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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유 최고가격제, 價 충격 완충…선별지원·단계적 정상화 필요”

▲ 한국과 미국의 휘발유 가격 비교
국내 석유 최고가격제가 국제 에너지 가격 급등의 국내 전이를 완충하는 데 기여했지만, 장기적인 가격 억제보다 공급 안정과 재정 부담 관리, 단계적 정상화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분석이 나왔다. 가격 통제에 따른 비용 부담이 정유사와 정부에 누적될 수 있는 만큼 취약계층·피해 업종에 대한 선별지원과 투명한 손실 정산을 병행해야 한다는 제언이다.
산업연구원(KIET·원장 권남훈)은 27일 ‘석유 최고가격제의 효과와 정책 대응’ 보고서를 발표했다. 보고서는 국제 에너지 가격 상승이 연료비와 물류비를 거쳐 제품·서비스 가격으로 전이되면서 가계 구매력과 기업 수익성을 압박한다고 분석했다.
최고가격제는 이러한 비용 전가의 속도와 폭을 줄여 가계와 기업이 지출 조정, 계약 변경, 대체 공급선 확보 등 대응책을 마련할 시간을 확보하는 비상 수단으로 기능할 수 있다. 기대인플레이션과 불필요한 선구매·재고 축적을 완화하고, 정부와 기업이 재정지원과 공급 대책을 준비할 여유를 제공할 수도 있다.
그러나 국제 조달비용 자체를 낮추는 정책은 아닌 만큼 상한이 장기화하면 비용 부담이 공급자와 정부로 이전되고, 공급 유인 약화와 재정 부담 누적, 정책 종료 이후 가격 급등 위험이 커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국가별 대응 방식은 달랐다. 한국은 정유사 공급가격에 상한을 설정했고, 중국은 기존 관리가격제 아래 인상폭을 제한했다. 태국은 기금 지원과 가격 개입을 병행했으며, 일본은 보조금으로 소비자가격을 낮췄다. 싱가포르는 현금·바우처 등을 통해 가계와 기업의 실질 부담을 줄이는 데 중점을 뒀다.
미국은 비축유 방출 등 공급 확대를 추진했고, 독일은 한시적 유류세 인하와 가격 인상 횟수 제한으로 대응했다. 정책별로 비용이 발생하는 경로도 다른 만큼 소비자가격뿐 아니라 정유사 부담, 정부 재정지출과 세입 감소, 비축자산 사용 및 재확충 비용까지 함께 살펴야 한다.
가격 지표에서도 국가별 차이가 나타났다. 한국의 휘발유 소매가격 상승률은 전년 동월 대비 기준으로 2026년 8월 11.8%에서 9월 11.9%로 0.1%포인트 상승하는 데 그쳤다. 같은 기간 태국의 차량용 연료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은 14.1%에서 20.7%로 6.6%포인트, 미국 일반 휘발유 소매가격 상승률은 29.5%에서 37.6%로 8.1%포인트, 독일 차량용 연료 CPI 상승률은 27.7%에서 37.1%로 9.4%포인트 확대됐다.
한국의 가격 상승률이 추가 확대되지 않은 양상은 가격 충격 완충 가능성을 보여준다. 다만 국가별 세금 구조와 환율, 국제가격의 국내 반영 시차, 가격 지표의 차이 등이 함께 작용하므로 상승률만으로 정책의 우열을 판단하기는 어렵다. 일본의 3∼8월 휘발유 CPI 상승률이 평균 -4.5%를 기록한 점도 보조금 방식이 소비자가격을 억제할 수 있음을 보여주지만, 지원 규모와 기간에 따른 재정 부담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
최고가격제의 장기화에 따른 부작용을 줄이려면 국제 제품가격과 환율, 재고 상황을 반영해 상한을 조정하고 가격 충격이 완화되면 단계적으로 정상화해야 한다. 실제 조달비용과 운임·보험료 등을 검증하는 손실 정산 체계를 마련하고, 지급액뿐 아니라 미지급 정산액까지 관리해 공급자의 현금흐름과 공급 능력을 점검할 필요가 있다.
지원은 취약계층과 피해 부문에 집중해야 한다. 저소득 가구와 필수 운송·농어업 등 에너지 비용 충격에 취약한 부문을 우선 지원하되, 소비 증가 자체를 보상하는 구조는 지양해야 한다. 제조업은 원료 조달과 유동성을 지원하고, 실제 생산·수출 물량 감소가 발생한 업종을 중심으로 부담을 점검하는 방식이 제시됐다.
비축유와 상업 재고 활용, 에너지 도입선 다변화, 운송·보험 제약 완화, 에너지 효율 투자도 병행해야 한다. 가격과 가계 부담, 산업 생산·수출, 공급 안정, 재정 비용을 함께 공개하고 정례 평가 결과를 상한 연장 여부에 반영하는 체계도 필요하다.
김수동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정책 성과를 물가 변화만으로 판단해서는 안 되며, 가계의 순부담과 산업의 실질 생산·수출, 공급 안정 및 재정 부담을 종합적으로 평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