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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커스] 전력망서 데이터센터까지, ESS 확대 어디까지 왔나
AI 데이터센터 전력수요가 폭증하며 ESS 역할이 커진다. / AI 생성이미지
[투데이에너지 김원빈 기자]
전기 먹는 하마, AI 데이터센터
인공지능(AI)이 산업 전반의 화두로 떠오르면서, 전력망의 셈법도 다시 짜이고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지난 4월 발간한 보고서에서 전 세계 데이터센터 전력 소비량이 2025년 약 485테라와트시(TWh)에서 2030년 약 950TWh로 두 배 가까이 불어날 것으로 내다봤다. 시장조사업체 가트너 역시 2026년 전 세계 데이터센터 전력 소비가 565TWh로 전년 대비 26%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AI 연산에 특화된 서버가 데이터센터 전체 전력 소비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올해 31%까지 커질 것으로 관측되며, 2027년에는 AI 서버의 전력 소비가 일반 서버를 앞지를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국내 상황도 다르지 않다. 2024년 8월부터 지난해 6월 사이 접수된 데이터센터 목적 전기사용 신청 가운데 67%가 수도권에 집중된 것으로 파악됐다. 문제는 이 지역 전력망이 이미 포화 상태에 가깝다는 점이다.
정부가 올해부터 10메가와트(MW) 이상 대규모 시설에 대한 전력계통영향평가 기준을 강화하기로 하면서, 수도권 등 계통이 포화된 지역으로 신규 데이터센터가 진입하는 길은 사실상 더 좁아질 전망이다.
이런 흐름 속에서 에너지저장장치(ESS)가 전력망 확충의 ‘지름길’로 주목받고 있다. 송전선로나 변전소를 새로 짓는 대신, 남는 전력을 저장했다가 필요할 때 공급하는 ESS로 계통 여유 용량을 확보하겠다는 것이다.
정부와 배터리 업계 모두 ESS를 매개로 전력망·재생에너지·데이터센터라는 세 개의 축을 연결하는 그림을 그리고 있다.
정부, ESS를 전력망 혁신의 축으로
해남화원 BESS 사업장 조감도 /한국중부발전 제공
정부의 ESS 확대 정책은 크게 세 갈래로 진행되고 있다.
첫째는 발전 단위의 장주기 ESS를 확보하는 ‘ESS 중앙계약시장’이다. 전력거래소가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따른 신재생에너지 확대 물량을 뒷받침하기 위해 매년 필요 물량을 입찰에 부치는 방식으로, 2026년부터 2029년까지 연간 0.5기가와트(GW) 내외의 ESS를 확보한다는 계획이다.
지난해 11월 제주 지역 65MW(260메가와트시·MWh) 규모로 시작된 이 시장은 올해 상반기 전국(육지) 500MW와 제주 40MW로 규모가 대폭 커졌고, 하반기에는 약 1조원 규모의 3차 입찰이 9월 중 시작될 것으로 예상된다.
1·2차 입찰 누적 점유율은 삼성SDI 55.8%, SK온 25.1%, LG에너지솔루션 19% 순으로, 3차 입찰에서는 LG에너지솔루션의 반격 여부가 관전 포인트로 꼽힌다.
둘째는 배전망 단위의 분산형 ESS다. 기후에너지환경부는 최근 ‘2026년 AI 활용 ESS 구축지원 사업’과 ‘2026년 공유형 ESS 사업’을 공고했다.
재생에너지 수용 용량이 포화 상태인 배전선로에 ESS를 설치해 잉여 전력을 흡수하고, 그만큼 재생에너지를 추가로 접속시키는 방식이다.
지난달 10일 발표된 사업자 선정 결과, 전국 32개 선로에 총 128MW 규모의 ESS가 설치되며, 이를 통해 태양광 설비용량 약 182.4MW가 새로 전력망에 연결될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는 2030년까지 700MW 규모의 배전망 ESS를 보급해 재생에너지 1GW를 추가로 수용한다는 목표를 세워뒀다. 관련 예산은 올해부터 5년간 국비 5586억원 규모다.
