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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공유 수출강국 다음 승부처, ‘K-SAF 상생동맹’

▲ 김재훈 성균관대학교 기계공학부 교수.
[에너지신문] 지속가능항공유(SAF)를 항공사의 탄소감축 수단 정도로 이해하면 큰 오산이다.
SAF는 앞으로 정유·화학·항공연료산업의 생존, 항공사의 노선 경쟁력, 국가 에너지안보와 수출산업의 지형을 함께 바꿀 전략물자다.
대한민국은 원유 한 방울 나지 않지만 세계 5위권의 정제 기반과 세계 1위 항공유 수출 경쟁력을 일궜다.
석유제품 수출은 2024년 479억달러로 국가 총수출의 약 7%를 담당했다.
과거의 성공이 미래의 지위를 보장하지는 않는다. 화석 항공유를 잘 만드는 나라에 머물 것인지, 차세대 항공연료의 기술과 공급망을 지배하는 나라로 도약할 것인지가 지금 결정된다.
장거리 항공기는 당분간 배터리만으로 날기 어렵고 수소항공기의 대규모 상용화에도 시간이 필요하다. 현재의 항공기와 엔진, 급유 인프라를 활용하면서 전주기 온실가스를 줄일 수 있는 SAF가 가장 현실적인 대안인 이유다.
SAF는 폐식용유 한 가지로 만드는 연료도 아니다. 동물성 유지와 농림업 잔재물, 도시폐기물, 저탄소 알코올, 산업 배가스의 일산화탄소와 이산화탄소, 재생전력과 청정수소까지 활용하는 거대한 탄소순환 산업이다.
세계는 이미 의무와 지원을 한 묶음으로 움직이고 있다. 유럽연합은 SAF 공급 의무를 2025년 2%에서 2050년 70%까지 높인다.
미국은 2030년 연간 30억갤런, 2050년 항공유 수요 전량을 SAF로 충당한다는 목표를 내걸었다.
일본은 대규모 국내 공급체계 구축을 추진하고 있다. 중국도 국영 항공사·공항·항공유 공급기업을 묶은 시범사업과 산업동맹을 국가 주도로 가동했다.
주목할 것은 보조의 규모와 방식이다. 미국은 2023~2024년 SAF 전용 세액공제로 갤런당 1.25~1.75달러를 지원했고 현재는 탄소집약도에 연동한 45Z 생산세액공제를 2029년까지 운용한다.
2026년 이후 적정임금·도제 요건을 갖춘 시설의 기준액은 갤런당 1달러다. 원료 산지도 미국·캐나다·멕시코로 묶었다.
일본은 5년간 3368억엔을 투입해 HEFA 공정에는 인정된 설비투자비의 3분의 1, ATJ 공정에는 2분의 1까지 보조하고 국내 생산·판매량에 따라 리터당 30엔의 법인세액공제를 적용한다.
유럽은 배출권 수입을 재원으로 한 혁신기금으로 e-SAF와 배가스 전환 상업공장을 지원한다.
또 2030년까지 최대 2000만개, 약 15억유로 상당의 EU ETS 배출권을 별도로 두고 SAF 종류와 급유 지역에 따라 화석 항공유와의 가격차를 50~100% 보전한다.
이 사실이 말하는 바는 분명하다. 초기 SAF를 민간자본만으로 국제경쟁에 필요한 속도와 규모까지 키우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원료는 부족하고 첫 상용설비는 비싸며 신공정의 성능과 장기 수요에는 위험이 따른다.
항공사도 화석 항공유보다 큰 가격 프리미엄을 혼자 감당할 수 없다. 선진국은 시장이 저절로 만들어지기를 기다리지 않는다. 의무혼합으로 수요를 만들고 설비투자와 생산비 격차를 재정·세제·배출권으로 나누며 실증과 인증까지 정부가 함께 건넌다.
그렇다고 이를 단순한 환경보조금으로 보면 본질을 놓친다. 미국이 세액공제와 북미산 원료 요건을 결합하고 일본이 SAF를 ‘전략분야 국내생산’ 세제에 넣고, 유럽이 혁신기금으로 정유·연료 상업공장을 지원하는 이유는 항공 배출량만 줄이기 위해서가 아니다.
기존 정유·석유화학 자산을 바이오·합성연료 체제로 전환하고 원료·촉매·공정·수소·탄소전환·인증의 지식과 표준을 자국에 축적하려는 것이다.
오늘 보조금으로 최초 시장을 산 나라가 내일 기술료와 연료 수출로 세계시장을 차지한다. 이것은 복지가 아니라 차세대 정유·액체연료산업의 주도권을 사는 국가 투자다.
우리나라도 2027년 국내 출발 국제선에 SAF 1% 혼합을 의무화하고 2030년 3~5%, 2035년 7~10%의 범위를 제시했다.
