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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매 규제 10년, 선언에서 이행으로
냉매 규제 10년, 선언에서 이행으로 / AI 이미지
[투데이에너지 임자성 기자] 냉매 규제를 둘러싼 국제 공조가 '선언'의 단계를 지나 실제 이행을 점검하는 단계로 넘어가고 있다. 온실가스 효과가 강력한 냉매 HFC(수소불화탄소)의 단계적 감축을 규정한 키갈리 개정의정서가 올해로 채택 10주년을 맞으면서, 세계 각국이 이행을 가속화하기 위한 정치적 연합체를 다시 가동시켰다.
다시 모인 '키갈리의 친구들'
지난 9월 23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에서 열린 유엔총회와 기후주간(Climate Week NYC)을 계기로, 르완다·브라질·영국 등이 '키갈리 동맹(Friends of the Kigali Amendment)'을 10년 만에 재가동시켰다. 이 연합체는 2016년 르완다 키갈리에서 의정서가 채택될 당시 국제사회의 지지를 모으는 데 기여했던 조직으로, 이번 재가동은 앞으로 10년간 실질적인 이행을 뒷받침하겠다는 취지다.
이 자리에서 발표된 공동성명은 네 가지 우선순위를 제시했다. 의정서의 확실한 이행, 지속가능하고 에너지효율적인 냉방·냉매관리, 재원·기술·역량 확충, 산업계와의 파트너십 재구축이다. 르완다 환경부 장관 버나뎃 아라퀴예 박사는 이번 10주년을 맞아 이행에 대한 의지를 다시 한번 확인하는 자리라고 밝혔다.
움직이는 민간 재원
같은 자리에서 세쿼이아기후재단을 비롯한 주요 기후 관련 자선재단들도 별도로 공동 전략을 발표했다. HFC 배출 감축과 지속가능한 냉방 확산을 함께 가속화하기 위해 1억 달러 규모의 공동 펀딩 목표를 제시한 것이다. 이는 각국 정부의 정치적 움직임과는 별개로, 민간 필란트로피 차원에서 힘을 보태겠다는 보조적 성격의 발표다. 국제 기후금융 전체 규모에 비하면 크지 않은 액수지만, 정부 간 합의를 넘어 실질적 재원 논의가 함께 테이블에 오르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174개국 비준, 그러나 남은 과제
유엔환경계획(UNEP) 오존사무국에 따르면, 올해 9월 16일 '세계 오존층의 날' 기준으로 174개국이 키갈리 개정의정서를 비준해 HFC 생산·소비 데이터 보고 의무 체계에 편입됐다. 유엔 측은 의정서가 완전히 이행될 경우 금세기 말까지 지구온난화를 최대 0.5도까지 늦출 수 있다고 추산하고 있다.
다만 10년이 지난 지금, 논의의 중심은 단순한 냉매 감축을 넘어서고 있다. UNEP 오존사무국은 이제 냉매 전환뿐 아니라 에너지효율, 기술 접근성, 재원, 지속가능한 냉방 인프라 구축까지 함께 다뤄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특히 아프리카 등 개발도상국에서는 냉방을 단순한 편의시설이 아니라 식량 안보와 보건의 문제로 연결 짓는 시각이 확산되고 있다.
11월, 다시 키갈리로
이번 10주년 논의의 다음 무대는 11월 2일부터 6일까지 르완다 키갈리에서 열리는 제38차 몬트리올의정서 당사국총회(MOP38)이 될 예정이다. 이 자리에서 각국 정부와 국제기구, 산업계가 모여 오존층 보호와 기후 관련 이행 성과를 점검할 계획이다.
한국의 숙제
174개국이 비준을 마친 국제적 흐름 속에서, 한국 역시 2024년부터 HFC 사용량 동결에 들어가 2029년 10%, 2045년까지 80% 감축을 목표로 하고 있다. 그러나 이 숙제가 만만치 않다는 사실은 정부 통계에서도 확인된다.
기후에너지환경부가 지난 9월 18일 발표한 '2025년도 국가 온실가스 잠정배출량'에 따르면, 냉장·냉방기기에 주입되는 냉매용 HFC 등 불소계 온실가스 배출량은 3,628만톤으로 전년 대비 3.9% 늘었다. 총배출량이 소폭 감소한 가운데서도, 전력·건물과 함께 배출량이 늘어난 몇 안 되는 부문에 속한다. 2018년 2,310만톤이었던 이 수치는 7년 연속 증가해 2025년 기준 누적으로 약 57% 늘어난 상태다.
정부는 이러한 증가세의 배경으로 저온유통(콜드체인) 산업의 성장과, 오존층파괴물질(ODS) 규제에 따른 HFC 대체 수요 증가를 꼽았다. 기존에 쓰이던 냉매를 규제로 퇴출시키는 과정에서 그 자리를 HFC가 메우고 있다는 뜻이다. 다만 증가율 자체는 둔화하는 조짐을 보인다. 2025년 증가율(3.9%)은 전년도(2023~2024년, 4.5%)보다 낮아졌는데, 정부는 이를 몬트리올의정서(키갈리 개정)에 따른 단계적 감축 시행의 효과로 설명했다.
정부는 향후 계획으로 건물 부문의 난방 탈탄소화를 위한 히트펌프 보급·재생열 공급과 함께, 냉매의 전주기 관리 강화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국제사회가 선언을 넘어 이행 점검 단계로 넘어가는 지금, 한국의 냉매 관리 체계가 이 흐름을 따라잡을 수 있을지가 관건으로 남아 있다.
[용어설명]
필란트로피(Philanthropy): 정부 재원과 별개로, 민간 재단이 사회문제 해결을 위해 자금을 투입하는 공익활동.
키갈리 개정의정서: HFC 단계적 감축을 규정한 몬트리올의정서의 2016년 개정안.
HFC(수소불화탄소): 오존층은 안전하지만 온실효과가 매우 강한 냉매 물질.
ODS(오존층파괴물질): 과거 널리 쓰였으나 오존층을 파괴해 퇴출 대상이 된 냉매(예: 프레온가스).
콜드체인: 식품·의약품 등을 저온 상태로 유지하며 운송·보관하는 물류 시스템.
MOP38: 몬트리올의정서 제38차 당사국총회, 11월 르완다 키갈리 개최 예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