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S
업계뉴스
인공지능에도 탄소 계산서가 필요하다

[에너지신문] 지난 8월 26일 아침, 네팔 랑탕 국립공원의 빙하가 무너졌다.
토석류는 100km를 달려 중국과 네팔을 잇는 국경 초소와 간선 도로를 삼켰고, 붕괴의 진동은 지진계에 규모 5.2로 찍혔다. 트리슐리강 수위는 30분만에 9m가 올랐다.
사망자는 389명을 넘었고 실종자는 1300명이 넘는데, 그중 476명이 외국인 관광객이다. 과학자들은 신중하다.
이런 사건은 기후변화가 없어도 일어나지만, 고산지대 산사태가 빙하 융해와 함께 잦아지고 있다는 사실은 확인돼 있다.
기후변화는 이 재난의 원인이라기보다 방아쇠를 앞당긴 손가락이다. 문제는 속도다. 빙하가 무너지는 속도와 우리가 답을 찾는 속도, 어느 쪽이 빠른가.
세상은 답을 찾았다고 말한다. ‘인공지능(AI)’이다. 탄소중립과 기후위기 대응에도 AI가 효과적이라고 한다. 근거는 효율이다.
석유화학공정을 원료 투입부터 AI로 최적화하면 배출이 준다고 하고, 수송 분야에서는 이산화탄소를 가장 적게 내는 경로를 AI가 찾아준다고 한다.
구글과 보스턴컨설팅그룹(BCG)은 2023년 보고서에서 AI가 2030년까지 세계 온실가스의 5~10%, 유럽연합 연간 배출량에 맞먹는 양을 줄일 수 있다고 했고, 기업 지속가능성 보고서는 저마다 AI로 회피한 배출량을 자랑한다.
나는 이 말을 믿고 싶다. 그러나 기술과 정책 사이를 오래 오가며 배운 것이 하나 있다. 좋은 이야기일수록 숫자를 꺼내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세 개의 질문을 스스로에게 해 본다. △근거가 있는가 △전례가 있는가 △AI 자신이 내는 탄소는 얼마인가.
국제에너지기구(IEA)는 기존 AI 기술을 폭넓게 적용하면 2035년 에너지 관련 배출의 약 5%를 줄일 수 있다고 추정했다. 대략 15억톤 규모다.
구글은 연비 최적 경로 기능이 누적 290만톤의 온실가스 배출을 감축했고, 2024년 한 해 AI 제품 다섯 개가 2600만톤 감축을 도왔다고 발표했다. 에틸렌 공장의 스팀 관리를 최적화해 연료 5%, 이산화탄소 연 4900톤을 줄인 실측 연구도 있다.
그런데 이 숫자들에는 공통점이 있다. 대부분 측정값이 아니라 추정값이라는 점이다. 구글의 290만톤은 실제 주행 경로의 연료 소비를 ‘최단시간 경로였다면’이라는 가정과 비교해 계산한 값이고, 계산한 주체는 구글 자신이다. IEA의 5%에는 ‘도입의 여러 장벽을 넘는다면’이라는 조건이 붙어 있다.
가장 널리 인용되는 5~10%는 더 많은 조건과 가정을 포함한다. 이 숫자의 출발점은 BCG가 2021년에 쓴 글이고, 근거는 ‘고객사와 일해 본 우리의 경험’이다. 개별 프로젝트의 경험을 지구 전체 배출량에 곱한 값으로, 계산 과정은 공개된 적이 없다.
반대편 진영의 검증도 나왔다. 2026년 2월 환경단체 연합의 의뢰로 나온 보고서는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IEA 등 8개 출처의 ‘AI 기후 편익’ 주장 154건을 검토한 결과, 74%가 입증되지 않았다.
또한 학술 논문을 인용한 주장은 26%에 그쳤으며, 챗GPT류 생성형 AI가 검증 가능한 규모의 감축을 낳은 사례는 하나도 찾지 못했다고 결론지었다.
환경단체의 보고서이니 그 나름의 시각이 있겠지만, 근거를 제시하라는 요구 자체는 정당하다.

▲인공지능이 기후위기의 해답이 될 수 있다. AI 생성 이미지.
