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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문가논단] 자원생태계 복원, 지속가능한 에너지전환의 최소 조건

    송고일 : 2026-01-02
    ▲ 이정환 전남대학교 에너지자원공학과 교수.
    ▲ 이정환 전남대학교 에너지자원공학과 교수.

    [에너지신문] 최근 국제 에너지 질서는 근본적인 전환 국면에 진입하고 있다.

    에너지 가격의 변동성 확대, 미·중 패권 경쟁과 중동의 지정학적 불안정, 자원 민족주의의 확산으로 인해 에너지 조달은 단순한 시장 거래의 영역에서 국가 안보의 문제로 전환되고 있다.

    에너지는 더 이상 값싸게 구매하면 되는 상품이 아니라, 안정적으로 확보하지 못할 경우, 국가 경제와 산업 전반에 심각한 충격을 초래할 수 있는 전략 자산이 됐다.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야기된 파이프라인 천연가스(pipeline natural gas, PNG) 수출 노선 중단은 이러한 변화를 극명하게 보여줬다.

    유럽은 러시아산 천연가스 의존도로 인해 심각한 에너지 위기에 직면했고, 국제 에너지 가격은 전례 없는 변동성을 기록했으며, 에너지 안보가 단순한 경제적 문제를 넘어 국가 생존과 직결되는 안보 의제임을 전 세계에 각인시켰다.

    특히, 이러한 변화는 에너지 수요의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하는 우리나라에 중대한 의미를 가진다. 2024년 기준 우리나라의 에너지 수입 의존도는 90% 이상으로, 거의 석유와 천연가스 대부분을 해외에서 조달하고 있다.

    따라서 국제 에너지 시장이 불안정해질수록 외부 충격에 대한 취약성은 구조적으로 확대될 수밖에 없다.

    정부가 ‘제6차 해외자원개발 기본계획’을 통해 자원개발 정책의 방향을 재정립하고, 자원개발을 국가 자원 안보를 달성하기 위한 핵심 수단으로 명확히 위치시킨 배경도 여기에 있다.

    또한, 2025년 2월 시행된 ‘국가자원안보특별법’을 통해 석유, 천연가스, 우라늄, 핵심광물 등 전략 자원의 안정적 공급을 위한 법적·제도적 기반을 마련했다.

    자원안보협의회 설치, 조기경보체계 운용, 민관합동 위기대응체계 구축 등은 자원 안보에 대한 국가적 인식 전환의 결과라 할 수 있다.

    정부가 자원 안보 강화를 위해 제도적 기반을 정비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책 방향과 현장의 역량 사이에는 여전히 시간차가 존재한다.

    국내 석유·가스 자원개발산업은 지난 10여년간 지속적인 위축을 겪어왔다. 그 출발점에는 2014년 국제 유가의 급락이 있었으며, 이에 따라 수많은 개발 프로젝트가 경제성을 상실했고, 투자 회수의 불확실성이 급격히 증가했다.

    유가하락과 일부 사업의 성과 부진은 자원개발 전반에 대한 사회적 신뢰를 약화시켰고, 에너지 전환 논의가 급속히 확산되면서 석유·가스 개발은 ‘사양 산업’이라는 인식 속에 점차 정책 우선순위에서 밀려났다.

    또한 탈탄소 담론의 확산 속에서 석유·가스 개발에 대한 투자는 ‘좌초자산(stranded asset)’으로 치부되며 위험성이 높은 사업으로 인식됐고, 이 과정에서 공기업의 기능이 축소되고, 민간기업의 신규 투자 역시 크게 위축됐다.

    금융·세제 지원의 축소는 이러한 흐름을 더욱 가속화시켰으며, 탐사 실패에 대한 감면율 하향, 융자 조건 강화 등이 민간 투자 의욕을 저하시키고, 결과적으로 자원개발률 정체로 이어졌다.


    석유·가스 자원개발률은 국내 기업이 해외에서 생산한 석유·가스 중 자사 지분에 해당하는 물량을 전체 수입량 대비로 산출한 지표로, 에너지 자립도를 나타내는 핵심 척도다.

    자원개발률이 40%를 넘어 50%를 목표로 적극 투자하는 일본이나 국영기업을 통해 글로벌 진출을 확대하는 중국에 비해 우리나라는 자원개발률이 10% 내외에서 정체돼 있으며, 이는 자원 안보 측면에서 심각한 취약성을 의미한다.

