는 폐열만으로도 재생이 가능해 별도의 고온 열원 없이 습기를 반복해서 제거할 수 있다.
10만 사이클 이상 반복해도 성능 저하가 거의 없어 필터 교체도 필요 없다. 흡착제 자체를 설계할 수 있다는 점이야말로 휴마스터가 자부하는 핵심 기술력이다. 이온화된 고분자가 냄새 분자까지 끌어당겨 탈취율은 암모니아 99.8%, 트리메틸아민 99.6%에 달하고, 항균·항곰팡이 시험에서도 최우수 등급을 받았다. 관련 특허 출원도 150여건에 이른다.
실증으로 확인된 성능
이 기술이 실제로 어느 정도 성능을 내는지는 휴마스터가 공개한 실증 데이터로 가늠해볼 수 있다. 서울시가 산하 공공기관 18개소를 테스트베드로 제공한 실증사업에서 8개월간 휴미컨을 운전한 결과 냉방에너지가 30~60% 절감되고 실내 미세먼지도 50% 이상 개선된 것으로 확인됐다.
휴미컨 설치 사진 / 휴마스터 제공
더 구체적인 사례는 국립고궁박물관 수장고다. 휴미컨 3대를 설치해 기존 공조기와 통합 운영한 결과 전력 사용량을 49.2% 절감했다. 문화재 보존을 위해 휴마스터가 별도로 개발한 박물관·전시시설용 습도조절시트 '휴시트'도 이런 수요에서 나왔다. 문화재를 보관하는 공간은 온습도 변화에 특히 민감한 만큼, 이 사례는 휴미컨의 실제 성능을 보여주는 유의미한 근거로 볼 수 있다.
기술 개발에서 사업 확대까지
이 소재는 하루아침에 나온 결과물이 아니다. 2010년 국내·미국 특허 등록을 시작으로 대통령표창과 특허청 특허기술상, 국제냉동기구 논문상('Analytical modeling of a desiccant wheel')을 받았고, 이를 바탕으로 2018년 법인 및 기업부설연구소를 설립했다.
이후 2017년 신기술·녹색기술 인증을 시작으로 제품화했고, 2020년에는 제1공장을 세우고 ISO 9001·14001과 우수성능 인증을 받으며 생산체계를 갖췄다. 2021년에는 신제품 인증과 시리즈A 투자유치를 거쳐, 이듬해인 2022년 정부조달우수제품 지정과 아기유니콘 선정으로 이어졌다. 한샘과 현대기아차 협력사에도 제품을 납품했고, 2023년 소부장 전문기업 인증을 받았으며, 2025년에는 중소벤처기업부 초격차 스타트업 1000+ 프로젝트에 선정됐다.
특허·기술 개발이 정부 인증과 실증을 거쳐 사업 확장으로 이어지는 흐름을 밟아온 셈이다. 이렇게 쌓은 기술은 현재 생활환경(휴미컨·휴스팟)·산업환경(휴제로·휴에어)·소재부품(휴시트·휴네트) 세 축의 사업으로 이어지고 있다.
건축물에서 산업 현장까지
적용처는 크게 세 갈래로 넓어지고 있다.
제로에너지건축물(ZEB)이나 패시브하우스처럼 기밀·단열성능을 높인 건물, 습하고 곰팡내 나기 쉬운 지하공간 같은 건축물 영역이 첫째다.
박물관·문서고처럼 습기에 약한 자산을 보관하는 시설, 세균·곰팡이 증식이 우려되는 수술실 등 감염 관리가 중요한 병원·요양원, 강서양천교육지원청·연희노인복지회관 같은 교육·복지시설 등 공공·보관시설이 둘째다.
반도체·배터리 등 정밀 생산공정과 콜드체인·저온창고 같은 산업시설이 셋째로, 저온 환경에서 발생하기 쉬운 결로·성에가 보관 품질을 해치는 현장인 만큼 경쟁 제품 대비 60% 뛰어난 에너지 효율을 앞세운 전용 제품 '휴제로'가 쓰인다.
정부가 탄소중립 정책의 일환으로 신축 건물의 에너지 효율 기준을 강화하고 있어 첫째 영역인 고기밀 건물은 앞으로 더 늘어날 전망이고, 전반적으로는 주거·건축에서 검증한 뒤 공공·산업으로 넓혀가는 경로를 밟고 있는 셈이다.
이런 흐름은 국내를 넘어 해외로도 이어진다. 2025년 휴마스터는 태국 정부로부터 FBL(외국인사업허가)을 획득했다. 아직 본격적인 해외 매출 실적으로 이어졌다고 보기는 이르지만, 고온다습한 동남아시아 시장을 겨냥한 발판을 마련했다는 의미가 있다.
"과냉각 줄이고 쾌적함은 높이는 게 목표"
이대영 대표는 "우리나라 여름은 기온만큼 습도의 영향이 크기 때문에 에어컨 설정온도를 계속 낮추는 방식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며 "온도와 습도를 필요한 만큼 나눠 제어하면 불필요한 과냉각을 줄이면서도 쾌적한 실내환경을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휴마스터가 집중해 온 분야는 단순히 습도를 낮추는 제습기가 아니라, 건물과 산업현장에서 습도와 실내공기질을 함께 관리하는 공조 기술"이라며 "고분자 데시컨트 소재 기술을 바탕으로 적용 분야를 꾸준히 넓혀가겠다"고 밝혔다.
결국 휴마스터가 만들고 있는 것은 단순한 제습기가 아니다. 냉방 부하 중 온도(현열)와 습도(잠열)를 하나의 장치로 뭉뚱그려 처리해온 기존 방식을, 흡착 소재로 습도를 따로 떼어내 처리하는 구조로 바꾸려는 시도, 즉 냉방의 패러다임 자체를 바꾸려는 시도에 가깝다.
처음 던졌던 질문으로 돌아가 보면, 답은 결국 온도가 아니라 습도를 제어하는 고효율 공조에 있는 셈이다.
[용어설명]
데시컨트(Desiccant) : 공기 중 수분을 흡착해 제거하는 건조제·흡습제.
휴소브(HuSorb) : 휴마스터가 개발한 초흡습성 고분자 소재(Super Desiccant Polymer, SDP).
현열·잠열 : 냉방 부하를 이루는 두 요소. 현열은 온도를 낮추는 데 드는 에너지, 잠열은 공기 중 습기를 제거하는 데 드는 에너지를 말한다.
ZEB(제로에너지건축물) : 단열·기밀 성능을 극대화해 에너지 소비를 최소화한 건축물.
FBL(Foreign Business License) : 태국에서 외국 기업이 현지 사업을 하기 위해 취득해야 하는 외국인사업허가.
NET·NEP인증 : 산업통상자원부가 국내 개발 신기술(New Excellent Technology)과 신제품(New Excellent Product)의 성능·혁신성을 공식 인증하는 제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