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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이승재 한국에너지기술평가원 원장
이승재 한국에너지기술평가원 원장 / 에기평 제공
[투데이에너지 임자성 기자]
이 인터뷰는 투데이에너지 창간 28주년을 맞아 한국에너지기술평가원 이승재 원장과 서면으로 진행했다. 탄소 중립과 AI 산업 확산이 동시에 진행되는 지금, 에너지효율 R&D가 나아갈 방향과 산업계에 던지는 메시지를 담았다. / [편집자주]
탄소 중립은 에너지 소비를 줄일 것을 요구하는 반면, AI 확산은 전력수요를 빠르게 늘리고 있다. 상반돼 보이는 이 두 요구를 동시에 풀어낼 해법은 무엇일까. 이승재 한국에너지기술평가원(이하 에기평) 원장은 그 해법의 핵심으로 '에너지효율'을 제시한다. 그는 이를 위해 소재·부품에서 기기·설비, 시스템·운영에 이르는 기술 전반의 경쟁력을 확보하고, 제도·사업화와의 연계를 강화하는 한편 궁극적으로는 산업계의 인식 전환까지 이어져야 한다고 말한다.
상반된 흐름, 접점은 효율이다.
이 원장은 지금의 에너지 환경을 "서로 상반돼 보이는 두 흐름이 동시에 진행되는" 국면으로 진단했다. 국제사회도 이 문제의 무게를 인식하고 있다. COP28에서 우리나라를 포함한 130개국은 2030년까지 세계 에너지효율 개선 속도를 두 배로 높이기로 약속했고, 지난해 COP30 결정문에서도 각국의 기여를 재차 촉구했다. 정부가 제7차 에너지이용 합리화 기본계획에서 '최종에너지 소비량 감소 국가로의 전환'을 목표로 제시한 것도 같은 인식의 연장선이다.
이러한 판단을 바탕으로 에기평이 세운 R&D 정책 방향은 크게 세 갈래다. △AI 데이터센터처럼 전력수요가 급증하는 분야의 효율 혁신 △에너지 소비의 큰 비중을 차지하는 열의 고효율화와 전기화 △개발된 기술이 시장 성과로 이어지도록 하는 제도·사업화 연계다. 이 원장은 "효율 기술은 산업의 에너지 비용을 낮춰 제조업 전반의 원가 경쟁력을 높이는 동시에 그 자체로 새로운 수출 산업이 될 수 있다"며, 소재·부품에서 기기·설비, 시스템·운영에 이르는 기술 전반의 경쟁력 확보가 에너지효율 R&D가 국가 산업경쟁력에 기여하는 핵심 경로라고 밝혔다.
소재·부품이 곧 경쟁력이다.
이 세 갈래 전략을 현실에서 구현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이 원장은 그 답을 기술의 단계별 경쟁 조건에서 찾는다. 그는 소수 품목을 지목하기보다 "소재·부품에서 기기·설비, 시스템·운영으로 이어지는 단계마다 무엇이 경쟁력을 좌우하는지를 짚는 편이 유효하다"고 말했다.
우선 소재·부품 경쟁력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 분석에 따르면 히트펌프는 부품이 생산원가의 60~85%를 차지하고, 압축기 하나만으로도 약 30%에 이른다. 완제품의 가격과 성능 경쟁력이 결국 핵심 부품에 크게 좌우된다는 의미다. 고효율 전동기용 영구자석은 세계 생산의 약 95%, 원료인 희토류 정제는 약 90%가 특정 국가에 집중돼 있어, 아무리 높은 효율의 기기를 개발하더라도 핵심 소재와 부품을 안정적으로 확보하지 못하면 가격과 공급 양면에서 경쟁력을 갖기 어렵다는 게 이 원장의 설명이다. 그는 이에 따라 핵심 소재·부품의 대체 기술과 국산화, 공급망 다변화를 위한 기술 확보가 우선적으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기기·설비의 현지 적용 경쟁력이다. 이 단계에서는 최고 효율이나 성능 수치를 달성하는 것만으로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하기 어렵다. 지역마다 기후와 건축환경이 달라 요구되는 제품의 형태와 성능이 다르고, 기술기준과 표준, 소비자 선호에도 차이가 있어 각 시장의 여건에 최적화된 제품이 경쟁력을 갖는다는 것이다. 펌프나 송풍기 역시 국가별로 효율평가 지표와 기준이 서로 달라, 현지화·최적화 기술이 핵심 경쟁력이 될 것이라는 설명이다.
마지막은 시스템·운영 기술이다. 개별 기기의 고효율화를 넘어, 건물과 공장 전체를 하나의 에너지 시스템으로 보고 최적으로 관리·운영하는 역량이 중요해진다는 진단이다. AI 기반 에너지관리시스템이 운전 데이터를 진단·예측·제어하는 방향으로 고도화되는 만큼, 양질의 운전 데이터를 확보·활용하는 역량이 핵심 경쟁력이 된다. 축적된 데이터가 시스템 성능을 높이고, 검증된 운영 실적이 해외시장 진출과 후속 수주의 기반이 되기 때문이라는 게 이 원장의 설명이다.
AI 데이터센터, 냉각과 전력변환의 승부
전력수요 급증 분야의 대표 사례가 AI 데이터센터다. 맥킨지 보고서에 따르면 세계 데이터센터 수요는 2023년 60GW에서 2030년 171~219GW로 늘고, 이 중 약 70%를 AI 작업 데이터센터가 차지할 전망이다. 이 원장은 전력소비량뿐 아니라 전력 밀도의 변화도 함께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IEA에 따르면 AI 서버의 전력 밀도는 2020~2025년 11배 높아졌고 2027년까지 다시 네 배가 될 전망이며, AI 데이터센터 서버 랙 하나가 감당해야 할 열부하는 가스보일러 30대에 맞먹는다.