    문제는 이러한 산업 위축이 단순히 투자 규모 감소나 사업 수 축소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탐사–개발–생산으로 이어지는 석유·가스 자원개발 생태계의 연속성이 훼손되면서 전문 인력은 현장을 떠났고, 중소 서비스 기업과 기술 기반은 급격히 약화됐다.

    자원개발산업은 단일 기업이나 단일 프로젝트로 유지될 수 없는 복합적 생태계를 기반으로 작동한다.

    상류 부문(upstream)의 탐사·생산 활동은 지질·지구물리 조사 기업, 시추 서비스 기업, 엔지니어링 회사, 장비 제조업체, 환경 컨설팅 기업 등 다양한 주체들의 유기적인 협력을 필요로 한다.

    이 생태계가 붕괴될 경우, 국가 차원에서 장기간 축적해 온 기술과 운영 경험 역시 함께 소실될 수밖에 없다.

    특히, 우려되는 것은 전문 인력의 이탈이다. 석유·가스 탐사·개발 분야는 지질학, 지구물리학, 저류공학, 시추공학, 생산공학 등 고도의 전문성을 요구하는 분야다.

    이 분야의 전문가들은 장기간의 교육과 현장 경험을 통해 양성되며, 한 번 현장을 떠난 인력이 복귀하기는 매우 어렵다. 산업 위축 기간 동안 신규 인력 유입은 급감했고, 기존 인력은 타 산업으로 이동하거나 은퇴했다.

    이는 향후 산업 재건 시, 심각한 병목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다. 석유·가스 자원개발 생태계의 약화가 특히 심각한 문제로 평가되는 이유는 이 산업이 단기간에 복원될 수 없는 구조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자원개발은 고위험·장주기 산업으로, 탐사 단계에서부터 상당한 불확실성을 내포한다. 일반적으로 탐사에서 상업 생산까지 10년 이상이 소요되며, 탐사 성공률은 평균 10~20%에 불과하다.

    성공적인 사업 수행을 위해서는 지질·지구물리 해석 역량, 저류층 평가 기술, 시추 및 생산 운영 경험이 유기적으로 결합돼야 하며, 이러한 역량은 장기간의 경험 축적을 통해서만 형성된다.

    단절된 인력과 기술 기반을 다시 구축하는 데에는 막대한 시간과 비용이 소요되며, 이는 곧 국가 경쟁력의 손실로 이어진다. 한 번 무너진 생태계를 복원하는 것은 새로 구축하는 것보다 훨씬 어렵고 비용이 많이 든다.

    지금 생태계 복원에 나서지 않으면 향후 자원 안보 위기 시, 대응 역량 자체가 부재한 상황에 직면할 수 있다.

    더 나아가 석유·가스 자원개발 역량은 에너지 전환과 대립되는 개념이 아니다. 오히려 에너지 전환을 현실적으로 뒷받침하는 기반에 가깝다.

    천연가스는 석탄대비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40~50% 적고, 재생에너지의 간헐성을 보완하는 가교 에너지원으로서 전력 시스템 안정화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또한 태양광과 풍력 발전은 날씨와 시간대에 따라 출력이 급변하므로, 이를 보완할 유연 전원이 필수적이다.

    이때, 액화천연가스(liquefied natural gas, LNG)는 빠른 기동성과 출력 조절 능력을 갖추고 있어 재생에너지 확대 과정에서 전력망 안정성을 유지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한다.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서도 LNG의 역할이 명시돼 있으며, 정부는 LNG를 석탄 대체와 재생에너지 보완을 위한 과도기적 에너지원으로 활용할 계획이다. 2030년대 이후, 수소 혼소 및 전소 발전으로의 전환이 예정돼 있으나, 그 이전까지 LNG의 다리 역할은 대체 불가능하다.

    재생에너지 비중이 확대될수록 전력망의 안정성을 유지하기 위한 조정 전원의 중요성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으며, 이 과정에서 가스의 역할은 단기간에 대체되기 어렵다.

    또한 석유·가스 개발 과정에서 축적된 기술과 경험은 CO2 지중 저장, 수소 지중 저장, 지열 에너지 개발 등 저탄소·무탄소 에너지 기술의 핵심 기반으로 활용될 수 있다.