셋째는 제도적 기반 정비다. 분산에너지 활성화 특별법 시행과 함께 전력시장 직접구매 제도가 확대되고, 실시간 시장과 보조서비스 시장 도입도 추진되고 있다.
한전 중심의 단일 공급 체계에서 경쟁과 선택권이 공존하는 구조로 재편되는 흐름 속에서, ESS는 장기 고정가격계약이라는 안정적 수익모델을 제공하며 민간 투자를 끌어들이는 마중물 역할을 하고 있다는 평가다.
핀란드에 있는 구글 데이터센터에 설치된 윌로펌프 제품/윌로펌프 제공
AIDC(인공지능 데이터센터) 특별법, 규제는 풀었지만 전력은 남은 숙제
데이터센터 인허가 지연 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법적 기반도 마련됐다. 지난 5월 7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인공지능 데이터센터 산업 진흥에 관한 특별법’(AIDC 특별법)은 6월 9일 공포돼 9개월의 유예기간을 거쳐 내년 3월 시행을 앞두고 있다.
핵심은 비수도권에 AIDC를 신축·증축할 경우 분산에너지 활성화 특별법상 전력계통영향평가를 면제하고, 여러 인허가를 한 번에 신청해 처리 기한 내 미거부 시 처리 완료로 간주하는 ‘타임아웃제’를 도입한 것이다.
다만 법안 심사 과정에서 비수도권 AIDC에 LNG 발전 전력직접구매계약(PPA) 특례를 부여하는 조항은 최종적으로 빠졌다. 기후에너지환경부가 LNG를 PPA 대상에 포함할 경우 수도권에 집중된 LNG 발전소와 비수도권 AIDC 간 계약이 늘어나 전력계통 운영 부담이 커지고, 지역 내 생산·소비 원칙에도 어긋난다는 입장을 낸 영향이 컸다.
여기에 데이터센터 건립 여부를 좌우하는 전력계통영향평가 제도 자체가 법정 고시 없이 2년째 시범운영 형태로 운용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규제는 완화됐지만 전력 공급이라는 근본 문제는 여전히 별도의 숙제로 남아 있는 셈이다.
이런 공백을 메우는 임시 해법으로 주목받는 것이 온사이트(on-site) 발전·저장이다. IEA에 따르면 미국에서는 계통 연결 지연에 대응해 자체 천연가스 발전을 추진하는 데이터센터 프로젝트가 늘고 있으며, 2030년까지 15~27GW 규모의 온사이트 가스 발전이 새로 설치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장기적으로는 소형모듈원자로(SMR)가 유력한 대안으로 꼽히는데, 글로벌 SMR 오프테이크 계약 규모는 2024년 말 25GW에서 올해 45GW로 급증했다.
배터리 3사 (왼쪽부터) SK온 SK배터리아메리카(SKBA) 전경, LG에너지솔루션전력망용 ESS, 삼섬SDI 본사
배터리 3사, ESS로 방향 전환
전기차 수요 둔화와 중국 업체와의 경쟁 심화로 어려움을 겪던 국내 배터리 3사에게 ESS는 실적을 지탱하는 버팀목이 되고 있다.
지난 2분기 LG에너지솔루션은 매출 7조5602억원에 영업이익 1133억원, 삼성SDI는 매출 3조7688억원에 영업이익 2038억원, SK온은 배터리 사업 기준 매출 2조9460억원에 영업이익 8218억원을 기록했다. 3사 모두 실적 개선의 배경으로 ESS 사업 성장을 꼽았다.
LG에너지솔루션은 지난해 말 기준 북미에서 약 140GWh 규모의 ESS 수주 잔고를 확보한 상태이며, 연말까지 50GWh 이상의 ESS용 배터리 생산능력을 갖추겠다고 밝혔다.