늦었지만 중요한 출발이다. 그러나 의무비율만 정한다고 산업이 생기지는 않는다. 1%를 수입 SAF로 채우면 우리는 규제를 준수하는 소비국에 머문다.
반면 국내외 원료 공급망, 우리 공정기술, 국내 생산·인증·급유로 채우면 새로운 수출산업의 씨앗이 된다. 같은 1%라도 산업적 결과는 전혀 다르다.
이미 정유사와 항공사의 SAF 시범운항, 폐식용유 수거기업과 정유사의 협력, 인천공항의 운항 인센티브, 종합상사와 정유사의 해외 바이오원료 공동투자가 시작됐다. 그러나 아직 점으로 흩어져 있다.
원료기업은 장기 구매처를 확신하지 못하고 생산기업은 막대한 설비·기술 위험을 우려한다. 항공사는 가격 프리미엄을 떠안을 수 없고 공항은 저장·혼합·품질관리와 탄소 추적체계를 준비해야 한다. 각자가 자기 위험만 계산하면 누구도 먼저 대규모 투자에 나서지 못한다.

▲ K-SAF 상생동맹 모식도.
따라서 필요한 것은 선언적 협의체가 아니라 투자와 위험, 이익을 계약으로 나누는 ‘K-SAF 상생동맹’이다.
포스코인터내셔널과 LX인터내셔널 같은 종합상사, 폐자원 수거기업과 지자체는 국내외의 인증 가능한 원료와 전처리 거점을 확보해야 한다. 정유사와 항공사는 장기 구매계약과 지분투자로 가격과 공급 위험을 함께 져야 한다.
해외 농장 개발보다는 폐유·잔사·부산물 회수, 현지 전처리시설, 추적 가능한 인증을 묶어 산림 훼손과 식량 경쟁도 막아야 한다.
국내에서는 폐식용유, 농림 부산물, 유기성 폐자원의 지역 수거망을 키워 SAF가 수도권 대기업만의 사업이 아니라 지역의 소득과 일자리를 만드는 산업이 되게 해야 한다.
철강·정유·석유화학사의 배가스는 처리비용이 드는 폐기물을 넘어 ‘국산 탄소광산’이 될 수 있다.
철강 부생가스의 일산화탄소를 발효해 에탄올로 만들고 이를 AtJ(Alcohol-to-Jet) 공정에 투입하거나 포집한 이산화탄소와 청정수소로 메탄올·합성가스를 거쳐 SAF를 만들 수 있다.
배출기업과 연료기업이 장기 탄소공급계약을 맺고 재생전력·청정수소 사업을 함께 개발해야 한다.
다만 배가스를 썼다는 이유만으로 친환경이라는 도장을 찍어서는 안 된다. 수소와 전력, 포집·정제·운송까지 전주기 탄소감축을 검증해야 한다.
정유사와 바이오연료 기업도 경쟁자가 아니라 공동 생산자가 돼야 한다.
초기에는 기존 수소화설비와 저장·혼합 인프라를 활용한 코프로세싱과 HEFA(Hydroprocessed Esters and Fatty Acids)로 시장을 열고 중기에는 폐자원·바이오매스·저탄소 알코올 기반의 ATJ와 가스화-피셔·트롭슈를, 장기에는 e-SAF를 키워야 한다.
바이오연료·기술기업의 전처리와 발효·가스화 노하우를 정유사의 스케일업, 품질관리, 수출망과 결합해야 한다. 정유사가 모든 것을 내부화하고 중소기업을 납품업체로만 두면 기술 생태계는 자라지 못한다.
여기서 정유사의 결단이 특히 중요하다. 지난 50년은 원유를 들여와 규모의 경제와 고도화 공정, 탁월한 운전으로 돈을 번 시대였다.
그 성공은 존중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호르무즈 사태가 여실히 보여주었듯 공급망 충격에 흔들리고 국제유가와 정제마진의 단기 등락에 일희일비하는 ‘운영 최적화형 DNA’만으로는 대한민국 정유산업의 다음 50년을 지킬 수 없다.
이제 원료전환, 촉매, 공정설계, 스케일업과 전주기평가를 10년 이상 밀어붙이는 ‘기술 창조형 DNA’로 바꿔야 한다.
연구개발을 비용으로 보고 투자 뒤에 붙이는 태도부터 버려야 한다. 기술이 투자의 방향을 정하게 해야 한다.
외국의 턴키 기술은 시간을 살 수 있지만 산업 주도권까지 사주지는 않는다. 핵심 공정패키지와 촉매, 운전 데이터가 계속 해외 라이선서에 쌓이면 국내에 남는 것은 설비와 얇은 생산마진뿐이다.
필요한 해외 기술과는 과감히 협력하되 핵심 설계자료와 운전 노하우를 내재화해야 한다. 울산·여수·대산 등 생산거점의 대학과 연구소, 엔지니어링 회사, 촉매기업이 실험실-파일럿-실증-상용설계에 처음부터 함께 참여하도록 해야 한다.