    이는 지하 구조 탐사, 저장소 평가, 유체 주입 및 장기 거동 예측, 운영 안전 관리 등은 석유·가스 개발 기술과 구조적으로 높은 유사성을 가지기 때문이다.

    즉, 석유·가스 자원개발 생태계는 에너지 전환을 저해하는 장애물이 아니라, 전환을 가능하게 만드는 기술적·산업적 토대에 해당한다.

    자원안보 관점에서 보더라도 석유·가스 자원개발 생태계의 복원은 결정적인 의미를 가진다. 해외 생산 자산 확보, 지분 물량을 통한 수급 조절, 비상시 국내 도입 능력은 단순 구매 중심의 에너지 조달 구조로는 확보하기 어렵다.

    자원개발 물량은 국제 시장에서 즉시 구매하는 물량과 본질적으로 다른 성격을 가진다. 가격 변동에 관계없이 일정 수준의 공급을 보장받을 수 있으며, 비상시에는 국내 도입을 우선적으로 추진할 수 있다.

    또한 국제 에너지 시장의 불확실성이 확대될수록, 상류 부문에 대한 직접 참여 경험과 글로벌 네트워크를 보유한 국가는 협상력과 대응 능력에서 분명한 우위를 확보할 수 있다.

    반면, 개발 경험과 전략 자산이 없는 국가는 가격 급등이나 공급 차질에 수동적으로 노출될 수밖에 없다. 이에 따라 해외뿐 아니라 국내 자원개발의 전략적 가치도 재조명되고 있다.

    한국석유공사가 수립한 ‘광개토 프로젝트’는 국내 대륙붕 탐사 마스터플랜으로, 핵심사업인 동해 심해 가스전 탐사에는 BP 등 글로벌 메이저 기업의 참여가 논의되고 있다.

    성공할 경우, 자원개발률 제고뿐 아니라 국내 개발 역량의 고도화와 심해 탐사 기술 확보에도 기여할 것으로 전망된다.

    중국과 일본이 자국 인근 해역에서 적극적인 탐사·개발 활동을 전개하고 있는 점을 고려할 때, 우리나라 역시 자체 개발 역량을 유지·강화할 필요가 있다.

    석유·가스 자원개발 생태계 복원은 무분별한 투자 확대나 과거 방식으로의 회귀가 아니다. 이는 자원안보 관점에서 전략적 가치가 있는 자산을 선별적으로 확보하고, 공기업과 민간기업이 역할을 분담, 산업의 연속성을 회복하자는 접근이다.

    구체적으로 공기업은 고위험·고비용의 탐사 단계와 전략 자산 확보에서 선도적 역할을 수행하고, 민간기업은 상업성이 확인된 개발·생산 단계에서 전문성과 효율성을 발휘하는 협력 구조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 금융·세제 지원 강화, 전문 인력 양성, 서비스 산업 육성 등 생태계 전반을 아우르는 정책적 뒷받침이 병행돼야 한다.

    자원개발산업은 탐사 기술, 엔지니어링, 시추, 운영, 환경 관리가 유기적으로 연결된 복합 산업이며, 어느 한 축이 약화될 경우, 전체 생태계의 지속가능성은 크게 저하된다.

    따라서 자원안보를 강화하기 위해서는 개별 사업의 성과보다 산업 생태계의 연속성을 우선적으로 고려하는 정책 접근이 필요하다.

    석유·가스 자원개발 생태계 복원은 에너지전환이라는 장기 목표를 안정적으로 달성하기 위한 현실적이고 전략적인 선택이다.

    전환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공급 불안과 투자 공백을 완충하고, 저탄소 기술로의 이행을 뒷받침하기 위해서는 기존 석유·가스 자원개발 역량의 유지와 전환적 활용이 필수적이다.

    마지막으로 자원안보는 선언이나 목표 설정만으로 확보되지 않는다. 이는 인력, 기술, 경험, 그리고 산업 생태계라는 축적된 자산 위에서만 실현 가능하다.

    석유·가스 자원개발 생태계 복원은 에너지전환에 역행하는 선택이 아니라, 전환을 지속가능하게 만들기 위한 최소 조건이기때문에 지금 이러한 기반을 다시 세우지 못한다면, 미래의 에너지 위기 앞에서 우리에게 남는 선택지는 극히 제한적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출처 : 에너지신문(https://www.energy-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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