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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전망 갈등 해법 바뀐다’...철탑 2천기 줄이고 마을태양광 지원
[에너지신문] 정부가 국가기간 전력망을 건설할 때 기존 송전선로를 우선 활용하고 주민 밀집지역의 지중화를 확대하기로 했다. 송전선로 경과 지역에는 태양광 발전사업을 통한 장기 소득원을 제공하고, 주민들이 복수의 후보 노선을 놓고 의견을 낼 수 있도록 입지선정 절차도 손질한다.
기후에너지환경부는 15일 국무회의에 이 같은 내용의 ‘송전망 건설 수용성 제고방안’을 보고했다. 정부는 올해 하반기 국가기간전력망 확충 특별법 시행령과 송전선로 입지선정 관련 고시를 개정해 세부 대책을 제도화할 계획이다.
◆기존 선로와 통합, 철탑 4723기→2509기로
정부가 가장 먼저 꺼낸 방안은 새로 세울 철탑 자체를 줄이는 것이다.
기존 2회선 송전선로를 철거한 뒤 같은 구간에 신설 2회선을 더한 4회선 철탑을 설치하거나, 별도로 계획된 두 개의 신설 선로를 하나의 4회선 철탑에 함께 설치하는 방식이다. 앞으로 송전선로를 신설할 때는 기존 선로와 통합할 수 있는지를 우선 검토하도록 관련 고시에 반영할 방침이다.
현재 추진 중인 국가기간망 사업의 선로를 최대한 통합하면 당초 4723기로 계획된 철탑을 2509기까지 줄일 수 있다는 게 정부 계산이다. 감소 규모는 2214기로 전체 계획의 40%대에 해당한다. 총 2169㎞의 선로 가운데 969km를 통합한다는 전제다.
사업별로는 신광주~신임실 선로 58km 가운데 기존 선로가 있는 약 28km를 통합해 철탑 62기를 줄일 예정이다. 신장성∼신정읍 구간에서는 고창·정읍지역의 기존 154kV 선로 약 20km를 활용해 철탑 70기를 통합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
광양~신진천을 연결하는 4개 선로는 전체 구간의 약 78%를 기존 선로와 통합하는 방안이 검토 대상이다. 신해남~신장성 선로도 신해남~신강진 사업과 중복되는 35km를 하나의 4회선 철탑에 설치, 철탑 92기를 줄일 계획이다.
다만 2214기 감축은 모든 통합안이 적용될 때를 가정한 최대치로, 실제 통합 구간은 입지선정위원회의 판단과 지역 주민 의견, 기술적 조건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기존 철탑을 철거하고 대형 4회선 철탑을 설치하는 과정에서 공사 기간과 경관 영향, 전자파 우려 등을 둘러싼 새로운 논쟁이 발생할 가능성도 있다.

▲AI 생성 이미지.
◆장성·대전·군산·청양·세종·청주 지중화 검토
주민이 밀집한 지역과 송전설비가 집중되는 구간에서는 지중화가 확대된다. 정부와 한전은 국가기간망 지중화에 대한 재정지원을 활용해 갈등이 크거나 주거지가 가까운 구간부터 지중화 가능성을 살펴보기로 했다.
신해남~신장성 사업은 나주 제방도로 2.7km를 비롯해 기존 도로 확장공사와 지중 송전망 건설을 함께 추진하는 방안이 검토된다. 신장성~신정읍 구간에서는 신장성변전소 인출부와 장성군 주민 밀집지역의 지중화가 논의되고 있다.
신계룡~신천안 선로는 대전 인구 밀집지역 약 10㎞, 새만금#2~신청양 선로는 익산 개활지와 군산·청양 도심 구간이 검토 대상이다. 신서원~신진천 사업도 후보 경과대역을 정하는 단계부터 세종과 청주 주민 밀집지역의 지중화 가능성을 따질 예정이다.
새로 건설하는 345kV 변전소의 인출 구간 약 2km는 지중화를 우선 반영한다. 신정읍과 새만금#2, 신천안, 신청양, 신계룡, 신서원 변전소 등이 적용 대상으로 거론됐다.
대안 노선도 적극 검토한다. 신정읍~신계룡 사업은 대전 서구의 국가유공자 마을과 사회복지시설 인근을 통과하던 기존 8km 구간을 우회하는 노선으로 결정됐다. 신정읍~새만금#2 구간은 정읍지역 문화재 인근 3.7km를 우회하거나 지중화하는 방안을 반영할 예정이다.