이 원장은 이에 따른 기술개발 과제로 냉각·전력변환·수요 유연화를 꼽았다. 첫째는 냉각이다. 공랭식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워진 발열을 처리하기 위해 직접액체냉각(DLC)과 액침냉각 등 액체냉각 방식이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둘째는 전력변환이다. 데이터센터는 24시간 가동돼 변환효율 개선이 곧바로 소비량 절감으로 이어지는 만큼, 최근에는 교류를 800V 직류로 바꿔 변환 단계 자체를 줄이려는 시도도 추진되고 있다. 셋째는 데이터센터를 부하가 아닌 수요 유연화 자원으로 보는 관점의 전환이다. 계통 부하가 집중되는 시간대에 냉각 설정을 조정하거나 AI 학습처럼 시점 조정이 가능한 연산을 부하가 낮은 시간대로 옮기는 방식으로, 서비스 품질을 해치지 않는 운영 기술의 개발이 뒤따라야 한다는 설명이다.
열을 전기로, 히트펌프의 과제
전력수요 대응 못지않게 중요한 과제가 열의 전기화다. 정부의 「히트펌프 보급 활성화 방안」에 따르면 에너지 소비의 48%가 열로 쓰이고, 열에너지에서 비롯되는 온실가스가 에너지 부문 배출량의 약 29%를 차지한다. 이 원장은 열 공급 방식을 전기 기반으로 전환하는 데 히트펌프를 비롯한 고효율 설비 기술이 중심에 놓인다고 밝혔다.
이 원장은 적용 부문에 따라 요구되는 방향도 다르다고 봤다. 산업 부문은 고온화·대용량화가 관건이며, 건물 부문은 전전화(全電化)의 핵심 수단으로서 기후와 건물 형태에 따른 성능 대응이 필요하다. 특히 국내는 사계절이 뚜렷해 특정 조건에서만 높은 성능을 내는 기술로는 충분치 않고, 고층·대단지 공동주택 환경에 맞는 대용량화와 수직 고저차 대응 기술이 함께 요구된다는 설명이다. 공통 과제로는 △친환경 냉매 △열저장(고밀도화·장주기화) △산업·데이터센터 폐열 등 미활용열 활용 △AI 기반 운영 기술 등 네 가지를 꼽았다. 이 원장은 "열 설비는 정격 성능과 실제 운전 성능 사이에 차이가 큰 만큼, 부하와 운전 조건을 예측하고 여러 설비를 최적으로 조합·제어하는 AI 기반 운영 기술이 앞으로 더욱 중요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연구실에서 시장까지
좋은 기술도 시장에 안착하지 못하면 의미가 없다. 에기평은 2024년부터 「효율 관리제도 연계 R&D」 프로그램을 통해 제도 개선과 기술개발을 함께 추진하고 있다. 전동기·조명 등 기존 다소비 기기는 물론 콜드체인 같은 신규 품목까지 대상을 넓혀, 기업이 새 기준이 시행된 뒤 대응하는 대신 기준 시행에 앞서 이를 충족하는 제품을 개발해 시장에 내놓을 수 있도록 지원한다.
사업화 지원도 강화되고 있다. 올해부터는 종료 과제를 대상으로 기술사업화 전략 수립부터 수요 맞춤형 인증·실증까지 단계적으로 지원하는 '에너지기술 사업화 가속 사업'을 운영 중이며, 투자 IR 프로그램과 녹색인증 획득 지원도 병행하고 있다. 2027년부터는 예비창업기업부터 예비 유니콘까지 기업별 맞춤형 지원체계를 갖춘 신규 사업도 추진할 계획이다. 우수 기업을 발굴해 공기업과의 실증협업, 규제 특례제도, 글로벌 검·인증까지 전주기적으로 뒷받침하겠다는 구상이다.
인식의 전환이 먼저다.
끝으로 이 원장은 산업계의 인식 전환을 당부했다. 그는 "에너지효율은 오랫동안 비용을 줄이는 수단으로 인식돼 왔다"면서도, "효율을 단순한 절약의 관점에서만 바라보면 투자의 우선순위에서 밀리기 쉽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좋은 기술이 개발되고도 경제성이나 투자 부담을 이유로 도입이 늦어지는 사례를 여러 차례 봤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관점이 달라져야 한다는 게 그의 진단이다. 각국의 효율 기준 강화로 이를 충족하지 못한 제품은 시장진입 자체가 어려워지고 있고, 탄소 규제와 공급망 관리도 생산과정의 에너지 소비까지 평가하는 시대가 됐다. 효율이 비용 절감을 넘어 시장진입과 경쟁력 유지의 기본 조건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원장은 "우리나라가 보유한 제조 기반과 풍부한 산업현장 경험은 이러한 시장을 선점하는 데 중요한 자산"이라며, 기준이 바뀐 뒤 따라가기보다 시장과 제도의 변화를 앞서 읽고 기술을 선제적으로 확보하는 기업이 결국 앞서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에기평의 역할에 대해서는 "기업이 홀로 감당하기 어려운 초기 기술개발의 위험을 함께 나누고, R&D와 제도가 서로 연계되도록 하며, 개발된 기술이 실증과 사업화를 거쳐 시장에 안착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에너지효율은 화려하게 드러나는 기술은 아니지만, 그 기술과 경험의 축적이 산업의 비용구조를 바꾸고 새로운 시장을 여는 힘이 된다"며 "에기평은 우리 기업이 그 힘을 키워갈 수 있도록 끝까지 함께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