에틸렌 공정의 AI 최적화 연구 가운데 가장 인상적인 결과는, 이익의 29%를 포기하면 배출을 43% 줄일 수 있다는 것이었다. AI가 보여준 것은, 이익 극대화와 배출 최소화가 서로 다른 답을 갖는다는 사실이다.
어느 답을 고를지는 AI가 아니라 사람이 정한다. 그리고 지금까지 사람은 대체로 이익 쪽 답을 골라 왔다. 정리하면 AI가 탄소를 줄인다는 근거는 있다. 다만 추정값이고, 조건이 붙고, 사람의 선택에 달려 있다. 근거는 두꺼워 보이지만 생각보다 얇다.
효율로 탄소를 줄인다는 이야기에는 전례가 있다. 바로 공장자동화(FA)다. 1980년대 이후 제조업은 자동화로 생산성을 끌어올렸다.
한국경제가 빠르게 성장하던 1980년대말, 우리가 세던 것은 수율과 시간당 생산량이었다. 생산성이 주인공이었으므로 아무도 이산화탄소를 세지 않았다. 뒤늦게 연구자들이 검토해 보았다. 40개국 제조업 자료로 보나 35개국 25년치 자료로 보나 결론은 같다.
로봇 도입은 물건 하나를 만들 때 나오는 배출을 분명히 낮췄고, 그 이유는 생산성 향상이었다. 여기까지는 AI 낙관론의 기대 그대로다.
그러나 감축 효과의 크기를 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로봇 사용이 1% 증가할 때, 배출은 0.02% 줄었다. 기업 단위로 보아도 로봇이 1% 늘면 같은 물건을 만드는 데 드는 에너지가 0.023% 줄었다.
로봇을 100% 늘려도 배출은 불과 2% 준다는 뜻이다. 자동화는 탈탄소 무대에서 엑스트라였다고 생각한다.
더 중요한 것은 이 숫자가 ‘물건 하나당’ 배출이라는 점이다. 같은 기간 세계 제조업이 내보낸 배출 총량은 늘었다.
생산성이 오르자 물건을 더 많이 만들었고, 더 많이 만든 만큼 배출이 늘어 물건 하나당 줄어든 몫을 삼켜버렸다. 연비 좋은 차를 사면 더 멀리 다니게 되는 것과 같은 이치다. FA는 물건 하나당 배출은 줄였지만, 총배출은 줄이지 못했다.
AI는 다를 것인가. 이것이 짚어 보고 싶은 질문이다.
AI에는 FA에 없던 부담이 하나 더 있다. 전기다. AI를 돌리는 데이터센터는 발전소 하나를 통째로 요구하는 수요처이고, 특정 지역에 집약돼 건설된다.
IEA의 최신 추계로 데이터센터 전력 소비는 2025년 485TWh에서 2030년 950TWh로 두 배가 돼 세계 전력 수요의 3%에 이른다. 배출은 2035년 약 3억 5000만톤으로 역시 두 배가 된다. 앞서 본 감축 잠재량 15억톤의 4분의 1이다.
이 비교만 보면 AI는 매우 효과적인 감축 수단이다. IEA도 데이터센터 배출 증가는 전체 에너지 부문에서 작고, AI가 폭넓게 도입되면 감축 효과로 상쇄될 수 있다고 본다. 물론 데이터센터에 100% 무탄소 전력이 들어간다면 이 계산은 필요없다.
그러나 100% 무탄소를 전제로 계획을 세우는 것은 정직하지 않다. 세계 전력의 43%가 무탄소인 오늘, AI는 나머지 57%의 화석 전력으로도 돌아가는 기술이다.
그렇다면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는 인공지능은 말이 되는가. 처음 이 문장을 떠올렸을 때 스스로도 어색했다. 그러나 가계부를 생각하면 이해가 쉽다.
제철소는 이산화탄소를 배출한다. 그러나 그 철로 만든 풍력발전기가 제철소가 배출한 것보다 더 많은 탄소를 줄인다면, 장부에는 감축이 남는다. AI도 마찬가지다. 내보내는 탄소보다 줄여주는 탄소가 많으면 감축이 남는다.