지중화는 주민 영향을 줄이는 효과가 크지만 가공선로보다 많은 사업비와 긴 공사 기간이 필요하다. 어느 지역까지 지중화 비용을 지원할지, 가공선로가 지나는 다른 지역과의 형평성을 어떻게 확보할지는 향후 세부 기준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쟁점이 될 전망이다.
◆송전선로 주변에 ‘계통햇빛소득마을’
보상체계에는 주민이 장기간 수익을 얻는 태양광 사업이 새롭게 포함된다.
정부는 국가기간전력망 경과 지방정부에 지급하는 km당 20억원의 지원금 가운데 약 3분의 2를 송전망 주변지역에 배분할 방침이다. 해당 재원으로 마을마다 300kW에서 1MW 규모의 태양광 발전설비를 조성해 주민에게 발전수익을 돌려주는 ‘계통햇빛소득마을’을 만든다는 구상이다.
정부가 제시한 73km 길이의 가상 송전선로 사례를 보면 5개 지방정부가 받는 지원금은 1610억원이다. 이 가운데 3분의 2인 1074억원을 주변지역 83개 마을에 배분하면 마을당 약 13억원을 투입해 860kW 규모 태양광을 설치할 수 있다. 마을당 평균 38세대로 계산하면 한 세대가 연간 약 340만원의 수익을 얻는 구조다.
또 다른 58km 송전선로 사례에서는 지원금 1160억원 가운데 773억원을 52개 마을에 배분해 마을마다 1MW 규모 태양광을 설치할 수 있다. 평균 39세대가 참여할 경우 세대당 예상 수익은 연간 약 385만원으로 추산됐다.
정부는 연내 국가기간전력망 확충 특별법 시행령을 개정해 지방정부 지원금을 주변 마을 태양광에 우선 사용하도록 할 계획이다. 한전에도 사업 대상지 발굴과 인허가 등 행정 절차를 지원할 전담팀을 구성한다.
하지만 제시된 수익은 태양광 설비 규모와 발전량, 전력 판매가격, 참여 세대 수 등을 가정한 추정치다. 실제 주민 수익은 부지 확보와 계통 접속, 유지관리 비용 등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송전망을 건설하기 위한 단기적인 유인책에 머물지 않으려면 발전소 운영 주체와 주민 지분, 수익 배분기간, 설비 폐기까지 구체적인 사업모델을 마련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직접지원 100%로 확대...근접·밀집지역 가산
국가기간망 주변 주민에 대한 직접지원도 늘어난다.
현행 송·변전설비 주변지역 지원은 직접지원과 공동지원에 각각 50%씩 배분하는 구조다. 정부는 특별법 특례를 활용해 국가기간망 사업의 경우 직접지원을 100%까지 확대하면서 기존 공동지원 50%도 유지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송전망과 가까운 지역이나 여러 선로가 몰린 지역에는 가산 지원을 적용한다. 송전설비로부터 300m 이내에 있는 지역에는 기준액의 0.5배를 추가하고, 두 개의 선로가 밀집한 지역은 1배, 세 개 이상이 지나가는 지역은 2배를 가산할 계획이다.
송·변전설비 주변지역 지원사업의 전체 사업비도 연간 약 2%의 물가상승률과 연동해 매년 확대할 수 있도록 관련 시행령을 고친다.
이는 같은 송전망 주변지역에서도 선로와의 거리와 설비 집중도에 따라 주민이 체감하는 영향이 다르다는 점을 보상체계에 반영하려는 조치다. 다만 지원 대상 경계에 따라 마을이나 세대 간 보상 격차가 발생할 수 있어 거리 산정과 밀집지역 판정 기준을 둘러싼 세밀한 설계가 요구된다.
◆입지선정위 주민 참관 ‘허용이 원칙’
송전선로 노선을 정하는 절차도 바뀐다. 정부는 그동안 주민 의견이 이미 노선의 윤곽이 정해진 뒤 수렴된다는 비판을 반영해 사업 초기부터 공론화를 강화하기로 했다.
사업 착수 단계에서 지방정부와 주민을 대상으로 설명회를 열고, 입지선정위원회 운영 과정의 주민 설명회도 기존 두 차례에서 세 차례로 늘린다. 최적 경과대역 안의 주민에게는 선정 결과를 행정우편으로 개별 통지한다.
