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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논단] 한국형 녹색대전환(K-GX) 전략을 보고

에너지신문
2026-10-08
▲ 양춘승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 상임이사
▲ 양춘승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 상임이사

[에너지신문] 정부가 ‘한국형 녹색대전환(K-GX) 전략’을 공식 발표했다.

2026년부터 2035년까지 10년간 정부 재정 200조 원과 기후금융 790조원을 포함해 약 1000조원 안팎의 자금을 투입해 탄소중립과 경제성장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겠다는 구상이다.

철강과 석유화학 같은 탄소 다배출 제조업의 탈탄소 전환과 신성장 녹색산업 육성, 재생에너지 공급망 확충은 물론, 소외될 수 있는 지역 발전과 산업 전환기 노동자 지원까지 포괄했다.

국가 경제와 산업 정책의 무게중심을 기후위기 대응으로 이동시켰다는 점에서 진일보한 시도로 환영한다.

화석연료 수입 의존도가 절대적이고 제조업과 수출 중심의 성장 모델을 가진 한국 경제의 녹색전환은 환경 보호 차원을 넘어선 생존의 문제다.

값비싼 해외 화석연료를 들여와 제품을 만들고 이를 다시 글로벌 시장에 수출하는 구조는 국제 유가와 원자재 가격의 급등락과 유럽연합(EU)의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등 글로벌 공급망 탄소 규제에 치명적인 취약성을 안고 있다.

탄소감축 인프라와 안정적인 청정에너지 생산 체계를 선제적으로 구축하는 것은 국가 온실가스를 줄이면서 우리 제조업의 근본적인 경쟁력을 키우고 나아가 국가 에너지 안보를 지키는 첩경이다.

그러나 청사진이 화려하다고 해서 정책의 실행력과 완성도가 저절로 담보되는 것은 아니다. 이번 전략의 성패는 단순히 발표된 지원 규모라는 ‘숫자의 크기’가 아니라, 실제 산업 현장에서 거두는 온실가스 감축량, 공공금융이 촉발하는 민간 투자의 추가성, 그리고 전환 과정에서 발생하는 막대한 비용과 편익이 사회적으로 공정하게 배분되는지에 달려 있다.

이 엄중한 기준에서 볼 때 천문학적인 자금이 낭비되지 않도록 반드시 지켜야 할 네 가지 전제조건이 있다.

첫째, 790조원 기후금융의 ‘추가성’ 검증과 기관 건전성 확보 대책이다. 정부는 산업은행, 기업은행, 수출입은행, 신용보증기금, 기술보증기금 등 5대 정책금융기관을 통해 자금을 조달하고 지방에 50%, 중소·중견기업에 70% 이상을 배분하겠다는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

그러나 기관 명단과 총액 목표를 제시했다고 해서 자금의 실체적 효과가 증명되는 것은 아니다. 기존의 일반 여신과 만기 연장분까지 ‘녹색’ 간판만 덧씌워 단순 합산한 것은 아닌지, 보증과 대출의 중복을 걷어내고 실제로 유발된 ‘순수 신규 투자’가 얼마인지 명확히 밝혀져야 한다.

또한 민간 대기업의 10대 시그니처 프로젝트(220조원)가 이 정책금융과 어떻게 맞물리는지도 명확해야 한다.

철강·석유화학 등의 전환투자는 기술 실패 위험이 큰 고위험 사업이기 때문에 산업은행 등 정책금융기관이 이를 감당하며 대출을 늘리려면 건전성 규제(BIS 비율)를 지키고 부실 위험을 흡수할 수 있도록 정부의 자본금 확충(재정 출자)이 필수적인데, 이번 전략에는 그 구체적 계획이 빠져 있다.

또한, 민관 혼합금융 역시 손실은 공공이 떠안고 과실은 민간이 독점하는(공적 리스크 사적 이익) 왜곡을 막아야 하며, 기업이 전환 목표를 이행하지 않을 때 지원을 중단하고 자금을 회수하는 엄격한 환수 장치가 전제돼야 한다.

