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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수소산업 주요 정책 변화와 과제
수소충전소 모습/대성에너지 제공
정책 변화 속 성장 단계 달라져
지원 중심 성장,이제는 한계 직면
예측 가능한 수준 정책 변경 필요
[투데이에너지 신일영 기자] 수소산업이 최근 잇따른 정책 변화로 새로운 국면에 들어섰다는 평가다. 특히 수소발전 입찰 규모 조정과 건물용 연료전지를 둘러싼 제도 개편 등이 이어지면서 산업계에서는 사업 환경 변화와 향후 정책 방향에 주목하고 있다. 최근 정부의 에너지 정책 기조는 태양광·풍력 등 재생에너지 확대에 정책적 무게를 두는 한편, 수소산업에 대해서는 기존 지원체계와 제도를 재검토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에 따라 수소 산업계에서는 정책 변화가 시장과 기업 투자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본지는 창간 28주년을 맞아 2000년 이후 국내 수소산업의 주요 정책과 흐름을 살펴보고 주요국 사례를 통해 수소산업이 지속 가능한 산업으로 자리 잡기 위해 필요한 해법을 짚어본다.(편집자 주)
보급 확대에서 청정수소·수요 창출로
2000년대 초반 수소는 화석연료를 대체하고 온실가스를 줄일 수 있는 미래 에너지원으로 주목받으며 정부의 연구개발 대상에 포함되기 시작했다. 이후 수소·연료전지 기술개발과 실증사 업이 확대되면서 수소는 연구개발 분야를 넘어 산업 육성 대상으로 범위를 넓혔다.
그러나 생산부터 저장·운송·활용까지 공급망과 시장이 충분히 형성되지 않아 민간의 대규모 투자를 유도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수소가 국가 산업정책의 전면에 등장한 것은 2019년이다.
정부는 2019년 1월 ‘수소경제 활성화 로드맵’을 발표하며 수소를 국가 차원의 성장동력으로 육성하겠다는 방향을 제시했다. 수소차와 충전소, 연료전지를 비롯해 생산·저장·운송 등 전주기 산업으로 정책 범위가 확대됐다.
2020년에는 세계 최초로 ‘수소경제 육성 및 수소 안전관리에 관한 법률’이 제정됐으며, 이 법은 2021년부터 시행되면서 수소경제위원회, 수소경제 이행 기본계획, 수소전문기업 등 산업 육성을 위한 제도적 기반이 마련됐다.
2021년에는 수소차와 충전소 등에 대한 지원이 확대되고, 주요 기업들의 투자계획이 잇따르 면서 수소산업의 이른바 ‘붐’이 형성됐다. 하지만 공급을 확대하는 것만으로는 산업 성장에 한계가 있었다. 수소 생산부터 활용까지 시장이 충분히 형성되지 않은 상황에서 높은 비용과 수요 부족 문제가 동시에 나타났기 때문이다.
2022년 이후 수소정책의 무게중심도 달라졌다. 기존 정책이 ‘수소를 많이 보급하자’에 초점을 맞췄다면 이때부터는 ‘그 수소를 어떻게 만들었느냐’가 중요한 기준으로 떠올랐다. 정부는 수소법 개정을 통해 ‘청정수소 인증제’와 ‘수소발전 입찰시장’ 등을 위한 제도적 기반을 마련했다. 단순한 보급 확대에서 벗어나 청정수소를 생산하고 실제 수요처에서 사용하도록 시장을 만드는 방향으로 정책이 이동한 것이다.
2023년에는 세계 최초로 ‘수소발전 입찰시장’ 이 개설됐으며, 2024년에는 청정수소 인증제가 시행되고 ‘청정수소발전 입찰시장’이 개설되면서 수소발전 시장이 청정수소 중심으로 한 단계 확대됐다. 산업계 역시 수전해·액화수소·수소터 빈·암모니아·해외 청정수소 도입 등으로 사업영 역을 확대했다.
그러나 청정수소는 기존 화석연료 기반 수소보다 생산비용이 높았고, 수요처도 충분하지 않았다. 해외 청정수소 도입 역시 생산시설뿐 아니라 선박·저장시설·터미널 등 새로운 공급망 구축이 필요했다. 결국 수소산업의 핵심 과제는 ‘얼마나 크게 투자할 것인가’에서 ‘실제로 돈을 벌 수 있는 사업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최근 들어 이러한 고민이 더욱 커졌다. 수소차와 충전소, 연료전지 등 기존 활용 분야에서는 시장 확대 속도와 수익성에 대한 우려가 나타났고, 청정수소 분야에서는 높은 생산비와 수요 확보 문제가 본격적으로 제기됐다.
기존 지원제도의 조정도 이어졌다. 수소발전시장 입찰 규모가 조정된 가운데, 기존 신재생에너지 제도에서 건물용 연료전지가 차지했던 제도적 지위를 수소법 체계로 이관하는 과정에서 공공기관 설치 의무화와 제로에너지건축물 등의 수요 기반이 약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면서 업계의 반발도 이어지고 있다.