문제는 이 장부에 저절로 감축이 남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지출란에는 AI가 쓰는 전기의 양과 그 전기를 만들 때 나온 탄소가 적힌다. 수입란에는 AI가 줄여준 탄소가 적히는데, 여기서 하나를 빼야 한다. 효율이 높아지면 사람들은 더 많이 사용한다.
IEA가 든 예는 대중교통을 타던 사람이 자율주행차로 갈아타는 것이다. 새로 생기는 수요를 빼고 남는 것이 진짜 수입이다. 이 뺄셈을 잊는 순간, 단위당 배출은 줄었는데 총배출은 늘어난 FA의 역사가 되풀이된다.
가계부의 지출은, 즉 AI가 쓰는 전기가 얼마나 깨끗한가에서 한국의 사정은 세계와 다르다.
2025년 세계 전력은 재생에너지가 33.8%로 100년만에 석탄을 앞질렀고, 원자력을 합친 무탄소 전원이 43%다. 전력 수요가 849TWh 늘었는데 무탄소 발전이 887TWh 늘어 화석 발전은 오히려 줄었다. 세계는 ‘늘어나는 전력은 무탄소로 채우는’ 단계에 들어섰다.
한국은 2024년 석탄 30%, 화석연료 60%, 재생에너지 10%다. 같은 AI를 같은 시간 돌려도 한국의 데이터센터는 세계 평균보다 훨씬 많은 탄소를 내보낸다. 세계 평균으로는 감축이 남던 가계부가, 한국에서는 남을지 장담하기 어렵다.
그렇다고 한국이 AI를 미룰 수 있는 나라도 아니다. IEA 국가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은 최종 에너지 소비의 55%를 산업이 쓴다.
IEA 회원국 중 가장 높다. 그 안에서 철강 등 1차 금속이 31%, 화학이 14%다. 반면 전력에서 재생에너지 비중은 8.6%로 회원국 중 가장 낮고, IEA 평균 33%의 4분의 1이다. 산업이 쓰는 에너지가 그만큼 크다는 뜻이고, 거꾸로 말하면 공정 최적화로 줄일 수 있는 탄소도 그만큼 크다는 뜻이다.
한국은 가계부의 지출도 많고 수입도 많을 수 있는 나라다. AI가 쓰는 전기를 만들 때 나오는 탄소는 세계 평균보다 많지만, AI가 줄일 수 있는 탄소도 그만큼 많다. 한국의 AI 탄소 계산서는 따로 써야 한다.
그래서 나의 결론은 장밋빛도 아니고 암울하지도 않다. AI는 우리가 앞으로 쓸 수밖에 없는 기술이다. 쓰지 말자는 말은 공허하다.
그러나 쓰기 전에 저울부터 만들어야 한다. AI를 도입하는 공정마다, 데이터센터를 짓는 지역마다, 그 AI가 쓰는 전력의 탄소량과 그 AI가 줄이는 탄소량을 같은 단위로 적어 나란히 놓는 것이다.
세 개의 저울 원칙을 세워야 한다.
첫째, 회피 배출을 계산하는 주체와 도입을 결정하는 주체를 분리한다. 자기 제품의 감축량을 자기가 계산하면 저울은 늘 한쪽으로 기운다.
둘째, 물건 하나당이 아니라 총량으로 적는다. 하나당 배출이 줄었다는 보고는 FA 시대에도 넘쳤다.
셋째, 그 AI가 쓰는 전기가 얼마나 깨끗한지를 지역별로 적는다. 같은 AI라도 어디서 돌리느냐에 따라 답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감축이 남는 곳에 먼저 AI를 넣고, 남지 않는 곳은 전력을 먼저 변경한다.
나는 이것을 탄소지능(Carbon Intelligence)이라 부르고 싶다. 계산 없이 도입하는 지능은 FA의 역사를 반복할 것이다.
랑탕의 빙하는 계산서를 기다려 주지 않는다. 그러나 계산 없이 서두른다고 빙하가 멈추는 것도 아니다. 인공지능은 기후위기의 해답이 될 수 있다.
FA가 그랬듯 답이 아닌 것으로 끝날 수도 있다. 둘 중 어느 쪽이 될지를 정하는 것은 인공지능이 아니라 우리가 만드는 저울이다. 저울을 먼저 만드는 나라가 AI 시대의 탄소중립을 먼저 손에 넣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