최근에는 미국 DTE에너지와 6GWh 규모, 약 16억달러(약 2조4000억원) 상당의 ESS 배터리 공급 계약을 체결했는데, 이 물량은 오라클의 AI 데이터센터 프로젝트를 포함한 전력망 구축 사업에 투입된다.
삼성SDI도 미국 에너지 기업과 약 1조5000억원 규모의 ESS 공급 계약을 맺었으며, 인디애나주 스타플러스에너지(SPE) 1공장 4개 라인 중 3개를 ESS 전용으로 전환하고 있다.
ESS 사업에 가장 늦게 뛰어든 SK온은 서산에 국내 최대 규모(3GWh)의 ESS용 리튬인산철(LFP) 배터리 공장을 마련하고, 최근 미국 ‘클린파워 2026’에서 ESS 전용 브랜드 ‘그리드온’을 공개하며 올해 20GWh 이상 수주를 목표로 내걸었다.
국내 배전망 ESS 구축지원 사업에서는 3사의 희비가 엇갈렸다. 지난달 발표된 사업자 선정 결과, 전체 32개 선로 중 66%인 21개 선로에 삼성SDI 배터리가 채택되며 공급 물량 기준 최대 성과를 거뒀다.
반면 LG에너지솔루션은 배터리 공급뿐 아니라 국내 배터리셀 3사 중 유일하게 가상발전소(VPP) 운영 사업자 자격을 확보하며 의미를 부여했다.
2024년 제주 서귀포에 배전망 연계형 ESS 발전소를 세우고 운영 경험을 쌓아온 것이 성과로 이어졌다는 평가다. SK온은 한국중부발전, 그리드위즈 등과 손잡고 4개 배전선로에 LFP 파우치 셀 기반 ESS 컨테이너 ‘그리드온’을 공급한다.
남은 과제들
시장이 커지는 만큼 잡음도 나온다. 하반기 3차 ESS 중앙계약시장 입찰을 앞두고 LG에너지솔루션·삼성SDI·SK온 등 배터리 3사는 최근 기후에너지환경부·산업통상부·전력거래소에 입찰 평가 구조 개선을 건의했다.
가격 위주 경쟁보다 국내 생산·산업 기여도를 균형 있게 반영해야 한다는 취지다. 업계에서는 삼원계와 LFP 배터리를 혼합 적용할 수 있도록 평가 기준을 손봐 달라는 의견도 냈지만, 전력거래소는 기준 설정의 어려움을 이유로 난색을 표한 것으로 전해졌다.
가격 하한선 설정 역시 경쟁입찰을 통해 비용 효율적인 ESS를 확보한다는 시장 설계 취지와 맞지 않아 도입이 쉽지 않다는 게 업계 중론이다.
제12차 차세대전력망 포럼 패널 토의(왼쪽부터 조영탁 위원장, 주성관 교수, 조홍종 교수, 박종배 교수, 한전 황성욱 차장, 에기평 김창선 PD, LS일렉트릭 류재섭 매니저, 에너지공단 강봉석 팀장) /한국스마트그리드협회 제공
전력망 확충 자체를 둘러싼 갈등 관리도 과제로 남아 있다. 정부는 전력망위원회 내에 ‘전력망 건설 갈등 관리 전문 소위’를 신설했고, 한국전력공사도 건설 전 단계부터 주민 소통 프로세스를 운영하겠다고 밝혔다.
인버터 성능 개선 지원, 송배전용 전기설비 이용규정 개정 등 계통 안정화를 위한 세부 조치도 함께 진행되고 있다.
결국 관건은 속도다. AI 데이터센터의 전력 수요는 이미 수직 상승 곡선을 그리고 있는데, 전력망 투자와 제도 정비는 인허가·평가·건설이라는 물리적 시간을 요구한다.
ESS는 이 시차를 메울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수단으로 꼽히지만, 중앙계약시장과 배전망 사업, AIDC 특별법이 각기 다른 부처와 일정으로 굴러가는 만큼 정책 간 정합성을 어떻게 맞추느냐가 향후 확산 속도를 좌우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