美·日, 정책 조정하되 큰 틀 유지
산업계가 문제를 제기하는 이유는 단순히 지원 규모가 줄어서만은 아니다. 제조설비와 기술 개발, 설치 및 유지관리 시장을 전제로 투자해온 기업 입장에서는 시장을 만들어주던 제도의 변화가 사업계획과 투자회수 가능성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결국 현재 수소산업이 직면한 문제는 정책 지원의 증감 자체보다 제도 변화의 방향과 속도를 예측하기 어려워진 점이 산업계의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물론, 미국이나 일본 등수소 선도국 역시 정권이 바뀌면 수소정책이 조정되곤 한다. 미국은 정권 교체에 따라 청정수소 지원정책의 세부 내용과 적용 조건이 조정된 사례로 볼 수있다.
수소연합 하지원 실장에 따르면, 미국은 바이든 정부 당시 2022년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을 통해 청정수소 생산세액공제인 45V를 도입했다. 청정수소 생산 과정의 탄소집약도에 따라 차등 적으로 세액공제를 제공하는 제도다.
트럼프 정부 출범 이후 에너지·기후 정책 방향이 달라지면서 청정수소 지원정책도 조정됐다. 다만 일정 시점까지 착공하는 프로젝트에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투자 시점을 명확히 하는 장치가 마련됐다.
일본은 또 다른 접근방식을 보여준다. 일본은 2017년 세계 최초로 수소기본전략을 수립한 이후 2023년 전략을 개정하며 수소의 조기 양산과 산업화를 강조했다. 2050년 수소사회 구현이라는 장기 방향은 유지하면서 시장과 기술 변화에 따라 중간 목표와 산업전략을 보완하는 방식이 다. 2024년에는 수소사회추진법을 제정해 저탄 소수소 도입 확대를 위한 법적 기반도 마련했다.
미국과 일본 사례가 보여주는 것은 정책이 바뀌지 않는다는 의미의 일관성보다는, 정책 변화 과정에서 투자자에게 예측 가능한 신호를 제공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이다.
하지원 실장은 “해외 사례의 핵심은 장기 목표 아래 정책을 조정하되, 기업이 이미 결정한 투자의 예측 가능성과 연속성을 최대한 확보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함께 “10년 이상의 장기투 자가 필요한 산업적 특성을 고려해 큰 방향은 유지하되, 제도 변경이 불가피할 경우 충분한 전환 기간과 경과조치를 두는 것이 투자 불확실성을 낮추는 요인”이라고 강조했다.
경제성 담보, 실수요 창출로 경쟁력 제고
업계에서는 수소산업이 현재의 부진을 넘어 도약하기 위해서는 경제성·수요·공급망을 중심으로 산업 기반을 다시 다져야 한다고 말한다. 우선 경제성이 확보돼야 한다. 청정수소 생산비용을 낮추는 기술개발과 함께 국내 여건에 맞는 다양한 생산방식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수요 확보도 중요하다. 수소를 생산한 뒤 구매 자가 없는 상황에서는 아무리 많은 생산설비를 건설해도 산업이 지속되기 어렵다. 해외 청정수소 도입 역시 생산부터 운송·저장, 국내 공급과 최종 수요처까지 하나의 밸류체인 으로 연결해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정책의 일관성과 예측 가능성이다. 수소는 단기간에 성과를 내기 어려운 산업이다. 생산시설과 인프라 구축에 상당한 시간과 자금이 필요한 만큼 정책을 변경하더라도 이미 투자한 기업이 갑작스럽게 사업의 전제를 잃지 않도록 충분한 전환 기간과 경과조치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
기업이 원하는 것은 변하지 않는 정책이 아니다. 바뀌더라도 예측할 수 있는 정책이다. 수소산 업은 이제 과거와 같은 성장 기대만으로 투자하기 어려운 단계에 들어섰다. 수소가 탄소중립에 필요하다는 사실과 수소산업이 실제로 수익을낼 수 있다는 것은 별개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앞으로의 수소정책은 단순히 보급 목표를 높이고 지원 규모를 늘리는 방식에서 벗어나 경제성이 있는 분야를 선별하고, 실제 수요를 만들며 공급망과 기업 경쟁력을 높이는 방향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
정책이 바뀌는 것 자체가 산업의 위기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시장이 성숙하고 산업의 단계가 달라지면 정책 역시 변화할 수밖에 없다. 문제는 그 변화가 산업계가 감당할 수 있는 속도와 방식으로 이뤄지고 있는가다. 지난 20여 년간 국내 수소산업은 연구개발에서 수소경제로, 수소경제에서 청정수소로 정책의 중심축을 옮겨왔다. 이제 필요한 것은 또 다른 새로운 구호가 아니다.
결국 지속가능한 수소산업의 미래는 얼마나 많은 정책을 발표하느냐가 아니라, 정책을 믿고 투자한 기업이 실제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산업환경을 조성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