입지선정위원회 회의는 현재 ‘원칙적 비공개·예외적 참관’에서 ‘원칙적 참관·예외적 비공개’로 전환한다. 기후에너지환경부 직원도 회의에 참여해 운영 과정을 점검한다. 주민대표 위원에게는 회의 안건을 사전에 설명하고, 회의가 끝난 뒤 개인정보 등을 제외한 자료를 주민에게 공개한다.
후보 경과대역은 원칙적으로 두 개 이상 제시한다. 단거리 사업이거나 지형상 복수 대안을 만들기 어려운 경우에만 단일안을 검토한다. 필요하면 기존 입지선정위원과 주변 마을 주민이 참여하는 권역별 주민협의체를 구성해 주민이 직접 대안 노선을 발굴하고 위원회에 상정할 수 있도록 할 예정이다.
송전망 건설 필요성에 대한 의견수렴 시점도 앞당긴다. 정부는 전력수급기본계획과 장기 송변전설비계획을 수립하는 단계에서 토론회와 공청회를 열고 전문가와 주민 의견을 듣기로 했다. 올해 11월부터 제12차 전력수급기본계획 계통 분야 토론회와 송변전설비계획 수립 절차를 진행할 예정이다.
◆수도권 장거리 송전 의존도 낮춘다
이번 대책에는 전력 생산지를 수도권과 연결하는 송전망을 계속 늘리는 방식만으로는 갈등을 해결하기 어렵다는 판단이 담겼다. 정부는 비수도권에서 생산한 전력을 장거리 송전망을 통해 수도권으로 보내는 일방향 구조를 발전지와 수요지가 가까운 ‘지산지소형’ 전력체계로 전환하겠다는 방향을 제시했다.
호남권 반도체 산업단지 약 6GW와 동해권 데이터센터 2.4GW, 울산 데이터센터 1GW 등을 포함해 총 14GW 이상의 신규 전력수요를 비수도권에 분산 배치한다는 구상이다. 발전력이 풍부한 지역에 산업과 데이터센터를 유치해 지역에서 생산한 전력을 지역에서 소비하면 수도권으로 향하는 장거리 송전망 수요를 줄일 수 있다는 계산이다.
다만 산업 입지는 전력 공급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용수와 교통, 통신, 인력, 협력기업 생태계 등 여러 조건이 함께 갖춰져야 한다. 정부가 제시한 14GW 이상의 수요 분산이 실제 투자로 이어질지는 지역별 산업 기반과 기업 유치정책에 달렸다.
수도권 전력수요가 단기간에 증가하는 상황에서 신규 송전망을 완전히 피하기도 어렵다. 정부 역시 제12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서 수요 분산을 최대한 반영하되 불가피한 송전선로는 주민 수용성을 확보해 건설한다는 입장이다.
◆보상 확대만으로 갈등 풀릴지는 미지수
이번 방안은 철탑 수 감축과 지중화, 지속적인 주민 소득, 입지선정 절차 개선을 하나의 대책에 담았다는 점에서 기존의 사후 보상 중심 정책보다 진전된 접근으로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송전망 갈등은 경제적 보상만으로 해소되지 않는다. 주민들은 재산권과 경관, 건강과 안전에 대한 우려뿐 아니라 전력을 주로 소비하는 수도권을 위해 비수도권이 부담을 떠안는 구조 자체에 문제를 제기해 왔다.
‘계통햇빛소득마을’도 주민이 발전사업의 주체가 아니라 지원금의 수혜자로만 남는다면 수용성 확보 효과가 제한될 수 있다. 지원금 배분을 둘러싼 지방정부와 마을 간 갈등, 태양광 입지를 둘러싼 또 다른 주민 갈등이 발생할 가능성도 살펴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절차의 실효성이다. 복수 후보 노선이 제시되더라도 사실상 선택 가능한 대안이 하나뿐이거나, 주민 설명회가 사업의 필요성을 일방적으로 알리는 자리에 그친다면 제도에 대한 신뢰를 얻기 어렵다.
이번 대책의 성패는 철탑 감축과 지원금 규모보다 주민 의견이 실제 노선과 사업방식의 변경으로 이어지는지를 통해 판가름 날 전망이다. 정부가 전력망 건설 속도와 절차적 정당성을 동시에 확보하려면 사업별 통합·지중화 결과와 지원금 집행내역, 주민 의견 반영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