정유사는 실제 원료와 설비를 공동 파일럿에 열고, 정부는 장시간 연속운전과 ASTM 규격·국제인증의 비용을 지원해야 한다.
논문에서 끝난 지역 기술을 산업현장이 적극 도입하고, 공동특허와 기술사용료로 연구자와 중소기업에 성과가 돌아가며, 성공한 공정패키지와 촉매를 다시 수출하는 선순환을 만들어야 한다.
이것이 우리 원료와 산업 배가스, 정유 인프라에 특화된 ‘K-SAF’다. 항공사는 단순한 최종 구매자가 아니다. 대한항공을 비롯한 국적항공사가 생산 초기부터 규격과 수요를 제시하고 7~15년 장기 구매계약에 참여해야 설비의 금융조달이 가능하다.
공항은 공동 저장·혼합·품질검사 설비를 갖춘 시장 플랫폼이 돼야 한다. 원료의 산지와 공정, 전력과 수소의 탄소집약도부터 어느 공항·항공편에 쓰였는지까지 추적하는 국가 디지털 탄소원장도 필요하다.
이는 CORSIA·ISCC 등 국제기준과 호환되고 이중계상을 막아야 한다. 공항별 물리적 공급이 어려운 초기에는 엄격한 질량수지와 Book-and-Claim을 병행할 수 있다.
반도체·전자·자동차·바이오 등 항공화물과 출장이 많은 수출기업도 SAF 인증서를 구매해 비용과 Scope 3 감축효과를 분담해야 한다.
정부의 역할은 이 연결고리가 끊기지 않게 하는 것이다. ‘공급망 구축-전환기술 개발-실증과 인증-장기구매-SAF 수출산업’을 하나의 국가 프로젝트로 묶어야 한다.
현재의 SAF 얼라이언스도 정보교환을 넘어 공동 사업개발 플랫폼이 돼야 한다. 매년 원료 확보량, 경로별 생산능력, 장기 구매물량, 공항 인프라와 인증 일정을 한 장의 국가 공급망 지도로 관리해야 한다.
전주기 감축률에 연동한 생산세액공제, 공정별 설비보조, 정책금융·대출보증과 초기 가격차를 메우는 차액계약을 예측 가능하게 조합해야 한다. 이 산업의 투자기간은 정부의 예산연도보다 훨씬 길다.
수천억 원 규모 공장은 10년 이상의 현금흐름이 보여야 금융이 붙는다. 해마다 바뀌는 공모사업과 1년짜리 시범비행으로는 기업 이사회도 은행도 움직이지 않는다.
지원의 총액만큼 기간과 예측가능성이 중요하다. 지원은 영구적 특혜가 아니라 최초 상용화의 위험을 나누는 한시적 다리여야 하며, 실제 감축량과 원가하락, 국내 지식재산·고용·운전데이터 축적에 성과조건을 붙여야 한다. 실패의 책임은 묻되 도전의 위험은 국가가 함께 져야 한다.
석유화학의 현재 위기는 정유산업에 보내는 미래의 경고다. 중국의 자급 확대와 중동의 대형 설비, 공급과잉 앞에서 과거의 규모만으로는 버틸 수 없다.
세계 5위권의 정유 기반도 ‘다음 제품’을 만들지 못하면 예외가 아니다. 정유가 흔들리면 충격은 연료 한 품목에서 끝나지 않는다.
납사-기초유분-중간재-정밀화학으로 이어진 집적과 기술·인력 기반이 약해지고, 반도체·디스플레이는 물론 제약·바이오 공정에 필요한 일부 고순도 용제·수지·소재의 수입의존, 비용과 납기 위험도 커질 수 있다.
SAF 지원은 특정 정유사를 구제하는 일이 아니라 우리 제조업의 뿌리를 다음 세대로 옮겨 심는 일이다.
2027년의 1%는 목표가 아니라 출발선이다. 그 1%를 값싼 수입품으로 채우면 비용만 해외로 나가고 기술과 일자리는 남지 않는다.
반대로 원료 공급망, 산업의 폐탄소, 촉매·전환공정, 정유 인프라, 항공 수요와 공항 급유를 하나의 가치사슬로 묶으면 1%는 세계시장으로 가는 교두보가 된다.
50년전 대한민국은 원유가 없어도 정유강국이 될 수 있음을 증명했다. 이제는 남의 기술을 잘 운전하는 나라를 넘어 버려지는 탄소를 우리 기술로 하늘길의 에너지로 바꾸는 나라가 돼야 한다. 각자도생으로는 늦는다.
K-SAF의 승부는 보조금의 유무가 아니라 정부와 기업이 그 보조금을 기술·공급망·수출역량으로 바꾸는 속도에서 갈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