둘째, 장기 혁신기술과 단기 감축 목표 사이의 ‘시계(time horizon)의 괴리’를 메워야 한다. 정부 로드맵은 철강의 수소환원제철(2037년 이후)이나 석유화학의 전기가열로(2040년 이후) 등 2030년대 후반 이후에나 상용화될 기술에 크게 기대고 있다.

미래 원천기술 확보는 물론 필수적이다. 하지만 당장 코앞에 닥친 2030년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NDC)와 2035년 중기 목표는 먼 미래의 기술로 달성할 수 없다.

공정 효율 개선, 철스크랩 활용 극대화, 시멘트 클링커 비율 저감, 조기 재생전력 조달 등 지금 당장 실행할 수 있는 실효적 감축 수단별 목표량을 구체화해야 한다.

신기술 개발이 일정대로 진행되지 못할 경우를 대비한 대체 경로(플랜B)를 마련하지 않는다면 감축 공백 사태를 피하기 어렵다.

셋째, 재생에너지 설비 증설은 전력망 인프라 구축, 그리고 확실한 탄소가격 신호와 유기적으로 결합돼야 한다.

송전망과 저장장치가 뒷받침되지 못하면 생산된 전력은 버려지고, 배출권거래제의 유상할당 확대 없이 보조금만 제공해서는 기업의 실질적인 재생전력 수요를 이끌어낼 수 없다. 정부가 제시한 재생에너지 100GW 목표는 전력망 확충과 단 하나의 계획으로 묶여 움직여야 한다.

발전 설비가 아무리 빠르게 늘어나도 이를 실어 나를 송배전망과 출력 변동성을 흡수할 에너지저장장치(ESS)가 제때 설치되지 못하면 출력제어로 전력이 버려지고 사업자는 파산 위기에 내몰린다.

지역별 발전 허가, 송전망 완공, 전력망 접속 여력을 하나의 표로 엮은 세부 실행 일정이 제시돼야 한다. 이와 함께 수출 기업들이 요구받는 글로벌 RE100 규제에 실질적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재생전력 직거래 시장을 대폭 활성화해야 한다.

보조금만 지원하고 배출권 가격 신호가 왜곡돼 있거나 무상할당이 과도하다면 기업은 설비투자를 뒤로 미룰 수밖에 없으므로 배출권 총량 강화와 유상할당 확대라는 강력한 시장 유인이 병행돼야 한다.

넷째, 정의로운 전환에 바탕을 둔 ‘사회적 권리 보장’이다. ‘모두의 GX’가 구호에 그쳐서는 안 된다.

석탄화력발전소 폐지와 내연기관차 부품업계 축소 등으로 일자리를 잃는 노동자에게 단기 직업훈련을 제공하는 수준을 넘어, 전환 기간의 안정적인 소득 지원과 질 높은 재취업 경로가 제도적으로 보장돼야 한다.

특히 전환의 위험에 가장 취약한 하청·비정규직 노동자가 안전망에서 배제되지 않아야 한다. 재생에너지 사업의 주민 이익 공유 모델 역시 초기 투자 여력이 없는 지역 영세민과 임차농까지 포괄하는 포용적 구조로 설계돼야 지역사회의 수용성을 얻을 수 있다.

녹색대전환에 천문학적인 공공자금을 투입하는 근본 목적은 국가 경제 전반의 기후 위험을 낮추고 실질적인 온실가스를 감축하는 데 있다.

지원에는 철저한 책임을, 금융에는 투명한 추가성을, 감축에는 즉각적인 검증을, 전환에는 사회적 공정성을 붙여야 한다.

1000조원의 진정한 가치는 그 엄격한 조건들을 얼마나 충실히 지켜내느냐에 달려 있다. 간만에 나온 정부의 야심찬 계획이 내실있게 추진돼 소기의 성과를 거두길 기대한다.

출처 : 에너지신문(https://www.energy-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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